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성)폭력

펭(민우회 회원)

 두 달 전쯤 나는 민우회의 직장내 성희롱 연구에 참여해 보고서를 마쳤다. 그리고 한 달 전쯤에, 간단히 말해 귀가 길에 ‘변태’를 만났고, 경찰을 ‘독촉’해서 ‘변태’를 잡았다. 단지 그렇게 단순화시키기에는 뭔가 걸리는 몇 가지 구석들을 물고 늘어져 좀 길게 말해보자. 경찰은 이 상황을 어떤 태도로 대응했는가, 변태는 어떤 법적 근거로 처벌을 받게 되는가, 무엇보다 ‘변태’와 마주쳐서도 ‘꿋꿋하게’ 잘 잡았으니 나는 괜찮은가?

#1 사건개요: 동네 어귀와 경찰서 풍경

 쌀쌀해지기 시작한 겨울 문턱의 어느 밤, 나를 향해 페니스를 꺼내놓고 주물럭거리면서 파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 남자와 마주치는 순간 즐거운 내 귀가 길은 퇴색되고 말았다. ‘이건 뭔가 아니...’지 싶은 찰나 거의 반사적으로 내 발걸음은 그 사내를 향했다. 전혀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변태들’과 유달리 ‘질긴 인연’을 통해 쌓인 ‘회한’을 풀고 싶은 본능적 욕구와 단지 ‘이대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동물적 판단에 경도된 반사적 행동이었다. 동시에 ‘파란마스크’도 ‘이건 뭔가 아니...’지 싶었는지 뒷걸음질치더니 이내 내달렸다. ‘파란마스크’가 골목 어귀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멀리가지 못하고 근처 건물 안으로 숨었을 것이 분명했지만, 밤이었고 내 체력을 자신할 수 없었던 터라, 혼자 쫓아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일단 현장을 ‘사수’하기 위해 그 자리에 지키고 서서 112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경찰을 기다리면서 스멀스멀 일깨워지는 두려움을 쫓기 위해 Y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세를 부리고 있었지만 사실 의지할 곳을 찾아 전화를 한 것이다. 한참 통화를 했는데도 경찰은 나타날 생각을 않았다.  다시 ‘독촉’ 전화를 했더니 ‘아직도 그 자리에 계시냐’는 엉뚱한 대답이었다. 경찰은 결국 112에 처음 요청을 한지 거의 15분이 지나서야 나타나셨다. 그래도 이번엔 ‘독촉’ 전화 덕분에 빨리 온 셈이다. ‘변태 목격’ 사건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면 대체로 한참이 지나서 경찰에게 연락이 온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근처를 수색했는데 ‘수상한 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비슷한 결과를 고지 받는다. 그런 뻔~한 순찰 결과를 통보받을 때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여성’을 대상으로 그러한 ‘폭력’을 행사하고, 손쉽고 재빠르게 범행을 감추어 ‘평범한 남성’으로 변모하는 그가, 느리게 대응할 뿐만 아니라 ‘남성’인 경찰의 눈에 ‘수상한 자’의 모습으로 보일 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늦게 나타난 두 경찰은 건물 뒷마당에 숨어 있던 ‘수상한 자’를 찾아냈다. 내가 봐도 이 사람이 ‘그런 짓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참 평범한 ‘남자’였다. 보통 체격, 어두운 색의 옷, 그저 그런 특색 없는 얼굴. 그리고 마치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겠다는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찰에게 ‘왜 그러시냐’만을 연발하는 ‘자연스러운 능청’까지. 경찰은 내게 ‘증거가 될만한 것이 없어 내가 유일한 증인인데, 만일 그 사람이 아니면 내가 무고죄가 될 수 있다.’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경찰과 그 남자가 숨어 있던 곳 주변에서 파란색 마스크를 찾아냈고 드디어 ‘파란마스크’를 잡았다.

