🍃연두/성평등복지팀 연두해요~🎵
“활동가가 절대 되지 않겠다.”✏️
2022년 가을, 블로그에 적었던 다짐이다. 사회 문제들에 대해 구조적,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그래서 3월부터 여러 집회와 기자회견에 따라다녔다. 먼저 나선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배우고 싶었다. 마음이 앞서서, 행동만 따라 했기 때문일까? 맥락도, 언어도, 공감도 없이 부닥치기만 했던 싸움의 자리는 나를 금방 지치게 했다.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 소모적인 갈등이나 긴장이 이토록 많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투쟁 현장에서 마주한 괴리감이었다. 약자와 소수자, 피해 당사자들의 권리를 말하는 공간 안에서도 정작 구성원 간의 소통은 평등하지 않거나, 운동의 대의라는 목표 아래 개인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것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또, 내가 고민이나 공감 없이 ‘머릿수 채우기’ 정도로 앉아만 있는 듯한 생각이 들면서 점점 겉돌게 되고, 몸과 마음은 빠르게 소진됐다. 내 안의 연료를 잃으면서 주변 사람들만큼 열심히 연대하지 못한 채 혼자 지치고 불편해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힘들기도 했다. 결국 공간의 모순적인 면들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이런 거라면 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활동가가 될 수 없겠다’, ‘활동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하게 된 것이다.
참고 넘어가는게 더 힘든 사람의 고군분투🚨
집회나 기자회견 등 사회운동과 멀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내가 지금 서 있는 가장 가까운 공간이자 일상인 학교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생회와 인권위원회1, 각종 기획단이나 TF팀에서 활동했다. 이것들은 아무리 바쁘고 숨이 밭아도, 내부에서 어떤 갈등이 생겨도 그만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 왜 이번엔 안 그만두지?’, ‘지난번이랑 뭐가 다르지?’ 내가 대체 어느 부분에서 지속할 에너지와 의미를 얻는지 찾아가며 꽤 열심히 했다. 명맥이 끊겼던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을 다시 되살리기도 하고, 학교 축제인 대동제를 일부러 규모를 키우면서 평소 학생회와 접점이 없는 학우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인권위원회로 학내 인권 문제들만 집중해 보기도 하고, 학내 각종 행사를 만드는 곳들엔 다 기웃거렸다. 3학년, 4학년이 되어서도 소위 말하는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학생회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인데,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가 조금 더 안전하고, 즐겁고, 평등하길 바랐고 그 목표로 향하는 길에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던 거다! 그냥 당장 내 눈에 보이는 무너져 내리는 코로나 직후의 학생 사회, 학내 불평등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보고 싶었다. 
(사진설명) 제3회 성공회대학교 퀴어문화축제 〈흠집들의 집에서 얽히고, 엉퀴어!〉 단체티를 입은 뒷모습. 축제의 추진위원단으로 함께했다. 축제의 전야제로 퀴어 영화 상영회를 했고, 행사 시작 전 입장 안내를 하던 중 찍힌 사진이다.
뒤돌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 나를 지치지 않게 했다. 수업 중 여성혐오 발언을 한 교수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한 적이 있다. 문제를 드러내고 학교를 시끄럽게 만드는 일은 당연히 용기나 다짐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했던 이유는 이 공론화로 학교 교수들이 조금 더 자기 발언의 무게를 알길, 더 인권 감수성 있는 수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수업 중 혐오 발언을 듣고, 힘들고 괴로워 하는 것이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론화는 교수의 사임으로 끝났다. 당시 내 블로그에 사건을 회고하는 글을 남겼다. 왜 내가 나서게 되었는지 돌아보면서 “나 아님 또 누가 해..”라고 쓰며 이 문장을 쓴 스스로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는 참고 넘어가는 것이 더 힘든 사람이구나!’ 물론 세상은 나 하나 없어도 돌아가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함께 비를 맞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제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 방식을 고민하고, 학교와 발언 당사자가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활동가로 사는 삶에 대한 마음의 문이 다시 열린 것이다. 
(사진설명) 고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 ‘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일단은 스펀지!🌞
‘직업으로서 활동가’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확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외면하거나 모른 척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아닐까? 그 뒤로 활동가가 된 내 미래를 상상했고, 상상이 현실이 되어! 민우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벌써 4개월이 지나 활동가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2022년 일기장에는 활동가가 절대 되지 않겠다고 썼다가, 2026년 활동가 일기를 쓰고 있자니 사람 인생이 정말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요즘 민우회에서의 시간들은 즐거운 낯섦과 고민의 현장이다.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맺는 민우회에서의 일상은 새로운 시선, 언어와 태도를 경험하게 한다. 이 새로운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야겠다는 자극을 받고, 욕심도 난다. 이런 욕심 때문에 요즘은 내가 스펀지가 되고 싶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판단하고 여과하는 과정은 일단 미뤄두고, 우선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흡수하고 싶다. 페미니즘이 다르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 어떤 걸 해나갈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더 넓혀가고 싶다. 여러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진설명) 2026년 ‘성평등 세상을 여는 민우회 바자회’ 에서 도서 코너 안내 역할을 맡았다. 책과 바자회를 찾아주신 분들의 북적임 사이에서 즐거워 하는 중이다.
1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회. 총여학생회가 전신이다. 대학의 거의 모든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면서 성공회대학교 총여학생회도 폐지되었으나, 이를 되살리는 운동을 하면서 준비위원회를 거쳐 ‘인권위원회’가 되었다.
