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가족>이라 쓰고, <비범한가족>이라 읽는다.

● 문미정(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나는 망원동의 따사롭기 그지없는 여성단체의 회원이다.  그 단체의 정책위원 1인, 그 단체의 활동가 1인과 함께 산다.

‘비정상 가족들의 비범한 미래기획’이라는 프로젝트에 ‘출연’했다. 언니네트워크에서 우리 가족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타인의 시선을 거쳐 나의 일상을 전시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른바 정상가족에게 <인간극장>에서 출연의뢰가 왔다 해도 어찌 망설이지 않았을까. 지난 달부터 튀어나온 아빠와 딸의 갈등이 없었더라면 편하게 수락했을 텐데, 남들이 우리 사는 모양새를 놓고 왈가왈부하면 어쩌나, 회사는 갑작스런 구조조정 분위기로 술렁이는데 이런 거 할 때인가, 우리는 얼마나 화목한(평범하다고 믿어서 자랑스러운) 가족인가를 따져보았을 것이다. 그 때, 우리에게도 이런 저런 갈등이 많았었다. 특히 막둥이는 막 집을 떠날 신호를 보내오고 있는 참이었다. 생각이 크게 오락가락했다. 꼭 해야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몇 번의 가족회의를 통해 막둥이를 제외한 3인이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인터뷰 의뢰가 왔을 때부터, ‘우리’와 ‘가족’에 대한 생각과 토론이 많아졌다. 내가 죽으면 ‘남은 우리’는 어떻게 되나. 그들은 ‘장례식장에 와 준 고마운 친구들 중 일부’가 되겠지. 이런 걱정 때문에 우리는 연말이면 유언장을 꼼꼼하게 써 왔다. 이렇다할 재산이 없는 나의 유언장은 원가족에게 ‘우리’를 설명하는 호소문이 되었다. 명절이면 꼭 ‘우리’는 나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다. 나에게는 ‘우리’에 대한 증거가 필요했다. 이름없는 우리관계에 이름을 꼭 붙이고 싶었다. 이름이 없는 관계는 참 힘들다. 관계의 윤리가 정해져있지않고, 주고 받는 신호에 대한 경험적 이해가 없으며, 롤모델도 없다. 관계에 이름이 있으면 ‘당연한 것’의 폭이 넓어진다. 그러나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우리가 새로운 길을 걷고 있구나. 없는 길을 내고 있구나. ‘가족’이라는 틀 안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정상가족을 닮아가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발견은 큰 해방감을 주었다. 요리조리 모양을 바꾸어가며 언니, 아빠, 고양이, 부장, 동료, 책임자, 선배, 파트너, 교사, 이모 등의 역할을 흉내내어 왔는데, 그 중 어느 하나에도 머물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길을 찾는 사람은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그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이름’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없는 이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더 많은 ‘우리’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기로 했다. 무엇보다 ‘우리’와 ‘우리’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을 막둥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번 목이 메였다. 밖을 향해 우리를 설명할 것까지 뭐있나. 우리끼리 잘살면 되지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우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각자 삶의 무게들, 함께 애써온 지난 시간의 소중함, 떠나고 있는 막둥이에 대한 복잡한 심정, 이 모든 것을 함께 해준 서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맨몸으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터뷰를 하기 잘 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던 파주집 근처의 경치좋은 곳을 찾아, 예쁜 옷을 꺼내입고 사진촬영을 갔다. 크고 검은 카메라를 든 사람이 세 명, 이런 저런 짐을 들고 있는 스텝이 우리를 둘러싸고 연예인처럼 사진촬영을 했다. 세 명의 사진사가 풀밭에 드러눕고 쪼그려 앉아 우리를 찍고, 스텝 한 명은 반사판을 두 손 높이 쳐들었다. 우리 셋은 그 가운데에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제법 아련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동네사람들에게 뻐기는 심정이 되었다.

이 인터뷰로 책을 만들고, 사진으로는 전시회를 한다고 했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던 직장동료 한 명이 떠올랐다. 이 친구가 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전시회에 초대할지 말지 망설였다. 결혼한 사람이 나에게 ‘나도 한 번 당신처럼 결혼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일도 있고, 결혼을 앞둔 사람이 내 앞에서 자신의 결정을 변명하듯 설명하는 일도 있다. 비혼을 존중받고 싶은 나는 결혼선택과 비혼선택이 맞대결하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에 대해서 사회가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만큼 비혼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이, 어쩌다 이렇듯 요상하게 흘러가서 결혼한 여성들과 비혼여성들이 자신을 변명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일이 되어버렸나. 혹시 결혼을 앞둔 내 동료가 내 삶을 궁금해하기 보다 자신을 변명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결국 나는 전시회 이야기를 흘리듯 전했지만 적극적으로 초대하지는 못했다. 대학로의 전시회장에서는 우리가 만든 중창단 ‘엉망진창 시스터즈’가 노래부르는 동영상이 나오고 있었고, 벽에는 우리의 유언장에 있던 몇 문장이 떡허니 올라 앉아 있었다. 나는 또 울었다. 그리고, 여분의 스토리북 두 권을 더 샀다. 어떤 날인가 누군가에게 이 책을 선물할 것이다. 그 날이 어떤 날일지, 누가 이 책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하는 일은 설렌다.

막둥이는 독립하여 더 씩씩해졌다. 우리는 파주의 휑한 집에서 서울의 소곤소곤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여전히 지지고 볶고 산다. 인터뷰를 하던 때와는 또다른 지지고 볶음이다. ‘우리’는 나에게 보장보험이라기 보다 더 큰 현재적 무엇이며, 따라서 ‘죽을때까지’라는 약속으로 관계를 증명하는 것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졌다. 언젠가 우리가 갈라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쌩하니 갈라서지는 않을 것이다. 때가 되면 천천히 살금살금 서로를 놓아줄 것이다. (가족)중창단 ‘엉망진창 시스터즈’는 새로운 곡을 준비하고 있다. 두 명의 생일이 몰려있는 시월이라 나물도 팍팍 무쳐야 한다. 이 글이 칼럼에 실리면 우리 막둥이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