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동 신화 

이임혜경(오이)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난 학교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학교’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참으로 부족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매일 어디를 가야한다는 사실이 곤혹스러웠고 그냥 그렇게 해야 하니까 하는 정도랄까(참고로 난 유치원 안 나온 사람). 하루종일 함께 몰려다니고 놀고 떠들던 동네 친구들과 헤어져 잘 모르는 아이들을 만나고, 심지어 내 짝꿍은 나를 얼마나 때리며 괴롭혔는지 팔 부위에 멍이 들 지경이니 얼마나 학교 가기가 싫던지. 게다가 난 완전 낯 가리고 부끄럼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성격 때문에 쉬는 종이 울리면 집으로 와 버렸던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난 학교 시스템을 몰랐고 ‘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뭔가 음악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밖으로 막 쏟아져 나오길래 난 집으로 가는 것이라 ‘믿고’, 나 역시 가방을 챙겨 집으로 오곤 했다(이런 행동은 선생님의 제보로 곧 청산되었다). 그리곤 바로 현아 언니네 집으로 직행. 그렇다. 나의 이런 행동의 중심에는 현아 언니가 있었다.

00시 장군동 또랑 다리 건너 막다른 골목에는 10여채 정도의 집이 있었고 현아언니네도 그 중의 하나다. 집집마다 2명에서 4명 정도의 아이들, 우린 정말로 잘 뭉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산으로 또랑으로 바다로 시장으로 탐험과 놀이를 즐겼다. 항상 현아언니의 자가용이자 발인 세발자전거와 함께.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현아언니가 소아마비를 앓았고 그래서 걷지 못한다는 정도였다. 현아언니는 세 명의 남동생이 있었고 그 골목 아이들 중 꽤 나이가 많았지만 사실 다른 아이들과 난 그 당시 ‘언니’ 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언니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이여야 한다는 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느낌 같은 게 있었나보다.

하여간 현아언니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중학교에 입학을 할 때까지도...그러나 현아언니는 아주 반듯한 글씨체를 갖고 있었고 산수를 잘 했으며 많은 책들을 읽고 피아노도 배우기 시작했다. 집 밖을 나설 땐 항상 세발자전거의 뒷자리가 전용석이었고 동네 아이들 누구나가 스스럼없이 운전을 하였다. 언니가 뒷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자전거의 앞부분에 누군가 힘을 지탱해야 한다는 사실은 어리지만 누구나 알고 있었고, 자전거가 뒷바퀴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행동 자체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발자전거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못 가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학교는 함께 갈 수가 없었다. 하여간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초등학교 1학년의 난 재미없고 낯선 학교를 뒤로 하고 쉬는 종이 치면 집으로 날아와 현아언니와 놀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나는 이사를 갔고 가끔 놀러 가기는 했지만 점점 뜸해지다 소식이 끊어지는 과정을 밟았다. 

그러다 30여년이 흐른 어느 날, 건너 건너 사람의 인연으로 현아언니는 나의 오빠와 연락이 닿았고 나의 연락처와 근황을 알게 된 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현아언니는 여전한 목소리, 또렷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내가 한국여성민우회라는 곳에서 일을 한다 했더니 언니가 민우회를 안다고 한다. 신기한 일이다(라고 살짝 생각했다. 민우회라는 곳이 그렇게 널리널리 알려져 있는 단체는 아니잖아?). 그런데 금방 이유를 알게 됐다. 언니는 여성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인 것이다. 쿠궁~~!

언니와 난 그 다음 해 서울에서 열린 3.8 한국여성대회에서 30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세발자전거가 아닌 휠체어를 탄 언니의 모습은...상상한 그대로였다. 멋졌다. 피아노 선생님으로 지냈고,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놀러간 자리에서 꾐(?)에 빠져 단체 회원활동을 하게 됐고, 활동을 하다 보니 상근을 하게 됐고 어느 새 ‘장’이 된 현아 언니.

물론 장이 됐다는 것이 핵심은 아니고, 여성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언니가 난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눈부셔, 눈부셔. 활동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며 일상을 읊조리는 언니의 모습이 너무 뿌듯했다(내가 왜 뿌듯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생각할수록 그 자그만 도시, 조그만 골목에서 여성운동가가 2명(나 포함. ㅋ)이나 배출된 것이 멋졌다. 세상이 주목하는 성공이나 업적을 쌓은 것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일을 ‘장군동 신화’라 부르고 싶다. 이런 일이 그렇게 쉬운가. 시골 동네 친구를 30년 만에 세계여성의날 행사장에서 만나는 것이. 

근데 난 왜 이걸 민우칼럼에 쓰게 됐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뭘까?

글쎄. 그냥 자랑질 또는 아이가 학교에 안 가도 너무 걱정 말라는 메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