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청난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꼭 챙겨야 할 것들

                                                                          생기 (민우회 상임대표) 

지난 1월 7일, 오랜만에 대학의 학과 신년하례회를 다녀왔다.

졸업 후 한참동안 모임에 뜸했기에 망설였으나 학교 다닐 때의 교수님 정년퇴임과 병환 소식이 발걸음을 하게 하였다. 졸업한지 28년, 우와... 쉰 한살의 나이에 다시 찾은 학교는 건물이 많이 늘어나 있긴 하였으나 느낌은 예전 그대로였다. 

선ㆍ후배들, 교수님들과의 만남 속에서 내가 들은 이야기는 ‘학교 다닐 때 모습 그대로이다’ 와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가’ 였다. 흰머리가 성성함에도 그대로라고 해주는 것은 인사치레인 듯 하고, 학교 다닐 때의 조신한(?) 내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로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민우회라는 쎈 여성운동의 현장에 있는 나를 상상하기 어려운 듯 하는 얼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가끔 내가 내게 질문하는 것이기도 할진대 그 당시의 나를 아는 그들로서는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여성사를 전공한다는 후배의 여성운동에 대한 관심이 반갑기는 했으나, 세월의 간극에 긴장감이 느껴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 엄청난 일인 민우회 운동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여성주의자로의 삶을 질문하게 한다. 내가 민우회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내가 찾아가고자 하는 여성주의자로의 삶에 대한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 존중과 신뢰, 차이에 대한 감수성이 바로 그것이다.

성 평등을 이야기하고 개입하는 과정은 가장 어려운 운동 영역이다.

UN의 통계나 OECD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하지 않고서도 체감되는 우리 사회 여성들의 권한은 낮은 수준이다. 아직도 여성은 피해자일 때 지원이 가능하며, 인구의 반임에도 소수자에 속하며, 여성의 현실적인 사회 참여는 알게 모르게 배제되며, 어느 영역에서나 예외 없이 남성우월적인 사고는 존재한다.

이런 현실임에도 여성운동은 남성들을 자극하거나 지나치지 않아야하며, 갈등을 최소화해야 하고, 때로는 남성들의 이해와 격려를 바탕으로 운동을 펼칠 것을 강요받기도 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롭게 가려 하기보다는 여성들의 다른 목소리를 불편해 한다.

연말부터 떠들썩했던 민우회의 <호락호락 캠페인>은 새해를 맞이해서도 온ㆍ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열띤 토론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호칭’을 포함한 언어적 차별은 여성을 배제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호락호락 캠페인>은 여성이 여성에게 쓰는 ‘호칭’에 관한 다양한 경험담을 나누고, 대안 호칭 모색의 열린 공간 제안의 취지로 마련되었다. 캠페인 취지와는 다른 어원논쟁과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적인 댓글을 바라보며 이분법적인 사고로 치닫는 현실과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생각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상에서의 ‘말’은 생활이면서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호칭’의 예를 들어 ‘말’의 사용에 따른 경험담을 나누고, 새롭게 바꾸어볼 수 있는 제안 수렴에 캠페인의 의미를 두었다. ‘호칭’으로 인한 생생한 경험 사례와 당사자들 나름대로의 대안 제시, 캠페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시해야 할 것은 그리고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차이의 경계에 대한 민감성이다. 차이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여성들의 목소리로 사회의 가부장성을 드러내며, 주체적으로 대안을 찾아가는 활동이 여성주의 운동일 것이다.

개별적인 삶의 영역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자발적인 선택에 이런저런 이유로 딴지 걸림이 없는 세상 만들기에 열심인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 이 또한 내가 쉰한살의 나이에 민우회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이다. 

변화를 꿈꾸는 것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권리이다.

변화는 작은 출발에서부터 온다.

보다 나은 세상 만들기의 여성주의적 활동 개입을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하는 세대간, 성별간의 소통이 반복적, 지속적으로 쭈-욱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누군가 해야 할 엄청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엄청난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꼭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자신에 대한 배려와 아낌없는 존중, 자기긍정의 힘이다.  스스로를 보듬어내는 애씀이 없이 타인의 이해를 구하고 더불어 살기란 어렵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갖게 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