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회 조직문화 이야기 (2) - 잘났다 민우회

                                                                                         박봉(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의 문항(아래의 문항) 중, 지금 우리에게 부족하지만 앞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보라는 것이었다.

 ① 자기가 사용한 컵은 자기가 꼭 씻고 간다.
 ② 각 자의 손님 접대는 각자! 대표라도 예외 없는 문화  
 ③ 같이 할 일에 솔선수범 한다.        
 ④ 나이, 결혼여부, 아이 여부를 질문하지 않는다.            
 ⑤ 나이, 출신지역, 학력 등이 관계와 업무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위계가 되지 않는다.     
 ⑥ 언제 어디서나 더치 페이의 생활화 
 ⑦ 술은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⑧ 평등한 입사지원서를 사용한다.  
 ⑨ 별칭 사용의 문화 
 ⑩ 복장 및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⑪ 이성애자임을 전제로 연애관련 질문하지 않는다.
 ⑫ 힘쓰는 일에서 약한 척 하지 않는다. 천하장사 민우회!

<결과>

위의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1등은 나이, 결혼, 아이 질문 안하기, 2등은 복장, 외모로 판단하지 않기, 3등은 이성애자로 전제하고 질문하지 않기, 솔선수범이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답변총수가 적다. 이유는 이렇게 유추된다. 이 정도면 훌륭하니 부족한 점으로 고를 것이 없다하는 민우회 중독자들때문이거나, 첫번째 질문 자랑스러운 문화(!)를 물을 때는 5개씩이나 고르라는 강요가 있었지만, 두 번째는 많이 고를 것을 강요하지 않은 주최측의 보이지 않은 고도의 테크닉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민우회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이리라고 본다(나도 글로리 민우회족).
부족한 문화로 ‘나이, 결혼, 아이여부 묻지 않기’가 첫 번째로 꼽힌 것은 민우회의 자랑스러운 문화에서 1등이 ‘나이 등이 위계가 되지 않는다’였던 결과와 어찌 보면 위배된다. 나이나 학력, 출신지역 등이 업무와 관련되어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일상에서 여전히 나이, 결혼, 아이를 묻는 이 사회의 습관은 우리 안에서도 아직 쉽게 사라지진 않았나 보다.

나이, 결혼, 아이여부를 묻는 것이 왜 문제가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정보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면 서로 빨리 친해질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친해지다 보면 서로의 삶을 나누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나이나 결혼 등에 대한 상태, 가치관 등을 알게 된다. 오히려 서로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질문들은 종종 서로의 관계를 위계화시키거나 정상/비정상의 범주로 나누어 상대방의 심정을 상하게 한다.
나이와 결혼, 아이 질문은 거의 세트로 다닌다. 나이가 많으면 결혼이 궁금해지고, 그 다음엔 아이가 궁금해진다. 정상성의 권력은 질문에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중간에 예상치 않은 답변, “아니오. 안했는데요. 없는데요.”하면, “왜요?”라고 따라오는 질문. 혹은 표정들. 이것이 문제일 것이다. 묻는 거 그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말이다.
이것은 애인유무를 물을 때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맥락과 같다. 상대방이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전제한 질문.
누구는 “이렇게 질문하기가 까다로워서야..?”라고 투덜댄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살기 힘들다. 하지만 어쩌랴, 여성주의란 그런 것을.
이런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곤란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주의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노력할 수 밖에 없다고 결론내린다.

이 질문 결과를 집단별로 살펴보면, 대표는 더치페이, 나이, 결혼, 아이 질문 안하기, 자기 컵 씻기가 골고루 1표씩 나왔다. 오직 총 3표를 던졌는데 더치페이가 한 표를 차지했다. 무려 30%. 그리고 그 한 표는 위 그래프에서 본 것처럼 총 득표수이기도 하다. 나머지집단에서는 아무도 체크하지 않은 거다. 
나이주의 운운하며 밥 얻어먹는 우리들의 작태라니...우리 제발 그만 얻어먹자.^^

중견활동가집단은 1) 복장, 외모로 사람 판단하지 않기, 2) 나이, 결혼여부, 아이여부 묻지 않기, 3)이성애자로 전제하지 않기 순이었다.

중견활동가들의 경우 복장 혹은 스탈에 대한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점을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민우회에서 일정시기 활동을 하게 되면 소위 엄한 자리에 간혹 참석해야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스스로든 아니면 주변으로부터든 복장에 대한 통제를 겪게 된다. 민우회 활동가들은 거의 여성, 그리고 특히 나이가 비교적 젊(어보이)은 여성이기 때문에 복장으로라도 프로페셔날함과 신뢰성 등을 보여주어야 무시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정말 자주 느낄 수 있다) 생각해서 선배들이 후배에게, 후배들이 선배에게 간혹 묻곤(?) 한다.  “옷이 그게 머니?”
복장과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대우를 달리하는 문화를 깨야 한다는 것과 현실적으로 복장이 그 사람을 표현하게 되는 상황사이에서 우리는 고뇌한다.

1년미만 상근활동가는 첫 번째가 이성애자 전제, 두 번째가 솔선수범, 세 번째가 자기컵 사용하기, 술 강요 않기, 별칭사용하기가 공동이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술 강요 않기다.
깜짝 놀랐다. 내가 민우회에 십년이 넘게 있었지만, 술 강요하는 일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웬일이래? 혹시 이런 걸까?
최근에 상근을 시작한 20대 활동가들, 그리고 최근 신입회원모임을 해 보면 회원들, 정말 술 안 마신다. 담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시고 죽자는 분위기에서 살아오던 오래된 활동가들도 요즘엔 체력이 딸려 예전만 못하지만 가끔 습관이 도질 때면 거의 모든 신입활동가가 호프집에서 콜라를 마시거나 호프한 잔으로 연약한(!) 모습이 웬지 얄밉다. 그래서 이렇게 한마디 던지는 거 아닐까? ‘한 잔 하지?’.
이런 강요 아닐까, 내가 너무 너그러운가. 설마 ‘마셔마셔’하며 파도타기를 하거나 ‘러브샷’을 억지로 하기야 했겠나..민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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