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잡, 빵꾸똥꾸같은 소리

멍군(김인숙,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민우회는 연말이면 고용평등 상담실에서 상담사례집을 발간한다. 얼마 전 나온 사례집을 보니 재미있는 박스코너가 있다.

임신한 여성노동자에 대한 ‘빵구똥구’ 같은 말

“임신부가 있으면 골치가 아프다.”

“임신을 했기 때문에 일을 마음대로 못 시키겠다.”

“임신한 여자가 있으면 외국바이어와 술자리를 못하겠다.”

“임신한 여자들은 윗분들 보기 좋지 않다.”

이는 작년에 한 출산, 육아와 관련된 상담 중에 나온 말들로 사직을 직, 간접적으로 강요하는 말,말,말들이다.

어렵게 잡은 직장마저 육아문제로 포기해야 했던 나의 경우가 3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도 되풀이 되는 것인가? 이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내 딸과 그녀의 동료, 친구들이 또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 거라니 참 씁쓸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마저 탄압받고 시민의 자유로운 의견 표출에 재갈이 물리고, 그리하여 사회공동체적 삶을 위협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놀람과 분노와 무기력에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이명박 들어 두 번째로 맞이하게 된 여성부 장관의 퍼플잡(단시간 근로제) 안이 놀랍지도 않다. 다만 지난 세월의 우리 노력이 씁쓸하고, 이후가 염려될 뿐이다.

위의 빵꾸똥꾸 같은 말들에서도 눈치 챘겠지만, 여성이 출산, 육아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여성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몰아 낸 것이다. 여성이 출산과 육아기에 누릴 수 있는 기존 법, 제도만 다 활용할 수 있어도 여성들이 쉽게 육아를 핑계로 직업을 그만둘 상황까지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근무한 정규직인데 “회사가 적자이니 3개월치 월급과 4월에 출산휴가 줄테니 그만두라”,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재택근무해라”,

“육아휴직 뒤에 복귀를 하니 전에 했던 일과 완전히 딴판인 일을 주면서 자진해서 사직서 쓰라는 압력을 넣기도 해요.“

혹은 “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 사용했다고 부당한 인사고과”를 주는 등 여성들은 간접적 압력을 버티지 못한다.

작년 민우회는 경제위기 하 여성노동문제에 대한 연구사업을 진행하며 여성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현장에서의 실제 문제를 파악해 보려 했다. 이때 IMF 이후 일상적인 구조조정 방식으로 인력의 조정이 있는 곳에 여성들의 자발적인 명퇴 수용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있었다.

보육 정책이 충분치 못한 한국 사회에서 육아를 포함한 돌봄노동의 주책임이 여자에게 있다는 성차별적 사고는 여성으로 하여금 자식을 방치한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한다. 통상적으로 한국여성의 평균임금이 남성의 60% 수준인 상황에서 여성들은 남성에게 가장으로서의 생계책임과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며 일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자발적 선택으로 보이나 성차별적 인식에 의해 강요된, 선택 아닌 선택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민우회는 2003년부터 6년까지 ‘평등한 일, 출산, 양육 켐페인 ’으로 ‘stop 출산해고, go 평등양육’ 켐페인을 전개한 적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자는 것으로 양육 요일제를 정하고 장시간노동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 바꾸기, 남성이 아이 돌보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직장의 문화 바꾸기 운동을 전개했다. 올해 다시 이를 시작하자는 노동팀의 의견이 있었다.

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활동을 되끌어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왜냐고? 백투더 과거 했으니까!

몇 년 전 동북지부에서 활동할 때 연대회의에서 만났던 정OO씨가 생각난다. 본인은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구의원을 활동을 하고 있고, 아내는 선생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부가 양육요일제를 가지고 있었는지 반드시 정해진 요일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저녁회의가 있는 날리면 육아원에서 아기를 찾아와 기저귀를 갈아가며 회의를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남성이 하는 이 정도의 육아로도 감동을 해야 하는 내 모습도 문제는 있지만, 어쨌든 그 정도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 후로 나는 그친구를 무조건 신뢰하는 편인데, 아마 그때의 그 모습에 감동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성부는 여성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도 않으며, 이후 여성에게 바람작한 결과를 유도할 성인지적인 정책으로 보이지 않는 퍼플잡을 재고해야만 한다. 그 대신에 남성의 양육참가, 그를 위한 노동시간 줄이기, 그래서 사회전체가 고루 일하는 조건을 만드는데 에너지를 집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위의 정OO 같은 남성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간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