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들을 뵙는 게 그리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지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방문객을 맞았지만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어 몸을 눕힐 공간만 전기장판으로 간신히 온기를 유지하는 그분들의 입장에서 찬바람은 황소바람이라 환기는 사치스러운 일일 게다. 그리고 춥다며 전기장판에서 우리를 앉게 하고 그 분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는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난 1월 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지역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실습을 하게 되었고 재가복지팀에 배치되어 저소득 독거노인들을 찾아뵙게(전문용어로 사례관리) 되었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는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거노인 가운데는 여성들이 많았다. 물론 나이에 비해 젊게, 경제적/신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활기차게 사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이듦, 가난과 질병, 외로움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70이고 80이라도 무릎과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약으로 통증을 참아가면서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종이상자며 폐지를 모아 팔아 한달에 10만원이라도 벌어야 밥을 먹을 수 있고 방값을 낼 수 있다. 몇 년째 소식도 없는 자식들이 있어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폐지라도 모아 팔지 않으면 당장 굶어죽을 판이다. 복지관, 교회나 성당, 이웃의 도움이 있어 그나마 버텨나갈 수 있었는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나눔의 손길도 줄어들고 있다. 어찌보면 이렇게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다행이다. 다리가 아파 집안에서는 기어다녀야 하고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워 밖으로 나가는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판정을 받아 요양사가 집으로 파견되는 경우 그럭저럭 생활유지가 가능하다. 수십년을 지하에서 살아 지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김할머니의 꿈은 살아생전에 이루어질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박할머니는 국거리라도 사려면 저 가파른 언덕 위를 오르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 그렇게 늙고 가난하고 병든 삶의 고단함은 계속되어 있었고 추운 날씨만큼 코끝은 싸했으나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 삶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자꾸 커져갔다.

  금융위기, 경제위기로 빈곤층이 급증하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3%에 머물면 최저생계비 미만인 절대 빈곤층이 총인구의 14.48%로 늘어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2007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총인구 대비 3.2%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편지를 보낸 ‘봉고차 모녀’와 통화하면서 지원을 약속했고 이후 그 모녀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며 고비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무수한 카메라 앞에서의 통화, 모 휴대폰 광고도 아닌데‘쇼’를 본 것 같다. 여기서 핵심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가족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봉고차 모녀’는 쓸모 없는 봉고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초수급 대상자가 안됐던 건데, 재산기준이라든가 부양의무자 등 수급자 대상 선정 기준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을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상황은 심각한데 정부의 복지정책은 그 절박감을 헤아리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단기적으로는 기초생활 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 증가하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적으로 삶의 존엄과 품위를 높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야 하고 해결방안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특히 나이듦, 가난, 질병, 외로움이 서로 얽히고설켜 삶의 질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고귀한 이야기가 되어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노년의 삶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나이들고 병들면 가족이라는 보호막이 있다는 신화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다. 2008년 현재 총가구수 중 1인가구는 20.1% 수준에 이미 이르렀고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다. 결혼을 했든 안했든, 자녀가 있든 없든 언젠가는 싱글이 될 가능성은 높고, 특히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긴 여성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가난하고 병들고 늙었어도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남발하지 않고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는 없을까? 나이 들어 혼자 산다는 사실이 결코 두렵지도, 불행하지도, 비참하지도 않도록 개인적인 준비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적인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복지뿐 아니라 경제, 주택, 가족, 노동, 지역, 심리 등 수많은 영역에 함께 모델을 만들고 확산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