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명절과 춤추다

◈ 낭미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달력을 본다. 빨간 숫자가 나란히 줄지어 있는 명절이다. 덤덤하다. 회사에 가지 않으니 쉬지 않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 내내 있을 테니 쉬는 것도 아니다. 큰 기대가 없다. 사실은 하루 동안 어디 여행이라도 혼자 다녀오고 싶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쉴 겸 친정에 다녀오고 싶지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가족에서 하루쯤 벗어나 혼자가 되어보는 것이다. 닷새 휴일쯤 하루는 집 밖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휴일 첫날, 남편은 시댁에 먼저 갔다. 시댁에 아픈 어르신이 있어서 아이는 내일 오라고 한다. 이해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밀린 일이 있으니 아이를 보며 일하면 되겠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랑 함께 종이컵과 실로 전화를 만들고 자석과 실로 낚싯대를 만든다고 동동거린다. 작업할 것이 있는데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기가 어렵다. 옆집에서 아이와 동갑내기 친구가 와 서로 태극천자문 놀이를 하면서 온통 집을 휘젓는다. 밤이 되어 혼자가 되자 아이가 심심해한다. “엄마, 누가 왔으면 좋겠어.” 전화를 건다. 설 전날, 아이와 둘만 있는 집이 더 적적하다. 친척이든 친구든 누구라도 만났으면 좋겠다. 전화를 거니 다들 시댁이나 고향에서 전을 부치거나 가족을 만나고 있다. ‘정말 가족 없는 사람들은 소외감 느끼겠다, 유독 외롭구나.’ 이전에 만난 산재노동자 아저씨들이 명절이면 다같이 사무실에 모여 놀던 모습이 떠오른다. 프레스에 두 손을 잃었던 명환(가명) 아저씨는 고아였다. 그래서 언제나 회원끼리 다같이 밥을 먹고 같이 가족처럼 어울려 놀자 했다. 늘 사람을 그리워하던 명환 아저씨 마음이 어쩐지 이해된다.

휴일 둘째날, 시댁에 간다. 어머님이 빨리 오라 했는데 아이가 아침에 늦게 깨었다. 옷을 입혀 허둥지둥 나가려는데 아이가 아침밥은 먹고 가겠단다. ‘모르겠다, 이왕 늦은 거’ 하고 어제 끓인 떡국을 데워 먹였다. 어제 낮에 먹고 저녁에 먹고 아침에 먹고, 두 그릇씩 먹어도 떡국이 남았다. “절을 하는 날이라서 절날이야?” 아이는 설날을 절날로 알고 있다. 시댁이 경기도라 지하철을 타고 갔다. 다 고향에 가버렸는지 사람들이 없다. 남편은 어디까지 왔냐고 재촉하는 전화를 한다. 도착하니 점심 때다. 아픈 어르신 때문에 제사는 지내지 않았다. “아픈 사람 앞에 무릎 꿇는 거 아니다” 말씀에 아이는 세배도 하지 않고 세뱃돈만 받았다. “엄마, 우리 갈 때 할머니가 또 돈 주겠지? 그럼 나 돈 아주 많아진다!” 색동지갑을 꼭 쥐고 아이는 귓속말을 하며 방긋댄다. 나는 어머님이 미리 준비한 전이며 닭고기를 상에 차리고 먹고는 설거지를 한다. 밖에 나가 사먹을 줄 알았는데 집에서 차리셨다. 늦게 온 게 조금 미안해진다. “얘, 손 시렵다.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 끼고 설거지해.” 나는 어머님이 좋다. 하지만 남편과 시동생은 내내 텔레비전을 보고 나는 어머님과 같이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 내내 웃고 즐거워한다. 처음엔 아이들만 지켜보며 종일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낯설고 지겨웠다. 하지만 이런 것이 가족의 즐거움이다. “아이들 없으면 웃을 일도 없다.”고 지친 어머님이 말한 적이 있다. 이전에 어머님은 명절 때 창밖을 보고 “날씨 참 좋다, 이런 날 등산 하면 좋을 텐데, 아깝다.”고 한 적이 있다. 친구가 놀자고 전화왔을 때는 “언니, 우리 제사야. 그리고 애들이 집에 다 왔어.” 하고 소곤댄다. 나가서 놀고 싶은데 집에 붙들려 치다꺼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소녀처럼. 나는 그럴 때 ‘같이 놀자’고 꾀는 수화기 저편의 언니처럼 어머님의 친구가 되어 수다가 떨고 싶다. 하지만 아들을 사이에 끼고 만난 우리는 어디까지나 고부로서 대화를 하게 된다. 가끔 그것이 아쉽다. 식당일을 오래 한 어머님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걸 알고 “어머님, 노조는 어때요?” 물었다가 어머님이 눈치 보며 말을 아껴서 뜻밖이었던 적이 있다. 명절날, 가족한테 어울리는 대화는 뭘까? 어머니는 집회 갔던 얘기랑 노조 수련회에 다녀온 이야기를 시아버지 몰래 가만히 한 적이 있다. “비정규직이 정말 문제야, 지금 같으면 일해서 애들 학교도 못 보내지.” 아버님이 “박정희 대통령 같은 사람이 다시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하는 동안 어머님은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일어섰다. “친정 가야지.” 어머님이 마음써준다. 설거지하려 하니 얼른 장갑을 뺏으며 밀친다. “친정 가기 전엔 일손 안 잡혀, 얼른 가.” “예.” 대답한다. 슬슬 가볼까?