  **지구대(파출소)에서 진술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조금 ‘흥분’해 있었다. 이번에는 잡았구나! 스스로 살짝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파란마스크’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궁금했다. 경찰은 인근 지구대에서도 유사한 신고들이 있었는데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꽤 큰 금액(몇 백 만원 정도)의 벌금형은 받게 될 거라고 ‘큰 건’ 하나 잡은 듯이 힘주어 대답했다. 곧 이어 인근 지구대 경찰들이 시끌벅적 몰려왔다. 한결같이 ‘파란마스크’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고 으름장을 놓으며 동시에 내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유사한 신고는 자주지만 정작 잡은 것은 없었던 것인지, 나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꽤나 ‘흥분’해 있었다. 나는 ‘덕분에’ 이런 사건이 이 동네에서만도 거의 날마다 벌어지고 있으며, 잦은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의 대응이 얼마나 무력한지 다시 한번 온몸으로 확인했다.

#2 ‘파란마스크’는 공연음란죄?

  다른 방에서 ‘파란마스크’를 조사하고 있던 한 경찰이 이쪽 방에 건너오더니 고참경찰에게 이번 사건을 성폭력특별법에 의거해서 처벌할 수는 없냐고 물었다. 고참 경찰은 ‘추행’이 아니기 때문에 성폭력특별법에 해당되지 않으며 형법상의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순간 나는 ‘잡았다’는 ‘성취감’에 빠져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들이 일시에 덮쳐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투로 “난 단지 그 놈들을 잡고 싶었을 뿐이고...”에 ‘집착’했던지라 막상 잡으면 어떻게 처벌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했고 그냥 경찰이 ‘알아서 잘’ 처리해줄 것이라고 믿었나 보다.

용기에 객기까지 발휘해가며 잡겠다는 일념으로 몇 번의 실패를 거쳐 드디어 잡았는데, 잡고 보니 나는 ‘왜 그토록 그들을 잡으려고 했던걸까’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폭력특별법에 저촉될 수 있는 추행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더라도 단지 공연음란죄라고 하기에 ‘이건 뭔가 아니...’지. 감각적으로 ‘음란’이라는 말은 ‘성적표현자유’과 경합하며 선정성 논란, 음란유해물질 시비 등과 같은 사회적 의제 속에서 그 의미가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이해된다. 나아가 국가 권력에 의한 사회통제, 성적 통제의 아우라를 짙게 풍긴다.

공연음란죄(형법 245조)는 말 그대로 “공공연하게 음란한 행위를 하는 죄”이다. 성적인 도덕감정을 해하는 죄로서 건전한 성적 풍속 내지 성도덕을 보호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공공연하게’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알 수 있는 상태를 말하며, 현실로 지각되었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음란행위’는 성욕의 흥분 또는 만족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서 선량한 풍속에 반하여 사람에게 수치감·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야후 백과사전 참고) 즉, 불특정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음란’한 행위 자체가 죄가 된다는 말이다. 이 법에 따르면 타인의 눈에 띌 수 있는 장소에서의 연인간의 성적 행위는 공연한 ‘음란행위’로 죄가 될 수 있으며, 다수인 앞에서의 스트립쇼도 이 죄에 적용된다. 그러니까 ‘공공연한’ 곳에서 연인들의 찐한 애정 표현은 ‘음란’하고 ‘풍기문란’한 행위이며 마찬가지로 성기 노출 행위 그자체도 ‘음란한 행위’이기 때문에 죄가 된다는 의미이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거나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음란한) 행동 자체가 죄이다. 골목에서 벌이는 연인들의 찐한 애정행각과 골목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성기를 내보이며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행위(그것이 성적 만족이든, 심리적 만족이든 간에)가 ‘공연한 음란행위’라는 동일한 범주의 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길에서 우연히 어떤 연인의 찐한 애정행위 장면을 목격했을 때와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나를 향해 페니스를 내놓고 서 있는 남자를 목격했을 때 드는 느낌이나 인식이 같은가? 그것이 단순히 음란한 행위를 목격한 데서 오는 동일한 성질의 수치심이나 혐오감이란 말인가? 형법에 따르면 ‘음란행위란 사람의 성욕을 자극 또는 흥분시키는 것으로서 보통 정상인의 성적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한다. 이 법을 통해 추구하는 목적은 선량한 성도덕 내지 성풍속이라는 사회 일반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한다.

