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렇게 살아있는 그대로

●제이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친구가 준 꽃다발이 무척 예뻤다. 꽃다발 속을 장식하던 길쭉한 녹색 식물(상상을 돕자면, 줄기가 긴 돌나물처럼 생겼다)을 벽에 거꾸로 붙여놓아 말리기로 했다. 그렇게 잘 말라서, 이따금 친구의 정을 떠올리게 해주고 보기에 예쁘면 그만일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놀랍게도 벽에 붙여둔 식물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도 중력을 거슬러서, 끝부분이 180도 구부러져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뿌리도 물도 없이 성장을 지속하는 이 식물의 생명력에 경탄하면서도, 나는 당황했고 약간 무서웠다. 사실 무서움 이상의 불쾌감을 느꼈다. 실망감, 그리고 징그러움. 왜일까. 나의 기대와 예상에서 벗어난 상황이었고, 보통 식물이 보여주는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 괴상한 각도로 마구 구부러진 기괴한 모양새였기 때문일 거다. 이걸 어찌할 것인지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거꾸로 매달아 괴롭히는 것 같아 그대로 두기도 뭐했다.

   이 괴상한 풀떼기(?)를 손에 들고 앉아 있자니 느닷없이 진지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이 식물이 내 마음속에 갖고 있던 예쁜 그림 그대로 얌전히, ‘죽어’ 있어 주길 바란 것이었어.’라는 생각. 그렇다고 ‘난 정말 옳지 않군! 반성해야겠어!’라고 엄한 자아비판을 한 것은 아니다. 꽃 좀 말리겠다는 게 뭐. 그럴 수도 있지. 다만 ‘죽어있지 않은’ 식물을 인식한 순간의 내 마음이 여태껏 살면서 종종 목격했던 어떤 편협함을 연상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가진 세상에 대한 그림 바깥에 있어서 낯선 존재, 예상을 비껴가 나의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존재에 대한 혐오와 외면을. 그런 편협함이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어 어떤 계기를 통해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는 이상 스스로 인지하기조차 힘들다.

   이를테면 이런 때. 어떤 사람의 팔꿈치 아래로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팔 아랫부분이 텅 빈 공간임을, 그 팔꿈치의 뭉툭한 단면을 인식할 때. 만약 마음속에 그런 사람에 대해 ‘(안쓰러운) 장애인’이라는 익숙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면, 그 사람이 상당히 표독스러운 성격임을 알았을 때. ‘심지어’ 그 사람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또는 손톱과 발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곱게 바른 사람의 얼굴을 보니 수염자국이 역력한 남자의 모습일 때.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던 성폭력 피해자가 길거리에서 담배 피며 친구와 욕을 하고 장난치는 모습을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 그려진 낯익은 세계를 어그러뜨리고 혼란을 가져오는 대상에 대해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느낀다. 그리곤 애써 외면하거나, 때론 더 쉽게 비난하거나, 자기가 해석하기 편한 쪽으로(이해 가능한 이유를 붙여) 단정한다.

   나는 사실 그 살아있는 식물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 없었다. 그저 갈빛으로 바싹 말라 박제된 추억이자 풍경의 일부가 되어주면 되었다. 그런 거랑 좀 비슷한 거 아닐까. 아무리 장애인 차별 철폐나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에 분노하고 공감한다 한들, 자기 마음 속 그림과 어긋나는 그들의 면면들을 보려하지 않거나 내심 혐오한다면, 실은 ‘살아있는 그들’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착한 사람이 괴롭지 않은 사회'를 바라는 것일 뿐.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차이, 내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올바른' 사회에서 '괴팍하고 못난' 것은 너무도 쉽게 '없거나 나쁜' 게 되는 건 아닐까.

   누구나 마음에 세상과 인간에 대한 자기만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실제의 복잡한 현실과 딱 맞을 수 없다. 모두가 각자 제한적인 한 개의 삶만 살 수 있을 뿐이니까. 애당초 자기만의 그림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저 모든 사람이 그게 ‘나만의 그림’임을 마음 속 깊이 인정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낯선 것에 대면했을 때 멈칫 놀랄지언정 곧 겸허하고 조금 기쁜 마음으로 그림을 고쳐나갈 수 있게. 세상은 결국 나의 세계관 바깥에 따로 존재한다. 현실 속의 ‘타인’들은 자신만의 연속된 삶 속에서 나름의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내 가치관대로 그들의 삶을 재단하려는 것은 그들이 그림 속에서 그냥 그대로 ‘죽어’ 있기만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감수성을 벼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선량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도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해 버리기 쉬울 것이다. 실제로 진보적인 여러 정체성/인권 운동 안에서도 다른 정체성으로서의 삶을 외면하거나 배척했던 역사가 반복되어 왔다. 나는 그런 현실을 마주하는 게 조선일보 사설에서 나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슬프고 아프더라.

   그래서 그 이상한 식물은 어떻게 되었냐고? 지금은 내 방 창가의 물컵 속, 물에 담긴 줄기 단면에서 뿌리까지 내렸다. 여전히 ‘제멋대로’ 자라나고 있다. 실망스럽게도(?) 이젠 제법 평범한 비주얼이 되었다(앗. 이런 것에 실망하는 것도 문제적인데..ㅋ). 기묘한 식물의 힘찬 ‘살아있음’을 새삼 응원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괴상할 것도 훌륭할 것도 없이 ‘제멋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