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김인숙

   남편의 실수로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고 00엄마는 어느 숙박업소에 입주 가사도우미로 들어가게 되었다.  자신이 평생근로로 마련한 그녀의 집은 남편으로 인해 날라 갔고 늙어 쇠락해진 육체와 그리고 대학생 아들만 그녀 수중에 남았다.  어찌할까?  

     과거 그녀의 노동은 남의 아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전셋집이긴 했으나 공간이 있으니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다.  엄마의 직장생활로 낮이면  갈 곳이 불안한 영유아를 돌보는 일이었다.  매일 오고 가는 아이부터 , 주중엔 그녀와 살고 주말에만 집으로 가는 아이, 낮에만 짧게 오는 아이까지, 긴 세월에 걸쳐 이런 저런 아이들이 거쳐 갔고 그 아이들은 그녀를 엄마라 부르며 친엄마보다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이들과 그녀는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었고 행복했으며 그녀가 하는 일솜씨는 조직적이고 효율적이었으며 헌신적이었다. 이웃으로 만나, 내 아이도 짬짬이 돌봐줄 것을 부탁했었는데  친정엄마에게 부탁한 듯 마음이 안심되고 자유로웠다. 

  돌이켜보면 그녀의 일솜씨는 돌봄의 전문성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그녀에게 오는 아이들이 행복한 것을 우리는 왜 중요하게 여기고, 인정받아야 할 전문성으로 봐주지 못했을까?  집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자가 원래 하던 일이니까? 무신경하게 소액의 사례비를 주었던 것 같다. 나조차 직무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이 남성의 잣대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일은 아주 사적인 공간에서, 사적으로 맺어진 고용관계였으나 엄연한 노동이며 사회적 가치를 가졌으며 그녀는 여자들에겐 구원의 천사였다.  아마 직장생활로 아이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은 ‘천사’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그녀는 그 어떤 사회적 보상도 없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최소한의 사회보장도 없는 나락!  그녀에게 어떤 돌파구가 있을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에게 더 문제가 되는 점은 군대 갔던 아들이 돌아와 갈 곳이 고시촌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수입 전액은 아이 생활비와 미친(?) 학비로 들어가고 돈을 모을 수 없는 수입이니 언제 고시촌에서 나올 수 있을까? 청년인턴제도로, 비정규직으로만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그 아이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그래서 자기의 거처를 마련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엄마에게 안정된 노후를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엄마의 노력 덕택에 대학을 마칠 수 있으니 가난의 대물림에서 빠져나와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갈 수 있을까? 가난이 비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현재의 가난보다는 그 수렁을 빠져나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힘들고 그래서 그것이 대물림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 아이는 그 대물림의 악순환 고리로 들어가지 않을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대책 없는 염려만 끝이 없다.    

      요즘 여성일자리 만들기가 적극적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문제는 그 일자리의 대부분은 돌봄영역노동으로 저임금과 비정규 형태로 운영되면서 근로빈곤여성노동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열심히 하루하루를 일하는데도 가난한 근로빈곤층! 그들이 열악한 그 일을 선택하는 배경에 집안의 경제적 필요가 급박했을 것이 추측되는데, 그 노동으로 경제적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하지 않은가.  00엄마를 생각하며 그녀의 노동도 공식노동으로 만들어 사회보험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 일의 전문성이 인정되었다면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노동의 가치를 다시 만들고, 그래서 임금을 높이고  근로빈곤은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00엄마의 경우처럼 개인 간 고용관계로 지금의 제도로는 사회보험 혜택을 가질 수 없었음은 인정한다 해도, 지금  돌봄노동이 사회화되는 과정 중에 만들어지는 돌봄노동들의 노동조건이 OO엄마의 경우아 다르지 않다면 참 답답한 일 아닐까?

   벌써 1년 넘게 보지 못한 그녀!  한번 가보마 약속은 하고 가지 못함은 바쁜 일상에, 먼 거리도 한 몫 하지만 어쩜 그녀의 현실을 목격하기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  전화하고 안부 묻고 얼굴보고 밥 한끼  같이 먹고, 연수에게 용돈 조금 쥐어주는 일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머리에 쥐가 난다. 

  얼마 전 어느 토론회장에서 이대 조순경 선생님이 국가의 노동정책이나 사회정책만으로는 근로빈곤, 고용불안정은 해결되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공동체성을 회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시는 얘기를 들었다. 시장 밖의 논리로 운영되는 여성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여성은행을 만들고, 개별화되어 있는 노동자들과 관계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여성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지겨운 작업에, 변화는 크지 않고, 이제 학자들도 다른 접근을 시도하려는가 보다.  학자로서의 진지함이 가슴에 와 닿았고 새로운 해법이 발견되어지길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