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안내 우편물, 누구한테 보내야 딱! 일까?

나은(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6.2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다들 두툼한 우편물을 받아 보셨을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낸 투표안내문과 선거홍보물이 잔뜩 담긴 봉투. 뽑는 것도 하도 다양했던 지라 대충 훑어보았는데도 시계를 보니 30분이 훌쩍 흘렀다. 그런데 민우회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봉투 안의 내용물보다 봉투 겉면에다 매서운 눈초리를 날렸으니 바로 민우회가 투표 안내문에 관해 선관위에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4대강 반대’나 ‘친환경 무상급식’ 얘기는 선거쟁점이므로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선거법 위반이다, 트위터나 블로그에 의견을 게시하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다 등 공정선거를 운운하지만 사실상 입막음을 하려는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던 선관위가 미웠지만 민우회는 표현을 살짝 순화하여 ‘제안서’를 보냈다. 바로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투표안내문이 담긴 우편물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다 쓰자는 것. 이걸 왜?

현행 법에 근거해 선거공보와 투표안내문 등이 담긴 우편물은 세대 별로 보내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우편물 수취인은 세대주로 정해 두었다. 단독 세대주야 상관 없겠지만 여러 명이 한 세대를 이루어 살고 있을 경우 세대주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의 이름으로 우편물이 나간다. 그런데 보통 세대주는 ‘아버지’ 혹은 ‘남편’인 남성들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세대주는 신고하기에 따라 바꿀 수 있지만, 호주제가 폐지된 지 5년이 되었어도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영향인지 주변의 이성 부부 가족에서 여성이 세대주인 경우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

여기에서 민우회의 차별 감수성에 발동이 걸렸다. 모두 다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데 누구 이름은 찍히고, 누구 이름은 안 찍히고, 이거, 차별 아니야? 물론 봉투를 열면 그 안에는 유권자 이름이 다 들어 있긴 하다. 하지만, 자기 이름으로 온 봉투가 아닌데 먼저 열기, 쉽지 않다. 분명 나에게도 온 우편물인데. 게다가 겉봉 뜯기 전엔 자기에게 선거권이 있는 지 알아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선거안내정보에서 소외될 가능성은 없는가? 민우회는 이 지점을 눈여겨봤다. 차별이 발생하는 요인을 줄여볼 순 없을까?

그러면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 그냥 한 명 한 명에게 다 보낸다? 그런데 그건 종이 낭비가 너무 심할 것 같고. 예산도 훨씬 많이 들 테고. 그래서 민우회가 생각해 낸 방법은 봉투 겉에 세대주 이름만 적지 말고, 세대의 유권자 이름을 다 쓰자는 것이었다. 이러면 세대주와 비세대주 간 차별이 발생할 여지도 없고, 자기에게 온 우편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을 예방해서 선거에 대한 관심도 살짝 더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5월 17일, 민우회는 중안선관위에 제안서를 넣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중앙선관위의 답변이 왔다.

“투표안내문을 세대주에게 발송하도록 규정한 것은 일반적으로 세대는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대주에게 투표안내문 등 선거정보를 보내더라도 세대주와 세대원들이 선거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현실을 고려한 것입니다..”, “귀 단체의 제안은 향후 제도 개선시 참고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편적인’이란 단어가 거슬린다. ‘뭐야, 혼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혈연)가족과 같이 살지 않는 경우도 굉장히 많지 않나?’, ‘가족들끼리 안 친하면 어쩌려고..’ 등의 투덜거림이 가능하다. 담당 공무원은 여러 모로 검토를 해 봤는데 좀 어렵다며 예의바르게 대해 주었지만 답변서를 받은 우리는 ‘(팔짱 끼고) 그럼 그렇지’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답변서를 받은 직후 우리는 회원의 문제제기를 받았다. 민우회가 선관위에 제안한 핵심 내용인 “봉투에 이름을 다 쓰자”는 내용은,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노출시킬 수 있으며 이것은 정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문제 아니냐는 것이었다. 등기나 택배와 달리 우편물은 보통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우편함에 꽂혀 있게 마련이고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남의 우편물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원룸 건물 같은 경우는 우편함이 없어서 그냥 계단참에 잔뜩 쌓여 있는 경우도 많다. 원하지도 않는데 자신의 세대 구성이 드러날 수도 있고,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공유될 수도 있다.

여성과 청년들에게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세대주 이름만 쓰는 것), 자원 낭비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모든 개인에게 보내지 않는 것). 여기에 개인정보를 불필요하게 과다 노출할 필요도 없고. 여러 모로 따져야 할 지점이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선관위의 답변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사후 대응방안에 대해 댓글로 다양한 의견을 구했다. 비록 많은 수의 댓글이 달린 것은 아니지만, 민우회 회원들은 세대주에게만 우편물을 보내는 것도 문제가 있고, 개인정보 과다 노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도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세대원 이름을 모두 쓰지 말고 봉투에 “이 우편물은 세대 내 투표권이 있는 모두를 위한 우편물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수정제안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것도 분명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고. 참 고민이 많다~

선거봉투에 대한 문제제기는 의외의 구석에서 다양한 문제제기가 가능함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였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란 선언처럼 작게 보이는 행동과 일상 속에 뜯어 보고 곱씹어 볼만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선거도 그렇다. 선거 봉투만이 문제랴. 하나하나 찾아 보면, 바꿔야 할 것들, 참 많을 것 같다. 아, 그럼 이 참에 선거 치러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 더 많이 얘기해 보면 어떨까? 모아 모아 선관위에 좀 더 크게 터뜨려 주게 말이다. 민우회, 한 끈기 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