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않는 것들의 ‘정치’

무지개빛(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뒤돌아선다.

   나지막히 들리는 바람소리 누가 꼭 등뒤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고개를 돌리니 주위엔 아무도 없다. 나뭇가지도 이리비틀 저리비틀 고개를 푹숙이고 술취한 사람처럼 휘정휘청한다.

   날씨가 쌀쌀해 지니 사람들 발걸음도 종종걸음이다.

언제부턴가 내 의식은 마치 누군가 뒤에서 쫓아와서 나를 밀쳐내고 앞으로 달려가 웃으며

그것을 보고 나는 뒤에서 막 쫓아가는 느낌이 든다.

요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에 휩쓸려 서로 누군가를 치고 올라가야지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것 같다. 겉으로 보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에 열광하고 행복을 찾는다. 그리고 그게 다 인 것처럼 믿어버린다.

  그렇게 믿어져 버린 요즘 사회를 보면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많이 보인다.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고 보여주지 않으면 볼 수도 없는 이야기.

특히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고 연애에서 성적의사소통, 결혼생활의 사적인 문제, 차별받는 여성노동 문제에 관해서도 그렇다. 생활 속에서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그냥 묻혀진 문제가 되고 아무도 밖으로 얘기를 꺼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겉모습만보고 짐작하고 판단하여 단정 지어 버리는 것 예를 들면 화려하게 분장한 여자 연예인을 보고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등의 고지식한 판단 같은 것 말이다.

   얼마 전에 나는 우연히 한 토론회의 일환으로 성적의사소통을 위한 단막극에 참여하게 되었다. 출연자 개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지난 내 연애의 방식과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게 되었다. 말로 하다보니 무의식 속에 있던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변형되고 고쳐지기도 했지만 이런 과정에서 바깥으로 보여지기 어려운 상황들이 드러나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연애를 하지만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꺼내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 상담 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 사는 여자라든가 외도 등등의 개인사적인 문제들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쉬쉬하다가 참고 참고 곪고 곪아서 시간이 흐른 후에 해결해야할 때 수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다반사다.

   여성 노동에 있어서도 그렇다. 회사나 직장에서 차별받고 있는 현실이 밖으로 드러나 해결되고 있는 것들이 과연 몇프로나 될까? 이런 문제들 뿐만아니라 더 많은 문제거리들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사회속에 많이 일어나고 있다. 갈등을 통해 힘들 때 우리는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물론 친구나 가족이나 주변에 편한 사람을 만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지만 심각한 상황이거나 법적인 해결이 필요할 때 우린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왜냐하면 자신의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어려움들이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지금 보이는 것을 바로 보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들이 우리가 바로 본다고 하여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의 연관성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뉘어져 마치 각각이 서로 다른 원리나 작용방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데 있다.

   물론 보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어려운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로 보기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보이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고,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보이는 것 자체 만으로도 모든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이 되어야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인식되어지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알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보이는 것에 집착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해서 보이는 것을 폄하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은 모두 동등하게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연애든 일이든 결혼생활이든 마음껏 얘기 할 수 있고 풀어줄 수 있는 소통공간이 많아져야 갈등과 차별이 없는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 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