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혁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21세기에 성역할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은 도태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읽었다.(블로거의 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 스쳐 읽어서 내용 모두가 생각나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앞으로 도래하리라고 회자되는 20/80 시대와 성역할 고정관념을 연결하여 분석한 내용이었다.

주요 요지는 사회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계층 구성상 중산층이 줄고 중하층이 늘어나게 되리라는 것. 따라서 가장의 실질소득이 한 가정을 꾸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과거처럼 집안의 경제문제를 책임진다는 이유만으로는 권위를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것. 이런 환경 속에서 성역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돌봄노동을 비롯해 일상 영역의 노동에 동참하지 않고 빈둥빈둥 지내려는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고 소위 집안일과 밖의 일(돈을 벌어온다는 의미에서의)을 다 잘하려는 사람이 각광받게 된다는 요지였다.

이런 추세는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70살 넘어 심지어 100살까지 살 가능성 하에서(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2006년 세계보건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평균 수명은 남 73세, 여 80세이다.) 인생의 2모작과 3모작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때야말로 과거 자신들에게 덧씌워졌던 역할 놀이에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은) 연연해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이제 제 2의 시기에는 더 이상 가사노동을 전담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거나 조건삼을 것 같다. 종래의 남편,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2번째, 3번째 결혼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 생길 것이기에 고령화 사회에는 결혼중개사업이 호황일 것이라는, 조금은 장난어린 예측을 본 적이 있다. 위의 예측대로라면 앞으로 새로운 역할모델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결혼중개시장(?)에서 각광받게 될 것이다.

성역할 고정관념은 사회 각 영역에서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돌봄노동 중심의 이 같은 변화가 성불평등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증거(?)가 될 수 있냐는 의문이 들을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잔재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성역할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해 여성운동이 얼마나 힘들게 노력해왔는가를 생각하면(대안 호칭을 제안했을 때 민우회 사이트에 폭주하던 그 비난의 글들을 생각해 보라), 미래사회의 각종 변화가 더 이상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허용치 않는다는 이 같은 진단은 반갑기만 하다. 그리고 이 같은 예측대로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만일 위의 예측대로 된다면 앞으로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골고루 발달한, 그래서 성역할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만이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평등 감수성을 키우는 일이야 말로 확실한 노후나 미래에 대한 대비일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성평등 교육을 광고하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만나게 될지.

“미래가 불안하십니까? 확실한 미래에의 투자. 민우회 성평등 교육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