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나야 한다

뽀로봉

가만 보면, 정상이 아니라고 간주되는 ‘다른 것’에는 이름이 붙는다.

‘동성애자’, ‘편부모’, ‘장애인’, ‘고아’, ‘미망인’, ‘여류’ ...

‘이성애자’, ‘양부모’, ‘비장애인’ 등의 용어는 사실 이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그룹화에 대항해 그 ‘정상’도 다양한 하나에 불과함을, 즉 상대화시키고자 만들어낸 단어들이다. 또한 ‘동성연애자’를 ‘동성애자’로, ‘편부모’를 ‘한부모’로, ‘장애자, 병*’을 ‘장애인’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도 끈질긴 인권운동의 덕분이고, 아직도 이 대안단어들조차 일반화되어 있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민우회에서 ‘미망인’, ‘여류’, ‘흑인’ 등 차별적 언어를 찾아내고 이에 대한 대안어를 고민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왜냐면 고민을 하다보니 어떤 사람들을 분류하고 분리하는 단어 자체가 사용되지 않는 편이 대안이지,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게 대안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미 집단화하여 분리하고 지칭하면서부터 차별은 시작되는 것 같다. 일명 ‘딱지’붙이기. 그런데 우리들이 하는 말을 꼼꼼히 살펴보면 의외로 집단화하여 구별하여 부르는 것이 많다.

내가 느닷없이 이 말을 꺼내는 것은 며칠 전의 일 때문이다.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마을버스를 탄다. 그 날도 마을버스를 타서 뒤쯤에 서 있었다.

내가 서있던 자리의 앞자리에 창가에는 여성이, 복도자리에는 남성이 앉아있었다. 앉아있던 이 여성이 정류장에 내리려고 일어서고자 몸을 들썩거리는데, 옆의 남성이 주머니에 왼손을 넣은 채로 엉거주춤 비키질 않는 것이다. 그렇게 두 번쯤을 반복했다. 결국 그 남성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몸을 완전히 틀어 비키자 그 여성은 내릴 수 있었다. 바로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 어느새 그 남성을 째려보고 있었다. 이런, 예의 없는 인간 같으니.. 얼릉 좀 비켜주지. 그걸 그리 밍기적 거리나? 왜 주머니에 손 꽂은 채 비협조적인 거야? 하여간 남자들은...(이런 이런 성차별적 생각이라니... 나도 내가 깜짝 놀랜다. ㅋㅋ)

그런데 그 순간. 그 남성이 빼낸 손을 위로 치켜 올리며 기지개를 편다. 아니, 이럴수가... 

이 남성의 손은 육손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조금 놀랐다. 그리고 사실은 쫌 신기했다.

그래서 보지 않는 척 하며 유심히 쳐다봤다(걱정하지 마라. 그 남성 뒤에 서있었기 때문에 나의 시선을 몰랐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나의 무심함을 걱정하는 야유가 들리는 듯 하다. 나도 안다니깐. 잘못했다니깐. 그런데, 뒤에 서있었기 때문에 그 남성이 눈치 채지도 못했을 것이야. 그리고 연신 기지개를 펴며 계속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있는 모양이 사실 별로 그닥 숨기는 거 같지도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 육손의 이야길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왜 그렇게 기억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난 육손이 손가락이 하나가 더 있어서 5개일 때 보다 더 많이 사용될 수 있는 그런 모양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본 육손은 그냥 단지 엄지 옆에 또 하나의 엄지처럼 달려있을 뿐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육손’이면 ‘오손’보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나의 그런 생각은 환상에 불과했고 혼자 소설을 썼구나 하는 그런 자괴감? 혹은 쑥스러움? 머 그런 느낌이 얼핏 들었다. 

부끄럽지만 또 고백하자면, 좀 낯설고 괴상했다.

모양이 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

흑. 그런 내가 충격이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계속 자신을 자책했다.

‘야, 손가락 다섯 개는 안 괴상하고, 여섯 개는 괴상하냐? 여섯 개인 사람에게는 다섯 개가 이상할거야. 왜 손가락이 꼭 다섯 개여야 하는데? 엉? 너 머야?’

나에게 스스로 쏟아지는 질책을 참으로 퍽이나 한참동안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잘난 척..--;)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안타까워졌다.

‘얼마나 나와 같은 시선에 그동안 상처받아 왔을까.

그래서 그렇게 손을 주머니에서 빼지 않았구나..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빼게 되고, 또 뺐는데 그 손에 당당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유난히 기지개를 여러 번, 오랫동안 한 건 아닐까. 자신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볼 테면 보라는...그렇게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인가, 당당할 것인가, 그냥 숨기고 시선에서 자유로울 것인가 사이에서 그 사람은 얼마나 갈등하고 해왔을까?‘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했더랬다.

‘왜 수술 받지 않았을까’.

그래놓고 다시 스스로 나에게 답변한다.

‘왜 수술 받아야 하지? 병도 아니고, 본인이 불편하지 않다면, 사실 사람들의 시선만 아니라면 수술 받아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데... 난 왜 수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힘들었을 거야. 고민됐을 거야. 수술할지 말지..’

잠깐의 ‘육손’과의 대면이 나에겐 의외로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역시 섞여 살아보는 게 장땡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나는 수많은 다른 것들과 일상에서 더 많이 대면하고 자연스럽게 만나야 할 거 같다.

오손은 없다. 그런데 ‘육손’은 있다.   

* 이 글은 회원자유게시판에서 칼럼으로 옮겨왔습니다. 퍼오는 과정에서 댓글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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