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20주년 멋지게 보내고 있는 것 맞지?

권미혁(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올 초 민우회는 많은 일을 접고 오로지 20주년에 매달리자고 결의했다.
10주년이니 20주년이니 하는 물리적 숫자에 얽매이는 그 자체가 도리어  비주체적인  것처럼 느껴져 반발하고 싶기도 하다. 허지만 환갑잔치같은 건 안한다고 장담하던 어른들도 막상 못하고 넘어가면 은근 섭섭해 하시는 걸 보면서 재미없는(?) 일상에 이런 매듭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무시하려 해도 형식이 갖는 힘은 분명히 있다!!!!

사실 20주년에 매진하자고는 했지만 과연  20주년답게 보낼 수 있을까 나는 내심 걱정했었다. 그런데 총회 이후 9개월이 지난 지금, 누가 묻는다면 나는 결단코 “우리 20주년 멋지게 보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도 모르는 새 민우회는 엄청난 20주년을 치루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민우회는 20주년 행사를 두개나 치렀다.
5월의 걷기대회와 9월의 회원행사가 그것이다. 9월 회원 행사엔 초창기 멤버들이 대거 참여해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다.
그리고 민우회는 회원들의 글을 모은 수필집을 발간했다. 한때 알라딘 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한 이 책은  그 예쁜 표지 때문에 세련된 노트로 오해받기도 한다는데 어쨌든 장안의 멋쟁이들이 과거 타임지 들고 다니던 것처럼 들고 다닌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가 있다.
전철에서 보기에 더 없이 좋다는 독자평도 아울러 전하는 바이다.

무엇보다 민우회는 20주년을 맞아 새 집을 계약했다. 녹색교통, 함께가는 시민행동, 환경정의와 같이 망원동에 집을 지어 들어간다. 이사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사가게 된 것을 반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기금을 내준 분들의 격려에 화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민우회 20주년을 맞아 정말 많은 분들이 사무실 이전 기금을 내주셨다.  일일이 여기서 이름을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분들의 소중한 성금을 헛되지 않게 만들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민우회 20주년사가 빨리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출판사 눈치 때문에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하며 모든 활동가들이 USA를 향해 기를 불어넣기 바란다.(무슨 뜻인지 알 사람을 알아들으시라).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 그동안 민우회를 거쳐간 정말 많은 회원들을 이참에  한명한명 찾아내고 기억하고 그들의 현재 삶을 같이 보듬을 수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그만 사랑방 모임도 더 할 걸 그랬나 보다. 회원의 밤을 하긴 했지만 당일 온 회원 말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회원들이 민우회엔 더.. 많기 때문이다. 87년 창립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땀과 웃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민우회가 이처럼 지속되었을까?

어쨌든 올 해 1만 8천 회원, 선배님들,  본부, 지부, 생협을 통틀어 애쓴 모든 활동가, 그리고 민우회를 따뜻이 격려한 여성운동가들에게 이 공을 돌리고 싶다.

그래 우리는 지금  20주년 멋지게 보내고 있는 것 맞는 것 같다.
어쩌면 맘속으로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민우회는 맘먹으면 꼭 해낸다고.. 그것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