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윤정숙(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얼마 전부터 일요일 오후 나홀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오분만 걸으면 산입니다. 작은 배낭에 책 한권과 생수 한 병. 바쁠 것 없이 천천히 산을 오르는 시간은 일주일 중 가장 조용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며칠 전 늦봄의 산, '연두와 초록' 사이의 나무와 숲 속을 맘껏 걸었습니다. 지난 주 보지 못했던 아카시아꽃과 봄비에 우쑥 자란 고사리도 만났고, 봉숭아꽃물이 든 손톱처럼 끝이 살짝 붉어진 단풍나무잎도 보았습니다. 1년은 사계절, 그러나 그 안에 365개의 매일 각기 다른 작고 예쁜, 수많은 계절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지나치며 살고 있는지, 매순간 만나는 사람들과 지금 하는 일에 얼마나 정성을 쏟으며 사는지 돌아봅니다. '고슴도치' 같은 세상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지금까지 넘어진 횟수보다 한 번만 더 일어나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경쟁과 속도의 거친 세상의 물살을 거슬러 '따뜻한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오체투지로 온몸을 엎드려 가장 낮은 자세로 길을 걸으며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빛을 던져주는"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삶과 관계의 법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적 생태계'를 만들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 또다른 삶의 가치와 법칙을 향한 상상력과 열정을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오랜 관성과 반복, 무력감의 삶의 트랙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과 시간 속으로 뛰어들어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도록 힘을 줍니다.                        

 삼십대 후반에 마이크소프트사 아시아 마켓팅 총책임자로 일하던 죤 우드. 그는 1999년 'Room to Read'라는 단체를 설립해 기업인에서 혁신적 자선가로 '삶의 대전환'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의 변화의 첫 발은 아이들 교육"이라는 신념으로 아시아 빈곤국 아이들 위한 일을 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그가 삶을 바꾸게 된 계기는 10년전 네팔로 떠난 휴가 여행이었습니다. "꿈도 꿔보지 않았던, 그러나 자신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게 한" 사건은 가난으로 책 한권 볼 수 없는 아이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기업가적 투자 정신과 경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거액모금을 하고 벤쳐적 자선활동을 벌이며, 몇년만에 수 천개의 도서관과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는 이제 대표적 사회적 기업가이자 혁신적 자선사업의 개척자의 롤 모델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그는 마이크로 소프트를 떠나 새로운 세상의 문을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공감'에는 7명의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공익변호사 구룹을 이끄는 그들은 '희망을 그리는 길'로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법인권의 경계'를 넓혀가며,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개인과 집단들이 인권과 시민적 주체가 되기를 소망하며 인권의 경계를 확장하며 또한 '인권'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일을 합니다. ‘인간’의 범주와 동심원을 넓히면서 ‘인권의 지도’를 바꾸기 위해 상상력과 열정을 아끼지 않습니다. '자유란 자신의 이유로 걸어가는 것'이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처럼 그들의 열정은 "같이 꿈꿀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낮게 더 낮게" "누구나 자유롭고 당당하게 사는 세상" "내일이 아름다운 것은 내일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희망 때문"이라는 소망에서 시작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선언과 주장을 통해 이뤄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변화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년은 사계절이라는 고정된 정의 안에 매일매일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작고 아름다운 사계절을 느끼는 감수성과 상상력일 것입니다. 이러한 상상력에 열정의 날개를 달고, 함께 꿈꾸는 사람들과 부지런히 만나고 이야기하며, 시도하지 않았던 크고 작은 실험과 모델을 만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