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장은 어디에?

이은아(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외국인과 이주노동자의 공통점
사람들에게 ‘외국인’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30대 전후의 백인 남성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본인의 연령대와 비슷한 연령대의 외국인을 생각하곤 합니다. 이번에는 ‘이주노동자’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머릿속에 있던 그 외국인의 피부색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간혹 아닌 경우도 있지만요. 일반적인 이주노동자의 이미지는 동남아시아지역 출신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한국의 열악한 고용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30대 남성입니다. 그리고 ‘외국인’과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변치 않는 것이 있습니다.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성별이란 것이지요. 외국인, 노동자, 이주노동자, 외국인근로자... 여기에 ‘여성’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고서는 좀처럼 여성의 모습이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통계에도 없는 이주여성노동자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근로자가 증가하면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주변화된 지위에 있으며, 이들의 고용차별과 인권문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드러내고 사회적 공감을 얻고자 할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경험이 이야기됩니다. 흔히 언론에서, 공식 통계 등에서 나타나는 외국인 근로자는 주로 남성입니다. 성별화된 노동시장은 이주노동자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주여성노동자(여성은 ‘여성’을 붙여야 하는 현실을 통감하며)들은 남성과 다른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의 일은 공식 노동통계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문제에 이주여성노동자도 충분히 포함되어 있는 걸까요?

이주여성노동자? 여성결혼이민자?
최근 국제결혼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여성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아내와 어머니로서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며칠 전 제가 알게 된 한 조선족 여성은 중국에서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한 후 혼자 딸을 키우다가 한국 남자와 만나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시부모와 불화로 집을 나와 쉼터에서 아이를 낳고, 일자리를 찾았으나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적당한 일자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임시직으로 공장에 들어간 첫날,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돌도 안된 아기를 맡길 곳도 없어 병원에서 이 여성과 아기는 며칠을 보냈습니다. 외국인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요?

가려진 이주여성노동자의 경험
이주여성노동자들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에 더하여 성별화된 노동시장과 남성중심의 성문화, 그리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다양한 성차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여성노동자들의 경험은 아직 명명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경험의 부재가 아니라, 이들이 갖는 경험은 이름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얼마 전 친구들을 만나 중고등학교 때 우리가 겪었던 그 ‘경험’이 ‘성희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주여성노동자의 경험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이유로 간과되곤 합니다. 이주여성노동자의 경험이 바로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인데도 말입니다.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넘어, 그리고 여성의 목소리로
얼마 전 민주노총 포스터에서 이런 문구를 봤습니다. ‘과부사정 홀아비가 알고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알듯’ 그리고 내용은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문제가 결국 한국 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노총이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의미 있으나 그 이유가 단지 그들과 구분되는 ‘우리’의 권리보호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장은 그 자체가 심각한 인권침해와 차별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그러기에 이해의 주체가 ‘우리’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성)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민자 사이에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이주여성노동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