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하면 어떤가요?

● 카티아(민우회 회원)

   2살 된 고양이(이하 피노)를 모시고 사는 집사는 바쁘다. 사료랑 물 챙겨주기, 털 빗겨주기, 귀 청소, 이 닦아주기, 뛰어다니며 사냥하듯 놀아주기, 안아주기, 목욕시키기, 간식 만들어 주기, 밥 먹을 때 쓰다듬어 주기 등... 볼일만 보면 어서 치우라고 잔소리하는 피노 덕분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남편과 나는 피노 수발을 나눠서 하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한다. 나눌 때 기준은 각자가 좀 더 좋아하는 일, 좀 더 잘하는 일들로 나눈다. 함께 하는 일 중 하나는 동물병원에 가는 일이다. 피노 사상충 접종으로 한 달에 한번은 꼭 동물병원에 간다. 병원을 싫어하는 피노는 어김없이 하악질을 하며 사상충 접종을 마쳤다.

  “병원 올 때마다 어머님이 피노를 안고 오셔서 힘들어 보였는데 이건 편하실 거 같네요. 보통 무겁거나 고양이들은 아버님들이 안고 오시잖아요. 어머님이 들고 오실 때마다 늘 궁금했어요...“

새로 산 피노 이동장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 중 병원실장이 했던 말이다. 우리가 병원에 올 때마다 내가 가방을 들고 오는 게 눈에 띄었다고 한다. 나는 ‘무거운 걸 늘 어머님이 들고 오셔서요’ 라며 웃으며 마무리 짓는 실장의 말로 실장을 빤히 쳐다보게 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그럼 남편이 들면 무겁지 않은가?’

   주 4일 나는 계약직 아르바이트를 간다. 공공기관 DB작업을 하는 이곳은 대부분 여성이다. 필요한 물품이나 요구사항이 있을 때 우린 종종 곤란함 아니 불편함을 겪는다. 그 중 가장 큰 일(?)이 정수기 물을 교체하는 일이다. 한번은 빈 컵을 들고 자리에 돌아온 옆 자리 동료가 말한다. ‘물이 떨어졌는데 부탁할 만한 남자직원이 없어서 그냥 왔어요.’ 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어느 쪽 정수기냐고 물어보고 ‘내가 하고 올게요.’ 했더니

“물통은 남자가 들어야지. 하지마요. 남자들 두었다 뭐해요...”

그때 나도 충분히 들고 옮길 수 있는 일이기에 가서 물통을 바꿔놓고 왔다. 나는 사무실의 정수기 물이 떨어질 때마다 남자직원에게 가서 물통 좀 바꿔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싫고, 물통 바꾸는 일을 남자일이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도 싫다. 둘 다 힘쓰는(?) 일을 내가 하며 듣게 된 말들이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아니면 조금은 덜 불편하게 넘겼을 말들인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나도 모르게 ‘누가하면 어때서요?’, ‘남자 여자 나눌 필요 있나요?’, ‘왜 꼭 남자가 해야 되죠?’ 라고 되묻고 싶어지니 말이다.

   3월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받으며 접한 여성주의는 지금 내 일상에서 자기검열 및 타인검열(?) 하느라 분주하다. 혹시 내가 하는 말들 속에 지금 내 행동이 성차별적이지는 않은지, 권위적이지는 않은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어찌보면 타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말하고 싶기도 하다. 두 달간 진행된 성폭력전문상담교육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알듯 모를 듯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이 여성주의. 섹슈얼리티였다. 여태껏 살아오며 진심 깊이있게 접근했던 기억이 없다. 내 기억 속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두 사람을 나는 ‘유별나다.’ 라고 생각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둘을 바라본 내 시선이 부끄럽게 느껴지니 지금 나도 예전에 내가 본 페미니스트들처럼 조금은 유별난 사람이 된 걸까?

   여성주의를 배워가는 요즘 물음표가 많아졌다. 아직은 내 안에서 소화되고 녹아나진 않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으로부터 작은 충돌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때론 타인에게 많은 이해를 바랄 때도 있지만 나 역시 예전엔(+어떤 모습은 지금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걸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여성주의는 나의 행동양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급작스럽게가 아닌 천천히 진지하게 느끼며 배우며 여성주의를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