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의’에 목마르다.

● 벤자민(권미혁, 민우회 상임대표)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인문학’이 유행이 다. 민우회도 작년 시류에 편승하여(?)인문학 강의를 했었고 반응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효율과 숫자로만 성과가 계산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주어진 일만 해야 하는 답답함을 ‘고전(인문학)’을 통해 풀어보려는 욕구가 인문학에 대한 열풍을 몰고 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왠지 막연한 것이었다. 요즘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장안의 지가(紙價)를 높이는 중이란다. 주제도 주제려니와 특히 ‘구체적’인 책제목에 끌려 꼼꼼히 책을 읽어 보았다.

솔직히 한 번의 통독으로 마이큰 샌델을 비평적으로 읽기란 어려웠다. 이 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마이클 샌델만큼이나 이름값을 올리고 있는 장정일의 인용대로, “개념훈련을 위한 골치 아픈 사례들이 이 책에는 병렬적으로 제시되며, 그래서 논리는 쉬우나 거기 나오는 사례들 때문에 혼돈에 빠지게” 되는 경험도 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있기는 한가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있지만)을 제대로 소개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 생각되어 여기에서는 그럼에도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내가 느꼈던 좋은 점을 말하고 싶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검색에 물어봐’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주변 어른(경험자이다 지식 전수자)이나 책(지식의 보고라고 알려져 있는)을 찾아 해결하던 것에 비해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네이버 지식검색에 물어보는 현실 말이다. (군대 안가는 방법을 지식검색에 물었던 MC 몽의 사례를 보라)

지식검색현상이 지식의 보편화, 저렴화를 가져온 것, 그래서 집단지성의 창출에 기여한 것을 장밋빛으로 본다면 이제 더 이상 스스로 지식을 쌓기 위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회색빛 씁쓸함일 것이다. 네이버 정보에 대한 여러 논란(부실한, 옳지 않은 정보, 저작권 문제 등)이 있지만 나는 맥락이 사장된 채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용도로 소위 고전이나 다른 사람의 저작물이 사용될 수 있음을 경험하였다.

한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저서가 한국 담론시장에서 호평 받았을 때 강준만은 후쿠야마의 저서는 결국 미국 패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맥락에서 쓰여진 것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세계적 석학으로 길러지고 있음을 밝혔다. 한마디로 책 자체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저자와 저서를 둘러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콘텐츠 일부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미덕은 정의라는 키워드를 둘러싸고 벤담, 칸트, 롤스 등 각각의 사상가(혹은 사조)가 어떤 태도로 자신의 논리를 발전시켜 왔는지, 그리고 그렇게 발전시킨 논리는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될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인문학 열풍만큼이나 지식세계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러나 근세 서양을 이끌어온 이 복잡다기한 사상을 이해하는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 18세기 자유주의철학에 대한 관심만으로 (자유주의에 대한 총체적 인식 기반 없이) <공리주의 윤리문화 연구*>를 읽으며 미로 같은 당혹감과 철학적 빈곤을 느꼈었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는 내게 다시 한 번 공리주의 윤리문화 연구에 도전할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자유, 평등, 개인주의, 법의 지배 등의 키워드도 보다 집중적으로 성찰된다면 좀 더 수월하게 그리고 맥락을 통해 오해하지 않고 이들 개념(사상)과 접할 수 있을 것 같으며 마인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 역시 읽어보려는 이유이다.

인문학은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되었다는데 후마니타스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간다움을 위해 이 사회에서 천착해야 할 가치가 한두 가지가 아닐 터인데 특히 ‘정의’에 방점이 찍히는 것을 보면 지금 한국에서 ‘정의’가 화석화 되어 버린 것이 확실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작 2010년 한 해 동안 한국인들이 정의라는 기표에 목매달고 또 목말랐다는 사실, 그것이 올해 최대의 국내 뉴스”라는 장정일의 언급에 백번 동의하는 바이다. 연말에 한번쯤은 일독을 권한다.

각주

*<공리주의 윤리문화 연구> 부제는 ‘벤담과 밀의 입장 차이를 중심으로’ 이다, 허남결 저, 화남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