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친환경무상급식

박제선 (한국여성민우회 생협 활동가)

고백하자면 원고청탁을 받기까지 ‘친환경무상급식’에 대해 고민을 한 적이 없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좋은 정책’이라는 느낌 뿐 이었다. 어쨌든 원고를 쓰기로 약속한 다음부터 고민을 시작하기는 했는데, 고민의 깊이를 더하지 못했다. 글을 쓰려면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정리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왜 그럴까. 30대 미혼 남성이며, 결혼에 대해서도 다소 부정적이기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나는 참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된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긴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국가가 밥도 책임진다는, 해보지 못한 상상

그때부터는 친환경무상급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 즉 내가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아닌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이유를 찾았다. 내가 경험하거나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국가나 사회가 다른 아이의 밥을 챙길 수도 있다는 아니, 챙겨야 한다는 윤리의식 내지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살아온 한국 사회는 이렇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져야 하겠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고 죽는 과정 모두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다. 어렵게 취직을 해 생활만으로도 빠듯한 월급을 아끼고 모아야 한다. 언제 아플지 모르고, 어떤 사고가 닥칠지 모르는 인생사. 오로지 자신의 경제력으로만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펀드도 들고, CMA 통장도 만들고, 보험에도 가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픈 사람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나라에서 남의 집 아이 밥까지 챙길 여유는 애당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빈곤하고 척박한 생각을 하는 것이 오로지 나만의 탓일까.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단군 이래 5천년 동안 굶는 백성을 가엾게 여긴 임금이나 정부가 있었을지언정 이를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긴 정부는 없었던 것 같다.

‘한 사회의 도덕성을 시험하려면 그들의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라’

그런데 친환경무상급식은 아이들에게 밥을 제대로 먹여야 한다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바라본다. 친환경무상급식이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어떤 점이 달라질까. 우선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밥을 공평하게 먹을 수 있게 된다. 선별적 무상급식일 때 가난한 부모를 둔 동심이 겪어야 하는 상처와 설움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현재 무상급식 대상자가 되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의 어린이들에게도 친환경 급식이 제공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건강한 밥을 공평하게 먹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도덕성을 시험하려면 그들의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라’는 말이 있다. 친환경무상급식을 실시하면 적어도 한국 사회가 아이들의 밥은 굶기지 않는 양식을 갖춘다는 의미가 되겠다.

한국 사회의 철학과 가치의 잣대

그리고 친환경무상급식은 이른바 우리 사회의 얼굴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어떤 이들은 무상급식을 ‘부자 공짜 점심’이라고 폄하하고, ‘온 국민의 점심까지 챙겨야 하는 것이냐’고 역정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 같지 않은 말이 은근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바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사실 이런 인식은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정부가 책임질 수 있으면 국민의 점심을 챙기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일까? 다른 이들의 밥도 신경 쓰고 챙길 줄 알아야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까.

멋진 세대로 자라 날 친환경무상급식 세대

친환경무상급식을 먹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우리 사회의 얼굴이 좀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내 점심만 챙기는 지금 어른들과는 다른, 최소한 친구와 이웃의 점심까지 함께 챙길 줄 아는 세대로 자라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다. 그리고 밥에서 나아가 최소한의 복지와 인권, 삶의 문제에 대해 사회가 책임지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자존감 있는 멋진 세대. 친환경무상급식을 먹으며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멋진 어른들로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