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말고 무지개를 좀 넘었으면

폴(한국여성민우회 반차별회원팀 활동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앞에 가보면 1인 시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최근에도 큰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분이 있다. 가만, 피켓의 내용을 자세히 보니 뭔가 황당하다.  

군대 내 동성애 허용되면 내 아들 군대 안 보낸다.
군대 내 동성애 퍼지면 대한민국 군대 무너진다.
군대에 동성애 허용 국가인권위원회 해체하라.

피켓의 주요 키워드는 ‘군대’와 ‘동성애’다. 군대를 둘러싼 갖가지의 문제(모병제, 군가산점제 등)는 일단 차치하고 생각해본다. 한국은 장애가 있거나 건강이 나쁘거나 그 외에 몇 가지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성’들은 병역의 의무를 진다. 특별한 경우에 성정체성은 들어가지 않는다. 동성애자라고해도 제외되지 않는 것. 어느 조직보다 계급에 따른 상하구조가 확실하고 개인보다 전체를 강압적으로 중시하는 ‘남성중심’의 군대에서 커밍아웃은 그야말로 엄청난 투쟁을 감수하게 되는 일이다. 대부분의 남성 동성애자는 조용히(혹은 숨기고) 복무하고 만다. 왜냐하면 군대에서는 모두 ‘이성애자 남성’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피켓에서는 아들을 군대 보내지 않겠단다. ‘군대 내 동성애가 허용되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군대에서 동성애가 허용되는 걸까?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군형법 92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진행 중이다. 이 조항을 보니 군대는 추행을 포함하여 계간(남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표현)까지 처벌하고 있다. 문제는 합의 하의 관계까지도 처벌하는 것. 이유야 군대 기강 때문이라는데 개인의 자유침해 등의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하니 헌재에서도 심판 중이겠고. 강제가 아닌 합의에 의한 것까지도 처벌을 한다니 아무리 군형법이라고 해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법이다. 군형법 92조는 군대 내 호모포비아를 여실히 드러내어주는 조항이다. 아무튼 이 같은 현실을 보면 군대는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법이 개정되면 군대는 동성애를 허용하는 게 아니라 합의에 의한 관계를 처벌하지 않게 되는 것. 허용과 불허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차별과 인권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에 인권위 또한 군형법 92조가 위헌 소지를 가진다고 판단했더니 ‘어머니’들이 몰려왔다. 인권위로 난입하여 인권위 11층을 점거했단다. ‘참교육어머니전국 모임’과 ‘바른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의 이름을 가진 ‘어머니’들은 왜 인권위 점거까지 하게 된 걸까. 이들이 걱정하는 건 무엇일까? 아들이 정말 동성애자가 될까봐? 군대에 정말 동성애가 퍼지기는 하나? 다른 피켓을 보니 궁금증이 좀 풀린다.  

게이된 우리 아들, 파괴된 우리 가정, 부모 눈엔 피눈물, 법무부는 책임지라.
날 때부터 게이라니 동성애는 전염된다.

아들이 게이면 가정이 파괴되나? 동성애는 전염되는 건가? 진실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게 아닐까. 머릿속에서 의문점들만 계속 떠오른다. 동성애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부풀려지는 상황. 이는 호모포비아의 집단적 현상이다.  

이 현상은 단순한 무지를 넘어 터지기 1초 전 폭탄 장치 같은 분노가 보인다. 무엇보다 이 ‘어머니’들의 집단적 결속이 걱정된다. 그저 지각없는 이들의 어이없는 분노라고 치부해버릴 일이 아닌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이쯤 되면 ‘모르니까 그렇겠지, 진실을 알려주자’는 운동방식은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생각의 틀이 아예 다르니, 아니 정반대이니 어디 통할 길을 찾을 수나 있겠는가.

인권위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분에게 말을 걸어봤다. 왜 이런 1인 시위를 하느냐고. 군대에 동성애가 어떻게 퍼지겠냐고. 그 분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동성애가 합법이라고 생각하세요?” 순간 나는 말을 잃게 되었다.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가 합법인가 불법인가로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그렇다면 이성애는 합법인가. 아니다. 이성애가 합법인 게 아니라 법 자체가 이성애중심적인 문제일 뿐. 사람 자체가 불법일 수는 없다. 사람의 어떤 행동, 공공이 정한 약속을 어길 때 그것이 불법이고 그에 기반 한 처벌을 받는 것이지 않는가. 그런데 차별을 시정하고 인권을 보장하려는 그 길 가운데 가로막고 있는 ‘어머니’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만의 호모포비아 잣대로 동성애자를 합법과 불법 사이에 두고 점점 사회 밖으로 내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