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으로는 말할 수 없는 (반)성매매 이야기

●숨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활동가/민우회 회원)

언젠가 고모부가 돌아가셔서 몇 년 만에 온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일이 있었다. 다들 앉아서 서로의 안부나 돈은 잘 버는지 결혼은 했는지 하는 것들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 되었다. 유흥주점을 운영한다는 친척언니가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응, 업소에서 일하는 언니들 힘든 일 있을 때 상담해주고 의료지원도 하고 법률지원도 하고 그래.”했더니, “뭐? 너 여성단체야?” 라며 눈을 부릅뜨는 언니의 모습은 내 머리채를 뜯어놓을 기세였다. 이내 가라앉히는 한숨을 쉰 뒤, “너, 정신 차리고 우리 가게 와서 언니 밑에서 일해라. 돈 버는 게 장땡이야 이것아.” 이어지는 구체적이고 솔깃한 제안, 마담이 가진 직업수완이랄까. 나는 하릴없이 허허 웃었다.

언니는 마담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아가씨였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마담들은 상담소의 직접적인 지원의 대상은 아니다. 마담들은 주로 자신을 보고 오는 손님과 종사자 여성들을 관리하고, 손님과 여성들을 연결해 주기도 하며 때로는 가게를 운영하는 등 업주의 역할도 해낸다. 구체적으로는 종사자 여성들의 선불금이나 사채를 알아봐주고 지각이나 결근도 체크하고, 다이어트약이나 성형수술을 권하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거주지를 계약해 주기도 한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을 지탱케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그날그날 손님 테이블에 여성들을 연결시켜주고 2차(성매매)를 알선하고 지명시키는 일이다. 이 일은 곧 수입으로 직결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성매매피해지원 상담소에서 지원 안 해주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마담들의 대부분이 현장에서 아가씨(유흥업소나 집결지에서 여성종사자를 부를 때 쓰는 말)로 일하며 그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때 마담들로부터 욕을 먹어가면서 빚 올려 가면서 테이블과 2차를 뛰던 언니들이, 업주가 가게 내준다고 수익의 비율을 높여준다고 해서 마담 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담이라고 해서 빚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가씨 시절 빚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거나, 아가씨들이 이미 갚았으나 차용증을 없애지 않아 억울하게 남은 빚을 보증인이라는 이유로 떠안는 경우도 허다하다.

언니들은 하나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성을 기반으로 한 유흥산업 속에 있는 여성들의 삶은 결코 단일하거나 분절적이지 않으며, 아가씨와 마담이 연장선상에 있듯이 여러 동기와 정체성들이 뒤섞이기도 한다.

성매매/성노동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아가씨로서 초이스를 받아 테이블을 뛰고 2차를 하지만 등록은 개인 사업자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여성들은 일단 돈을 버는 주체로서(세상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가족에게 돈을 보내거나 생계를 꾸리거나 자유로운 소비를 하거나 강제된 소비를 하기도 한다. 노동자 정체성을 안고 무책임하고 비인권적인 단속에 맞서 일할 권리를 주장하기도 하고, 아가씨여도 자영업자처럼 허울 좋은 시스템을 떠안고 억울한 노동환경 속에서 적응해 살아가기도 한다. 구매자나 업주의 몰상식 속에서는 경험의 노하우를 살려 생존하는 법칙을 터득하기도 하고, 도저히 견디기 힘든 물리적 정신적 경제적 피해에 직면했을 때는 평생을 일해 왔던 성산업에서의 탈출을 꾀하기도 한다. 물론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혼이나 전업을 통한 탈성매매의 경우도 있다.

이렇게 다이나믹한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에서 자신의 몫을 살아가는 유흥업소 여성들은 얼마나 고단한가(혹은 얼마나 살만한가).

성노동자의 성매매피해, 한 호흡으로 바라보기.

성매매가 합법인 사회이든 아닌 사회이든 늘 안전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밀폐된 공간에서의 성노동. 보통의 경제와는 너무 다른 구조의 경제 체계의 구속력. 끊임없이 섹슈얼리티한 몸으로만 호명되고 소비되는 성산업의 기반. 이 안에서 여성들이 거쳐가는 모든 정체성은 자발적으로 시작했어도 비자발성을 구조적으로 가진다. 자신의 일을 성노동으로 정체화한 언니들이라도 자본을 가진 업주나 사채업자나 구매자로부터 무조건적인 안전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게다가 피해에 대해 조명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피해자화 하는 것도 아니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답답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반성매매/성노동 담론 논쟁에서 어느 편의 손을 들어주느냐보다, 여성들의 피해와 목소리를 드러내고 합의하고 실현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사회적인 문제제기와는 별개로 내 주변에 있는 성산업 종사자를 떠올려본다. 여성에게 모순적으로 작동하는 성산업 구조를 반대한다고 해서 내가 사촌언니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말한다면 그 말이 씨가 먹힐까?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은 과연 관계에서 정당할까? 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는 환경과 이 일을 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노동 시장의 구축이다. 사실 이것들이야말로 궁지에 몰리지 않은 자발적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런 세상 언제 오려나, 불가능해 보일수록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