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칼럼> 행복은 성(性)적순 - 134개국 중 115위

박봉정숙(한국여성민우회)

한국의 성평등 수준이 세계최하위 수준이라는 기사가 났다.

세계경제포럼에서 2009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한국이 134개국 가운데 115위란다. 2006년 92위에서 서서히 떨어지다가 지난해에 드디어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앞선 순위의 나라들에 비해 정치적 권한 지수와 남성과의 경제적 활동기회의 차이, 현격한 임금차이 때문에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여성부에서 제출받은 조사결과도 같이 보면, 더 재밌다.

2006년 6.23%이던 여성고위공무원이 2008년 3.68%으로 2년새 반토막이 났다. 전체 고위공무원수는 2년새 500여명에서 800여명으로 300명정도가 늘었는데, 여성고위공무원은 31명에서 29명으로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란다.

이런 와중에 최근 군가산제 논란이 있었다.

여성과 장애인의 노동시장 진입을 차별하는 군가산제 도입을 정부가 먼저 하자고 사람들 들쑤시는 판이니 여성들에 대한 채용장벽이나 유리천정을 일정하게 완화해줄 채용목표제, 여성할당제는 택도 없어 보인다. 성차별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지 아냐고 말하면, 인터넷에선 “군대가라”는 동문서답이 나온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성차별이 지금 어디 있냐고, 여성들이 고시를 다 장악하지 않았냐고, 지금이 어떤 시대냐고, 성희롱 걸릴까 무서워 친근한 말 한마디 여자한테 못 건네는 그야말로 여자 상위시대 아니냐고, 성평등은 이제 피곤하다고 말이다.

이만하면 성평등한 사회 아니냐고 이렇게 투덜대다가, 조모모 성폭력 사건 때는 남자들이 더 광분한다. 저 놈 죽이라고. 그 놈 죽여도 다른 놈을 또 만들어내는 게 이 사회라는 걸, 그리고 당신도 그 놈의 범행에 공모해 왔다는 사실은 죽었다 깨나야 알려나.(술 때문에 성희롱했다는 최연희 의원 결국 재당선시켜주었고, 술 때문에 선수 성폭력 했다는 감독, 실력이 아깝다며 집행유예로 풀어주어도 이해해주던 게 우리 사회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너무 정확해서 잔인하다. 퍼뜩 정신이 든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식하고 심각한 남성중심사회인지. 성 격차 순위는 꼴찌인 115등, 성폭력 발생률로는 세계 차석인 2위이다.

문제는 이런 통계는 1년에 한번쯤 발표되며, 이 발표조차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 혼자 밥 많이 먹는 것보다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먹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이 쉬운 사실을 아는 - 신문만 관심 갖는다. 그리곤 다시 우리 사회는 명박이 모드. 혼자 자기 살 길 찾도록 모든 사람을 파편화시키는 모드로 돌아간다.

그렇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성평등 이라곤 입에도 담아본 경험이 없으신 것 같은 여성부장관이 임명되고, 인권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공부하겠다는 인권위원장이 취임하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자신의 정책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되, 그것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뱃심 있으신 분이 선발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나에게 더 절망스럽거나 안타까운 점은 이명박 정부의 상상력초월 인사결정이나 국민무시정치가 아니다. 권리가 강탈당하고, 존재의 존엄성은 무시당하며, 자유는 저당 잡힌 채로 오로지 돈을 향해 달려 나가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이다.

나아지는 삶이 경제적 부유함안에 있다는 환상(그 환상마저도 사실상 실현되지 않을 것임에도) 앞에선 어떤 가치도 대적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성격차지수 순위가 세계꼴찌여도 ‘성평등’ 은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라. 사람들에게 ‘성평등’이라는 지구적, 보편적 가치에 대해 어떻게 말 걸어야 할지 점점 난감해지는 상황. ‘성평등’해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방향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점점 용기 없어진다. 이렇게도 꾸며보고, 저렇게도 돌려봐서 이야기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함께 하던 사람들이 떠난다. 힘들단다. 피곤하단다. 나도 그렇다. 그러니 이해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한다. 탄압이 별거냐.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를 포기하게 하고 자신들이 구상하는 삶의 방식 안으로 그들의 편재되도록 몰아넣는 것. 그래서 꿈꾸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탄압의 효과 아니던가. 오래된 고문에 장사 없고,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지금 그 꼴이다.

나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긴 병에 효자 없지만 효녀는 있다는 생각으로, 정의는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의 프레임이 현실에도 작동될 것임을 믿으며, 그 꿈을 함께 할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리라는, 그리고 그 일이 내년 우리 일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