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당신의 기사에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십니까?

강혜란(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10월 8일자 한겨레신문에 '권양숙씨가 뭡니까?'란 이색적인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다소 생뚱맞은 제목의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의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를 호명하는 방식에 대한 독자 항의에서 출발한다.

내용은 이렇다. 지난 주 고객센터를 통해 접수된 독자 의견 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권양숙씨의 호칭문제라고 한다. "'영부인'이 다소 권위적이라면 적어도 '여사'라는 호칭 정도는 사용해주어야 하지 않나?" "아무리 노무현 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다 해도 '권양숙씨'는 해도 너무 하다"는 내용이다.

지난 한 주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각 신문과 방송의 주요 관심사였던 만큼 다른 언론과 차별화되는 이러한 표현이 독자들에게 무척 도드라져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이러한 항의에 대해 기자가 적극적으로 답변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이러한 형식만큼이나 그 내용에 담긴 메시지가 새롭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사소해보이지만 중요한 많은 것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자 개인의 판단이 아닌 해당 신문의 교열 원칙이었다니 나의 무딘 감수성을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한겨레신문이 '영부인'도 '여사'도 아닌 '권양숙씨'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중 하나인 위계적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즉 모든 것을 서열화하고 그 서열에 따라 호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권위주의적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또 꼭 남편의 지위에 따라 여성에 대한 호칭을 구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여성을 남성과는 다르게 특정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여성의 지위를 남편의 지위에 따라 호명하는 것은 더욱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사실 언론이 대다수를 남성이라고 전제한 채 여성을 배타적으로 호명해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여성만 괄호를 만들어 '여'라고 기술하거나 '여성감독' '여교수' '여류명사' 등 여성만을 배타적으로 호명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세상의 중심이 남성임을 확인시키는 중요한 메시지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여교사'처럼 양적으로 증가하여 양성평등 교사채용제도의 필요성이 논란되는 상황에서조차 '남교사'라는 표현보다는 훨씬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바로 이 문제가 단순히 양적 측면을 반영한 것이 아닌 이데올로기적 요소라는 것을 감지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여성에게 배타적인 언론의 호칭사용은 여성의 결혼 여부에 따라 더욱 세분화 된다. '처' '아내' '부인' '여사' '사모님' '영부인' '미망인' '현모양처' '조강지처' '첩' '동거녀' '내연녀'에 이르기까지 상대 남성의 지위·생존여부·법적 근거 등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분화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에 대응하는 남성호칭어는 어떠한가? '남편' 그리고 최근에 생성된 '사부님' '동거남' '내연남' 정도가 고작이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의 산물이고 결과인 것이다.

언어는 그 사회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 언어의 의미를 찾아줌으로써 세상이 달라지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 이 시간 한겨레신문의 독자들은 이 칼럼에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며 토론을 벌이고 있다.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언론의 시도, 이러한 언론의 시도만으로도 변화에 대한 희망은 있다.  

* 이 칼럼은 언론비평전문지 "미디어오늘"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