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넘어 여성주의로 말을 걸다.

수풀(사회복지사 / 민우회회원)

■ 남성 사회복지사

“역시 남자 선생님이라 제가 얼마나 절박한지 공감을 못하시는군요?”

  강북구에 소재한 영유아복지기관으로 직장을 옮긴지 2주 째 되던 어느 날이었다. 언어장애가 의심되는 아이의 치료 문제로 아이의 어머니와 상담을 하던 중 아이의 어머니가 답답한 마음에 불쑥 던지신 말이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정에 대한 이해나 나의 상담태도에 미숙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남자라서 공감을 못한다”라는 지점에서 나는 쉽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여성의 현실적인 삶에 남성인 나는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사회복지사, 이것이 나의 직업이다. 나는 직업으로써 경제적, 정서적으로 아이 키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유아가정을 만나 아이가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생계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공무원과는 달리 민간위탁기관에서 근무하는 나와 같은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주로 주민들이 가진 가능성과 강점을 찾아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연결해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있다. 즉 주민의 가능성을 강화하여 자신을 삶의 주체로 세우는데 있다.

  주민들의 가능성과 강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 분들의 좌절과 상처, 희노애락을 이해하며 오롯이 그 분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 경우에는 그 주민이 영유아가정, 그 중에서도 주로 아이의 어머니인 여성이다. 종사자는 물론 만나는 주민들 대부분의 성별이 여성인 사회복지계에서 남성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것은 강력한 개성임에는 틀림없다. 때로는 그 개성이 강점이 되기도 했지만 진솔한 고민으로 들어가기에는 소통에 장애가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긴 터널 끝에 빛이 보이듯, 여성주의가 내게 소통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 여성주의로 말을 걸다.

  여성주의를 만나며, 나는 여성의 경험이 결여된 남성이기에 근본적으로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성들이 느끼는 좌절과 상처의 경험을 나는 평생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여성을 자신의 삶의 주체로 세우려는 신념과 직업이 있다. 성별화된 권력에 의해 타자화 된 여성이 자신에게 집중된 양육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기학대적인 좌절을 겪고 있는 현장에서 여성주의를 통해 훈련된 타자에 대한 감수성으로 당사자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실천적 경험을 통해 새롭게 구축되고 있는 나는 그 전의 나와 다를 것이며 새로워진 나는 여성과의, 주민과의 적극적 소통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 새로운 소통을 꿈꾸며

  내가 새롭게 일하고 있는 직장은 한 달 전 구청의 무책임한 태도로 지원협약 체결이 무산되면서 운영중단의 위기를 겪었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어려운 400여 영유아 가정에 대한 지원이 하루아침에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구청의 지원협약 체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서 주셨다.

  시위 중 진행된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를 업고 시위에 참여하셨던 한 어머님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내 아이는 이 영유아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잘 컸는데 지금 운영이 중단되면 나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게 그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니냐”며 “구청은 센터 지원협약을 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사회복지계에서는 드물게 구청 앞 가두행진까지 진행된 주민들과 복지기관의 움직임은 결국 구청의 입장 번복을 가져왔고 제한적이지만 운영을 지원하겠다는 답변까지 이끌어냈다. 기관의 운영연장도 중요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주민들이 자신 삶의 주체로 바로 서시는 성공의 경험이 되었다는 점과 나와 주민들이 한 목소리로 영유아복지의 지속과 확대를 위해 연대하였다는 점에 더욱 감격적이다.

연대와 소통은 가능하다. 지금 나에게 여성주의는 새로운 소통을 위한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