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회 조직문화 설문결과 이야기 (1)

                                                                                                   박봉(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

이 사회에서 나이 젊음이 권력이 되는 장(소)과 나이 듦이 권력이 되는 장(소)은 구별되어 있다.

그런데, 나이가 결국 들게 되어 그 나이듦의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는 때가 되면 ‘권력이 없어도 좋으니 젊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지만(요즘 나의 생각), 사실 젊다는 이유만으로 의견개진이 무시당하거나 의견의 무게가 떨어진다고 생각될 때는 ‘몇 살이냐’는 질문이 너무 싫고(꼭 이런 질문은 자기가 불리할 때 나오거나,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나이로 위계를 만들고 싶을 때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그저 빨리 나이만으로 말발이 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물론 나이 젊음이 권력이 될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이주의를 문제시하면서도 그 나이주의를 적절히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말은 같이 놓거나 높이자고 하면서, 책임이나 비용은 나이순이라던가)

그러나 나이 자체의 권위가 아니라 경륜과 연륜으로 묻어나오는 권위, 즉 나이가 진정한 나이 값을 할 수 있느냐는 자신에게 달려있을 뿐, 그냥 나이를 먹는다고 오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다.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
민우회에서 얼마 전 민우회의 조직문화를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평등한 소통, 위계와 권위가 수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문화, 평등과 자율 속에 책임과 주체성이 살아있는 수평적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외부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진행되고 있지만 마침표를 찍는 ‘완성’, ‘끝’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사회 안에서 그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고 늘 우리를 점검하고 성찰해 간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시각으로, 노동자의 시각으로, 소수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실현하는 것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길이고 존중하는 길임을, 우리의 삶으로부터 실천할 때만이 우리의 운동이 위선과 거짓이 되지 않음을 알기에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쫀다. 

설문조사는 지부의 상근활동가를 포함한 전체 민우회 상근활동가 교육때 이뤄졌고 3개 문항으로 구성되었다. 설문의 적합함, 통계의 정확성 등은 묻지 말길. 즐겁게 우리를 점검하자는 것이었지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설문에 참가한 상근자는 모두 58명이었다. 설문지는 교육 기획팀이 만들었다.

첫 번째 질문 - 민우회 문화에 대한 허심탄회! - 다음의 질문 중 민우회의 자랑스러운 문화 라 생각되는 것 5가지에 브이표 하시오.

 ① 자기가 사용한 컵은 자기가 꼭 씻고 간다.
 ② 각 자의 손님 접대는 각자! 대표라도 예외 없는 문화  
 ③ 같이 할 일에 솔선수범 한다.        
 ④ 나이, 결혼여부, 아이 여부를 질문하지 않는다.            
 ⑤ 나이, 출신지역, 학력 등이 관계와 업무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위계가 되지 않는다.     
 ⑥ 언제 어디서나 더치패이의 생활화 
 ⑦ 술은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⑧ 평등한 입사지원서를 사용한다.  
 ⑨ 별칭 사용의 문화 
 ⑩ 복장 및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⑪ 이성애자임을 전제로 연애관련 질문하지 않는다.
 ⑫ 힘쓰는 일에서 약한 척 하지 않는다. 천하장사 민우회!

<결과>

위에 보이는 것처럼 1등은 ‘나이, 출신지역, 학력 등이 관계와 업무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위계가 되지 않는다’, 2등은 ‘각 자의 손님 접대는 각자! 대표라도 예외 없는 문화’, 3등은 ‘같이 할 일에 솔선수범 한다’.
이걸 나름대로 근속년수와 직책별로 교차 분석해봤다(대표, 중견, 1년미만으로 범주나눔). 그랬더니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

대표들의 응답에서 1등은 ‘나이, 출신지역, 학력 등이 관계와 업무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위계가 되지 않는다’, 2등은  ‘복장 및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3등은 ‘같이 할 일에 솔선수범 한다’였다.
비슷한 듯하지만, 전체 순위에서 2등을 한 ‘각자 접대, 대표라도 예외 없는 문화’가 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 ‘대표라도 예외 없는 접대각자 문화’를 대표를 제외한 사람들은 참 훈늉하다 생각한 것에 비해 대표들에게는 덜 그러한 듯하다. 비록 순위안에 들지 못했지만 표가 전무한 건 아니다. 3표가 나왔으니 좋아라하는 대표도 없진 않다는 뜻.(대표는 다른 표본에 비해 숫자가 적음.지부포함 12표쯤?). 한편, 복장에 대한 태클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집단이니 이에 대한 편안한 조직문화는 그들에게 높은 점수를 딴 듯하다.

1년미만 활동가의 1등은 ‘평등입사지원서’다. 민우회 조직문화 중 가장 먼저 상징적으로 접하게 되는 문화이다. 아무래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민우회의 쓴 맛, 단맛을 다 경험하지 못한 탓인지 대답이 평등이력서에 몰렸다.
‘천하장사 민우회’가 2등이었는데, 대표들에게도 그럭저럭 많이 나온 답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견활동가 급에서는 거의 꼴찌에 가깝다.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분석이 안 된다. 대략 이런 게 아닐까? 중견활동가들이 주로 천하장사로 나서는 사람들이라 힘들어서 더 이상 자랑스럽다고 대답하기 싫고, 대표들은 뿌듯하게 바라보고 신입들은 놀랍게 바라보는 입장이라 선뜻 이 대답을 골랐는지...알 수 없다. 여튼 나도 안 골랐다.

중견활동가들의 1등은 3개가 공동 1등으로 ‘접대각자’, ‘나이, 출신지역, 학력이 업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솔선수범’이었고, 2등이 ‘별칭사용’이었다.
‘접대각자’나 ‘별칭사용’등 민우회 내 비권위주의적 문화를 상징하는 것들을 가장 핵심적으로 짚어낸 집단이다.

‘별칭사용’은 대표 응답결과에서 마지막등을 차지했다.
별칭 부르기를 저어하시는 분들이 가끔 계신다. (물론 대표 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화는 하지 말자.) 그 이유는 대체로 헷갈린다는 것이다. 이해하자.
별칭사용은 호칭의 차이가 권력관계의 차이로 가기 위한 것을 막기 위함이다.(예를 들면 이름을 부르면 나이에 따라 뒤에 언니나 선생님, 직함, 혹은 반말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어진 이름, 운명, 혈통주의에 대한 거부의 상징이랄까...하지만, 머 별칭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매번 이렇게 의미화하며 사용할 거라고 생각지는 말자....그냥 가볍게 살자. 그래 그냥 그게 좋아서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 의미만큼 진실하게 다가설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라서 일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이름을 만들어가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차원에서 별칭은 또 의미 있다. 이 편파적 설명.

별칭이 나온 김에 내 별칭에 대한 얘기 좀 하자면, 박봉이라는 별칭을 가진 나는 이름보다 별칭이 더 알려져 있다. 너무 이 직업(!)의 사정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더 그렇다는데, 원래는 부모성 함께쓰기로 출발했다가 요즘엔 ‘박봉정숙’이 ‘시아준수’처럼 4자이름쓰기트랜드로 인한 이름인 것으로 해석한다. 영어별칭은 low income으로 하라는 권유가..크크.

아윌비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