 역시나 ‘이건 뭔가 아니...’지 싶다. 내가 그들을 기필코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공연음란죄의 범주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가 공공연한 장소에서의 ‘성기 노출’ 행위를 사회적 풍속을 저해하는 ‘음란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은 분명 아니다. 더군다나 ‘선량한 사회적 도덕관념’에 입각해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여하고자 ‘파란마스크’를 잡기위해 쫓아갔던 것 역시 아니다. 진술서를 작성하고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나에게 그 당시 어떤 감정을 느꼈냐고 물었을 때 나는 화가 났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경찰은 수치심을 느꼈냐고 다시 물었다. 수치심... 사전에는 ‘남 보기가 창피하고 부끄러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왜 ‘파란마스크’ 때문에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야 하는 거지? 내 감정을 한 단어로 응집시키기 어렵고 그런 종류의 수치심이라고 하기에는 ‘이건 뭔가...’ 좀 걸리지만, 백보 양보해서 ‘수치심’이나 ‘혐오감’이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왜 나는 ‘수치심’을 느꼈을까? 내가 본 페니스와 ‘성기 노출’ 행위가 단지 볼썽사납고 음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사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또야 ~’ 그리고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그 후로도 웅크리고 숨어 있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경찰에 붙들려 나온 ‘파란마스크’가 떠오를 때마다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잡힐까봐 땀을 삐질거리며 숨어있던 그 ‘소심한’ 남자도 내(그 길을 지나는 여성) 앞에서만큼은 페니스를 내밀고 ‘힘’을 발휘하며 ‘만족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가 모종의 ‘만족감’을 획득하기 위해 연출한 상황에서 나(여성)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기력하고 성적인 존재로 대상화되고 있는 또 다른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 내(여성)가 우습게 여겨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며 ‘수치심’, ‘굴욕감’, ‘화남’ 등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 남자가 의도한 상황과 시선을 통해서 내가 원치 않는 성적 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은 자아가 쪼그라드는 느낌이며 ‘위축감’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스스로가 위축되는 그 상황은 몸과 뇌리에 각인되어 두려움과 공포를 유발하는 기제가 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인격적 모독이자 일종의 (성)폭력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3 신경증 : 너도 ‘파란마스크’?

 이후에 ‘파란마스크’가 어떤 형사 처벌을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날의 상황은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약간의 ‘경계심’, ‘긴장’을 상기시켰고 가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증세를 유발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 내 행동이 ‘용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무런 ‘공포’ 혹은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파란마스크’를 떠올려야 했고, 밤에 그쪽 길을 이용하는 것은 좀 꺼려졌다. 특히 그날의 경험은 내가 ‘폭력’에 취약하며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이후로 밤길에서 나는 언제 갑자기 어떤 폭력이 가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주변을 경계하고 긴장하게 되었다.

 단지 ‘성기 노출’뿐만 아니라 불특정한 사람으로부터 가해질 수 있는 불특정한 폭력들이 연상되며 내 행동이 위축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한번은 혼자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중년의 한 남자가 손에 무엇인가를 쥐고 걸어오고 있었다. 자꾸 손에 쥔 것에 신경이 쓰였다. 혹시 위협을 가하거나 위해를 할 수 있는 ‘무기’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 하나하나가 곤두서는 느낌이라니. ‘무사히’ 중년의 남자와 지나친 다음 ‘안도감’과 함께 밀려오는 것은 신경쇠약증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잡는 것으로도 끝나지 않는 ‘파란마스크’에 대한 ‘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