〈함께가는 여성〉 독자 의견 보내기 
|
🍃연두/성평등복지팀
연두해요~🎵
“활동가가 절대 되지 않겠다.”✏️
2022년 가을, 블로그에 적었던 다짐이다.
사회 문제들에 대해 구조적,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그래서 3월부터 여러 집회와 기자회견에 따라다녔다. 먼저 나선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배우고 싶었다.
마음이 앞서서, 행동만 따라 했기 때문일까? 맥락도, 언어도, 공감도 없이 부닥치기만 했던 싸움의 자리는 나를 금방 지치게 했다.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 소모적인 갈등이나 긴장이 이토록 많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투쟁 현장에서 마주한 괴리감이었다. 약자와 소수자, 피해 당사자들의 권리를 말하는 공간 안에서도 정작 구성원 간의 소통은 평등하지 않거나, 운동의 대의라는 목표 아래 개인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것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또, 내가 고민이나 공감 없이 ‘머릿수 채우기’ 정도로 앉아만 있는 듯한 생각이 들면서 점점 겉돌게 되고, 몸과 마음은 빠르게 소진됐다. 내 안의 연료를 잃으면서 주변 사람들만큼 열심히 연대하지 못한 채 혼자 지치고 불편해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힘들기도 했다. 결국 공간의 모순적인 면들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이런 거라면 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활동가가 될 수 없겠다’, ‘활동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하게 된 것이다.
참고 넘어가는게 더 힘든 사람의 고군분투🚨
집회나 기자회견 등 사회운동과 멀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내가 지금 서 있는 가장 가까운 공간이자 일상인 학교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생회와 인권위원회1, 각종 기획단이나 TF팀에서 활동했다. 이것들은 아무리 바쁘고 숨이 밭아도, 내부에서 어떤 갈등이 생겨도 그만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 왜 이번엔 안 그만두지?’, ‘지난번이랑 뭐가 다르지?’ 내가 대체 어느 부분에서 지속할 에너지와 의미를 얻는지 찾아가며 꽤 열심히 했다. 명맥이 끊겼던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을 다시 되살리기도 하고, 학교 축제인 대동제를 일부러 규모를 키우면서 평소 학생회와 접점이 없는 학우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인권위원회로 학내 인권 문제들만 집중해 보기도 하고, 학내 각종 행사를 만드는 곳들엔 다 기웃거렸다.
3학년, 4학년이 되어서도 소위 말하는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학생회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인데,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가 조금 더 안전하고, 즐겁고, 평등하길 바랐고 그 목표로 향하는 길에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던 거다! 그냥 당장 내 눈에 보이는 무너져 내리는 코로나 직후의 학생 사회, 학내 불평등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보고 싶었다.
(사진설명) 제3회 성공회대학교 퀴어문화축제 〈흠집들의 집에서 얽히고, 엉퀴어!〉 단체티를 입은 뒷모습. 축제의 추진위원단으로 함께했다. 축제의 전야제로 퀴어 영화 상영회를 했고, 행사 시작 전 입장 안내를 하던 중 찍힌 사진이다.
뒤돌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 나를 지치지 않게 했다. 수업 중 여성혐오 발언을 한 교수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한 적이 있다. 문제를 드러내고 학교를 시끄럽게 만드는 일은 당연히 용기나 다짐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했던 이유는 이 공론화로 학교 교수들이 조금 더 자기 발언의 무게를 알길, 더 인권 감수성 있는 수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수업 중 혐오 발언을 듣고, 힘들고 괴로워 하는 것이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론화는 교수의 사임으로 끝났다. 당시 내 블로그에 사건을 회고하는 글을 남겼다. 왜 내가 나서게 되었는지 돌아보면서 “나 아님 또 누가 해..”라고 쓰며 이 문장을 쓴 스스로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는 참고 넘어가는 것이 더 힘든 사람이구나!’ 물론 세상은 나 하나 없어도 돌아가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함께 비를 맞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제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 방식을 고민하고, 학교와 발언 당사자가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활동가로 사는 삶에 대한 마음의 문이 다시 열린 것이다.
(사진설명) 고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 ‘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일단은 스펀지!🌞
‘직업으로서 활동가’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확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외면하거나 모른 척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아닐까? 그 뒤로 활동가가 된 내 미래를 상상했고, 상상이 현실이 되어! 민우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벌써 4개월이 지나 활동가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2022년 일기장에는 활동가가 절대 되지 않겠다고 썼다가, 2026년 활동가 일기를 쓰고 있자니 사람 인생이 정말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요즘 민우회에서의 시간들은 즐거운 낯섦과 고민의 현장이다.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맺는 민우회에서의 일상은 새로운 시선, 언어와 태도를 경험하게 한다. 이 새로운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야겠다는 자극을 받고, 욕심도 난다. 이런 욕심 때문에 요즘은 내가 스펀지가 되고 싶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판단하고 여과하는 과정은 일단 미뤄두고, 우선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흡수하고 싶다. 페미니즘이 다르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 어떤 걸 해나갈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더 넓혀가고 싶다.
여러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진설명) 2026년 ‘성평등 세상을 여는 민우회 바자회’ 에서 도서 코너 안내 역할을 맡았다. 책과 바자회를 찾아주신 분들의 북적임 사이에서 즐거워 하는 중이다.
1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회. 총여학생회가 전신이다. 대학의 거의 모든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면서 성공회대학교 총여학생회도 폐지되었으나, 이를 되살리는 운동을 하면서 준비위원회를 거쳐 ‘인권위원회’가 되었다.
〈함께가는 여성〉 독자 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