휴일 셋째날, 친정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일상에 지친 몸을 고향에 눕혀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꼭 오고 싶으면 와라, 하지만 내 몸도 안 좋고 하니 안 와도 되지 않겠니?” 앗, 엄마가 귀찮아한다. 감기에 걸렸다고 하시는데, 사위며 손주며 딸이며 와서 안방에서 입만 딱 벌리고 앉아 있을까봐 지레 겁내시는 것 같다. ‘딸도 이제 손이구나.’ 같이 집안일하는 주부 처지로서 이해가 될 법도 하련만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아버지가 수화기에 대고 말을 덧붙인다. “와서 같이 일하면 되잖냐? 와서 그래 하렴.” 어머니보다는 시원시원한 답이지만, 그렇다. 엄마가 설날 파업을 한다. “난 사실 부엌일이 싫었다”고 환갑이 다 되어 폭탄선언한 엄마. 가끔 설거지도 쌓이고 음식물 쓰레기가 썩어가는 걸 등지고 방에 앉아 친구들과 한두 시간씩 전화한다. 우리한테 못하는 말, 가족 속에서 삭이고 참았던 말을 폭포처럼 쏟아낸다. 그때 엄마는 활기차고 생생하다. 생판 다른 사람처럼. 나는 그때 엄마도 엄마 역할을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여느 엄마들처럼, 엄마 역할을 할 때는 잘해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조바심내지만 안 할 때는 자기 욕망에 충실하며 가족을 귀찮아한다. 이제 나이들고 말발이 세진 엄마는, 무임노동을 기대하며 우르르 달려드는 가족을 가뿐히 내칠 수 있다. 생각했다. 엄마들 멋지다고. 명절날 창밖을 보며 등산을 못 가서 아쉬워하던 우리 시어머니처럼, 쉬고 싶은 자기를 우선으로 치는 엄마 멋지다고. 그런데 어쩐지 서운하다. 옛날처럼 딸이라는 이유로 다 위해주지 않는 엄마가, 어디서든 만사 잊고 푹 쉴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게 섭섭하다.

대신 여동생이 내게 전화했다. 목소리가 다급하다. “언니, 날도 춥고 친정 가기도 힘드니 언니 집에 갈께!” “그래라.” 자매들끼리 모이는 것도 괜찮다. 집을 치우고 반찬은 뭐가 있나 뒤적거려본다. 냉장고가 비었다. 장이라도 봐야겠다. 여동생은 네 살 난 딸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지하철로 두 시간 걸려 왔다. 사흘 내내 시댁에서 전 부치고 손님 대접하고 시부모 비위 맞추고, 동생은 지칠 대로 지쳤다. “아들을 낳으라는 거야. 집안사람 다 모였는데 나보고 손주 보자 하네.” “아휴, 피곤했겠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명절치레에 지친 동생은 친정에 온 듯 자리보전하고 눕는다. 쉬고 싶을 게다. 나도 남의 집 가면 마냥 드러눕고만 싶으니. 만두를 찌고 과일을 내오고 장을 봐오고 닭튀김에 맥주 한잔한다. 만화책도 잔뜩 빌려왔다. 동생은 부스스 일어나 주섬주섬 설거지를 했다. “놔둬.”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집안일이 징글맞기는 나도 매한가지다. “우리가 같이 아이 키우면 좋을 텐데.” “같이 지내면 애도 번갈아 봐주고 번갈아 바깥나들이도 할 수 있고……” 동생은 밤에 그만 잠이 든 후 다음날 오후 네시까지 잤다. 나는 울고 보채는 아이 둘을 먹이고 놀아주고, 설거지하고 방 치우고, 자고 있는 동생을 이따금 흘끔댄다. 실은 오늘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가거나 모처럼 외식을 하고 시내를 걷고, 동생이 괜찮다면 청소노동자들 농성하는 데 지지방문을 가자고 할 참이었다. 글렀다. 동생은 몸살에 체기가 있다. 진이 빠진 동생은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하염없이 잘 뿐이다. 갈 때도 비실거리며 돌아간다.

휴가 나흘이 후딱 흘렀다. 마지막 날, ‘이 날은 아무도 손대지 마!’ 하는 심정이 되었다. 남편이 일할 게 있다며 도서관에 갔다. 다시 첫날처럼 옆집 아이가 와서 우리 집에서 떠들썩하게 논다. ‘시간이 간 거냐, 온 거냐?’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작업한다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명절 때 아이를 어린이집에 그냥 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 엄마도 쉬게’, 했다가 ‘그러면 보육교사가 못 쉬잖아’ 생각이 우왕좌왕한다. 아까운 해가 꼴딱꼴딱 넘어간다. 남편은 저녁에 와서 아이를 위해 닭찜을 한다. 아이가 좋다고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가물가물 잠에 빠져든다. 문득 생각났다. 내가 정말 이 연휴에 하고 싶었던 것. 서울을 떠나 농촌으로 가고 싶었다. 거기서 땅을 일구는 친구들을 보고 싶었다. 경선, 유선, 혜경…… 직장생활을 오래 같이하다 먼저 귀농한 친구들, 언제나 나를 서울쥐라고 놀리는 그 시골쥐 친구들 사는 것이 보고 싶었다. 가야지. 꼭 간다. 다음엔. 다같이 둥그런 상에 둘러앉아서 우리끼리 명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