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지연의 죽음을 잊지 맙시다.

 - 이종란(반올림 활동가) 

한 어린 여성 노동자 고 박지연씨가 지난 3월말, 23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2007년 11월에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현재의 반올림)를 발족한 직후였다. 그녀는 새롭게 알게 된 추가 피해제보자였던 것이다.

대책위를 처음 꾸릴 때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삼성반도체에서 일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가 6명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6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혈액암 백혈병이 젊은 20~30대에 걸릴 확률은 인구 10만명당 1~2명으로 매우 희귀하기 때문이다.

 2인 1조로 일한 황유미씨(19살에 입사, 23세 사망)와 이숙영씨(19살에 입사, 31세 사망) 모두 백혈병으로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는데, 이들은 일명 ‘퐁당설비’(작업자가 직접 화학물질들이 담긴 수조에 반도체 원판을 퐁당 퐁당 담갔다 빼었다 하는 설비)에서 직접 화학물질앞에 노출되어 일하였다는 점 등 처음 대책위가 발족할 당시 알고 있었던 6명의 피해자들은 모두 업무상 발생한 백혈병이라고 생각할 충분한 근거들이 있었다. 이후 대책위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도 이것이 분명한 산업재해 라는 것에  확신을 주었다.

클린룸의 진실

우선, 청정산업의 대명사로 알려진 ‘클린룸’은 제품을 클린하게 하기 위해 먼지만 없앴을 뿐 독한 화학약품을 많이 사용하므로 사람 몸에 절대 클린 하지 않다. 모두 제품 기준인 것이다.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개수가 800여가지가 넘고 반도체 성질을 띄게 하기 위해 서로 혼합되고 화학반응하여 생기는 부산물(케미컬의 흄)의 유해성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점. 

둘째, 보호구로 착각되는 ‘방진복’은 얇은 천으로 만들어져 제품 보호용 옷일 뿐, 사람 몸을 화학물질등으로부터 보호하지는 못하는 옷이라는 점.

셋째, 반도체 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유기용제를 이용한 세척작업을 하는데, 산업의학 전문의들의 말에 의하면 보통 이러한 유기용제 속에 벤젠 등 백혈병 유발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점과 발병된 노동자들이 주되게 세척업무를 하였다는 점.

그리고 박지연씨처럼 방사선 기계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막히게도 노동자들은 엑스레이 기계가 위험한지도 모르고, 또 현장에 방사선 발생 기계가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혈액암 피해자 규모가 놀라우리만치 많다. 처음 6명인줄 알았으나 계속된 제보는 26명까지 파악하게 되었다. 또 난소암, 유방암, 뇌종양, 흑색종(피부암), 육아종, 골육종 등등 젊은 20~30대 나이에 너무도 많은 희귀 암 피해자들이 있다. 유산과 불임, 기형아 출산의 문제도 산적하나 아직 논란이 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피해사실들이 들통이 날까봐 두려웠던 것인지 삼성은 산재신청을 하려하는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왔다.

다시 지연씨의 고단했던 삶을 이야기할까 한다.

지연씨의 꿈

가난한 집안의 착한 딸이었던 지연씨는 일찍이 다른 꿈을 꾸어보진 못했다.
조그만 동네의 또래 아이들 중 유일하게 대학진학의 꿈을 포기한 채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고등학교 시절 남들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인해 ‘삼성’을 택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인 삼성에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꿈에 부풀었다. 돈을 벌어 엄마도 호강시켜드리고 아빠도 호강시켜드리고 오빠도 대학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게 그녀의 꿈이었다. 애초 그녀의 이런 꿈에 그녀는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고3에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서 화학물질을 이용한 검사와 엑스선(방사선)기계를 이용한 검사업무를 담당했다. 
 
삼성에 근무하는 생산직 노동자들 모두가 그렇듯 그녀도 야간근무를 수반한 3교대 근무와 잦은 연장, 쉴 틈 없이 밀려드는 물량(생산량)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일을 하였다. 정밀성을 요하는 업무 특성상 아예 딴 생각이라고는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그녀는 바쁘고 급해 가끔 낡은 엑스레이 기계 (최신모델은 잠금장치가 있어서 달랐다고 하지만)가 켜져 있는 채로도 일을 하였고 12시간 맞교대 때는 30분의 짧은 식사시간에 녹초가 되었다.

그렇게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는 생활이 3년쯤 반복되고 있던 어느 날, 피곤함이 극도로 심해지고 어지럼증과 구토증상이 나고 하얀 방진복에 그만 하혈을 하는 등 몸에 이상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백혈병 판정을 받고 2년 반의 세월동안 혼자서 7차례의 항암치료를 견디어 냈지만 결국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몸은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마를 이기지 못하였다.

지연씨의 억울한 죽음은 또다른 피해제보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삼성은 고 박지연씨 죽음 이후로 일파만파 소문이 퍼지자 백혈병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면서 최근 반도체 공장 라인을 기자들을 불러 공개하는 쇼를 했다.

그러나 문제없음을 보도하는 방송보도를 보고 또다른 피해자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10번째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 고 박지연의 죽음......이 억장무너지는 슬픔... 이 어린 죽음들 앞에 삼성은 자꾸만 쇼를 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삼성이 진실을 파묻기에는 너무 피해자들이 많다.

또한 전 세계가 삼성의 직업병에 대한 태도를 주목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는 수십개국의 활동가들이 “삼성의 직업병 책임을 촉구하는 국제청원운동”이 시작되었다. 일본, 미국 등 외신 또한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죄자 이건희 총수가 복귀한 것에서 보았듯이 삼성의 추악하고 끈질긴 모습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잔인한 죽음의 행렬을 끝장내고, 피해자는 보상을 받고 작업환경은 예방을 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길 즉, 삼성 경영진이 바뀔 때까지 끈질긴 투쟁들이 필요할 때이다.

삼성불매부터 시작하고 반올림카페에 방문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반올림에서 드리는 실천 제안 몇가지

1. 5월 18일 고 박지연 49재 추모제에 참여해주세요
  (강남역 4번출구 삼성본관앞, 저녁6시)
2. 헌혈증, 투병중인 노동자 돕기 모금
3. 삼성의 직업병 책임촉구 국제청원운동에 동참하기
4.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책 읽기
4. 반올림 카페 가입하여 지지와 연대의 한마디

=> 실천방법의 소개는 반올림 카페 (http://cafe.daum.net/samsunglabor)에 있습니다.

(반올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