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비혼 여성’ 작가의 죽음과 잃어버린 꿈에 대하여

● 박 건(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A 영화감독은 영화인들 대다수가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것의 한 원인이 영화계 인력의 공급과잉이라고 했다. 이른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는 자본주의 경제 원칙(신화라고 읽는다)을 금과옥조처럼 믿는다면 나올 법한 소리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개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영화계의 정점에 서 있다고 평가되는 사람이 비열한 영화생산 구조를 외면하고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 싶다.

B 소설가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곳에 진입장벽까지 낮으면 지원자는 끊임없이 몰려든다. 당분간은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처지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며 제자의 죽음에 대해 한마디 덧붙였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생계걱정 크지 않는 선배소설가로서,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할 소리는 아니지 싶다.

C 문학평론가는 “문학계에 여성작가가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생계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팔리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부모 또는 남편이 있기에”식의 발언 등에 대해 자신은 문학계의 불공정성에 대해 싸워온 사람이며, 생계형 여성작가를 옹호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민주노조운동을 지향한다고 해서 이들의 몰성적 행태가 용납되지 않듯이(다큐멘터리 밥, 꽃, 양에서 나타나듯이), 여성들의 삶에 대해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 않느냐는 식의 태도는 아니지 싶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를 그대로 인정하고 나서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말만 ‘현실주의’적인 사람들의 태도나 누군가의 몰성적 시각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논란의 출발이 되었던 트위터라는 매체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국 사회가 과연 우리들이 꿈꿀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회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 한다.

영화판이나 문학동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 필자는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일하는 공간이 어떠한 공간이든지 간에 그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꿈이 정말 왕대박이 나서 연봉 1-2억이 넘는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는 점이다. 요즘 좀 재미있다고 하는 MBC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모두가 억대 대박의 꿈을 꾸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잘 모르긴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나 음악 혹은 문학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예술관련 직종뿐 아니라 개인이 꿈꾸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치 일반 회사원들이 모두 억대 연봉을 꿈꾸지 않고 소박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진입장벽이 낮다 높다, 사람이 많다 적다는 식의 평가를 통해서 꿈꾸는 사람들을 되돌려 보내는 것이 우리의 이야기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그 속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해버리는 구조나, 낙후된 생산 시스템에 대해 침묵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도 일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지양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 사회는 당연히 경쟁이 치열하니깐 재능이 없는 것들은 일치감치 꿈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 것이며, 늦기 전에 충고해주는 것이 당연한 선배의 길이라는 식의 표현이다. 대체 재능은 뭐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재능은 과연 그 일을 하는데 유일무이한 판단기준이 되어도 좋단 말인가? 누구는 재능이 없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누구는 재능이 있어서 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간단 말인가? 청소노동자의 재능은 뭐고, 은행노동자의 재능은 또 뭐란 말인가? 당대에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고흐라는 사람은 진작 그림을 포기했어야 했다는 말인가?

누군가가 자신의 재능과 사회적 인정사이에 고통 받고 있을 때, ‘예술가의 꿈을 잃지 말고 스스로의 길에 매진한다면, 언제가 꿈은 이루어 진다.’ 하고 주위에서 이야기해준다면 좋은 격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 그 꿈을 같이 영글게 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또한 그 꿈은 정말 소박한 꿈이라는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개인에게만 맡기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적어도 우리가 믿는 사회가 누구나 어떤 차별도 없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고, 또한 이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노동만으로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이러한 많은 일들을 접하고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책 제목이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이었다는 점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면 얼마 전 있었던 홍대 용역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연봉 1억이 넘는 삶을 꿈꿨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스스로의 소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 정규직노동자들에 비해 차별받지 않는 ‘소박한 꿈’을 이루려고 투쟁했을 뿐이다. 영화판이든 노동판이든 그들이 꾸는 이러한 꿈은 소박할 뿐이다. 그리고 그 꿈은 정당한 꿈이다. 이 소박하고, 정당한 꿈마저 꾸지 못하게 하고, 꿈꾸는 자들을 거리로 내몰거나 이 세상으로부터 영구 추방하는 모든 행위나 시스템은 더 이상 우리가 믿고 따를 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제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