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결혼했을까?

- 화성인의 지구생활기 -

● (화성에서 온) 베짱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어수선했다. 거실 한쪽 벽에 기대앉은 남편의 표정은 화난 기색이 역력하다. 모임으로 미처 내가 집을 치우지 못 하고 그냥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나마 대강이라도 치워놓은 곳이 거실이었는데 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그곳마저 눈치 없이 금세 어지럽힌 것이다. 남편의 얼굴 근육이 씰룩거린다. 지레 주눅 든 내가 남편에게 다가가 왜 화가 났는지 물었다.

묻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속사포 랩이 쏟아져 나온다. 결론은 집이 왜 난장판이냐는 거다. 안방은 안방대로 어제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가 뒤죽박죽 펼쳐져 있고 소파엔 빨아놓고 개지 않은 빨래가 수북하고, 아이들 방엔 새롭게 널어놓은 빨래가 이미 이틀째 그 자리에 널려있으며, 거실 역시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책과 장난감이 즐비했다. 어제 하루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오늘마저 이런 이유가 뭐냐고 따진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뭘 했는지 스케줄을 대란다. 우물쭈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도 이틀 동안 바빴음을 설명했다. 장을 보고, 아이들의 어린이집에 들른 것, 부모교육을 듣고 저녁을 먹고 모임에 간 이야기 까지 등등등.

마치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는 심정으로 일거수일투족을 남편에게 보고했다. 심문이 이어졌다. 대체 그렇게 잠깐의 짬도 없었느냐고.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치울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어제오늘은 정말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했더니, 이런 환경에서 애를 키울 거면 대체 부모교육은 왜 하냐며 반문한다. 부모교육 받을 시간에 집이나 좀 치우란다. 또 뭐라 뭐라 잔소리를 해대는데 이미 뾰루퉁해진 내 마음에 남편의 훈계가 들어올 리 없다. 분명 나는 이틀 동안 꽤나 바빴는데 단지 그 바쁜 일과에 가사노동이 없었을 뿐이었다.

 '지금 당신 하는 말들을 내가 듣고 있는 부모교육시간엔 뭐라고 하는지 알아? [옳은 개소리] 라고 한다구. 지금 당신이 나한테 아무리 지당하게 맞는 얘길 해봤자 내 상한 마음엔 이미 옳은 개소리일 뿐이야, 이 양반아' 겉으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속으론 '옳은 개소리란 이런 거구나' 이론으로만 듣던 걸 실습하고 있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자 옆에 있던 큰딸애가 아빠에게 대신 맞선다. 아빠는 혼나면 기분 좋겠느냐며 예쁜 말로 하라고 나름 자기방식의 논리를 주장한다. 3살 된 둘째도 아빠를 때찌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아빠를 혼낸다. 아이들의 당차고 귀여운 행동에 남편은 웃음이 터져 내편은 아무도 없다며 신세한탄을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내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남편의 말은 한마디도 틀리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그러한 것들이 당연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깔끔까진 아니어도 적당히 집안을 단정하게 하고 사는 게 남편이 주장하고 요구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나는 지독한 패배감을 맛본다. 나는 가정주부가 맞지만,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주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것 외에 내가 정말 즐거워서 하는 집안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설거지는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이고, 그나마 청소기는 밀지만 걸레질은 또 싫어 남편에게 맡긴다. 남편에게 늘 지적당하는 정리정돈은 정말 쥐약이다. 태생부터 나에겐 그런 개념 따윈 DNA에 조차 없었던 것 마냥 정리정돈은 정말 잘 못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대충 쌓아놓고, 쓰던 자리에 놓지도 않고, 한번 입은 옷은 아무데나 쌓아놓는다.

빨래도 마찬가지다. 빨래를 세탁기에 빨고 건조대에 잘 너는 것까지는 할 만한데, 개는 게 싫다. 마음이 허락하는 날엔 빨래도 얌전히 개켜 서랍장에 넣어놓곤 하지만 대체로는 소파에 쌓아놓거나 널어놓은 그대로 필요한 옷을 골라 입는다. 아주 가끔 한 번 씩 맘먹고 치울 때가 있지만 그때뿐이고 또 다시 쌓이고 쌓인다. 중요한건 난 그런 것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다. 내 눈엔 어지러운 게 전혀 눈에 안 들어온다고나 할까(그러니 이러고 살겠지만).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어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나는 잘 사는데 남편은 그게 아닌 거다.

부모교육시간에 MBTI 성격유형 검사에 대해 잠깐 얘기한 적이 있었다. J형(판단형-정리정돈에 능하고 계획적 체계적)과 P형(인식형-자율적이고 개방적, 융통성)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는데 다른 엄마들은 모두 J형인 반면 나 혼자만 P형이라고 하시는 거다. J형 엄마들은 P형 자녀들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고 있었다. 허물 벗듯 옷을 벗고, 정리정돈 일체 안 하고, 양말이던 옷이던 뒤집어 벗는 자녀들 때문에 엄마들은 잔소리를 달고 살고 스트레스를 받고 자기만 나쁜 사람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자녀 본인들은 그러한 것에 대해 아무 인식도 못 할 뿐더러 엄마가 그런 일로 전전긍긍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 자녀의 모습이 바로 나였던 거다. 지구인인 그들에게 나는 화성인인 것이다. 일순간 가해자가 된 나는 알게 모르게 공격적인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 자녀들의 마음처럼 엄마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게 그렇게 용서 못할 범죄행위도 아니거니와, 안 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내 생각엔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문제시될만한 중요한 행동이 아닌데 왜 그렇게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연연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J형 엄마들은 혹시나 아들이 커서 P형 며느리를 데려올까 또 전전긍긍 했다. 그럼 머리 아플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 결혼상대자가 되는 순간이다. 그런 난 정녕 결혼해선 안 될 여자란 말인가? 화성인인 나는 그들의 며느리도, 누군가의 아내도 될 수 없는 비정상적인 결혼부적합자인 것일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을 뒤로 한 채,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부라는 이유만으로, 가사노동으로 내 모든 것이 평가되고 귀결되는 이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럽다.

난 단지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이다. 그 사람과 일생을 함께하고 싶어 결혼을 했고 더 큰 그림을 함께 그려나가길 바랐다. 그러나 결혼생활 6년차. 우리를 늘 다투게 하는 것이 이렇게 난데없는 곳에서 불거져 나올 줄은 몰랐다. 우리의 사랑이 시들해졌다거나, 혹은 가치관이 달라서 따위의 그럴싸한 멋진 이유까진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가장 이혼사유가 많다는 성격차이도 아닌 가사노동 때문이라니……. 내 나름 6년간 노력한다고(옛날에 비하면 정말 많이 바뀐 것인데)했는데도 안 되는 부분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언제까지 이 문제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가. 나는 왜, 무엇을 위해 결혼했을까. 나와 유사한 DNA를 가진 지구에 사는 화성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지구에 맞춰 살아야 할까, 아니면 화성으로 돌아가야 할까.

이 글을 쓰면서도 실은 이 글을 읽을 지구인들의 지탄이 두렵다.

민우회니까.............. 그나마 용기 내어 화성인의 생각을 소심하게 밝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