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혹은 독거노인에 대한 단상

-수풀(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별 볼 일 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덜컹덜컹

먼지의 집으로 들어가 안 나오는

바람이 있다

혼자 사는, 쓸쓸한 먼지의 집. 창문 안에

노을이, 붉은 燈을 켜놓았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 이윤학, 먼지의 집 中

추석연휴의 왁자지껄한 들뜸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얼마 전, 갑작스런 지인의 부음을 접했다. 그이는 내가 일하고 있는 복지관에서 2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무척이나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 날 저녁에는 하던 일을 조금 일찍 접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 그이의 빈소를 방문했다. 마침 빈소를 방문했을 때가 염을 하던 중이어서 빈소는 많은 조문객들의 통곡소리로 가득했다. 허공만 바라보는 부모님과 상주 완장을 차고 달군 쇳덩이처럼 붉게 상기된 그이의 오빠. 그 분들을 뒤로 한 채 빈소를 나오는 일행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울적한 심사를 애써 달래기 위해 일행은 돌아오는 차안에서 장례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왜 꼭 상주는 남자가 해야 하냐는 등 결혼문화에 비해 더디게 양성 평등화되는 장례문화에 대해 서로 조심스레 안타까움을 나누다가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복지관에서 뵙게 되는 독거노인 분들의 장례에 대한 얘기를 주로 나누게 되었다.

배우자는 물론 친지, 자녀까지 사별 혹은 생이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는 독거노인 분들의 가장 큰 걱정은 혼자 맞게 될 쓸쓸한 장례라고 한다. 비록 연고가 없는 독거노인 분들의 장례를 주민센터(구. 동사무소) 직원들이 치러주기는 하나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빈소, 그 고독이 두려우신 게다. 얼마 전 방문했던 지인의 장례식과는 사뭇 상반되는 쓸쓸한 장례식이다. 생전의 고독보다 사후의 고독을 더욱 걱정하신다는 얘기는 반대로 그만큼 지금 그 분들의 고독이 깊고 지독하다는 얘기리라. 언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될지 아무도 모르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는다. 매일 폐지를 수거하러 다니던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안보이면 “아, 그 할머니 돌아가셨나보다.”하고 여기고 마는 것이 독거노인 분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이다.

젊었을 때 죽음을 대비하자느니 하는 보험회사 외판원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만연한 고독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버리고 신경 쓰려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미 현실 가정에서는 보수적 가족체제가 해체되고 있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통념 속에만 잔존하는 혈연중심적인 가족주의를 방패삼아 “그건 당신 가족이 책임질 일”로 그 분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아니 외면의 수준을 넘어 때때로는 독거노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까지도 읽힌다. 반지하의 불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은 이미 많은 매체에서 사회의 잉여자로서 타자화되어 공포의 대상으로 재현되기까지 했다.

가족주의와 혈연중심주의를 넘어 타자화되지 않는 새로운 지역공동체 문화를 일궈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독거노인 본인들의 역량강화 혹은 세력화가 우선이겠지만 사실 그것조차 쉽지 않다. 다른 타자들이 주체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이미 그 분들은 절망과 비주체적 삶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듦”의 특성상 정신적/육체적 무력감이 하루가 다르게 깊어져가는 그 분들을 어떻게 당신들 삶의 주체로 바로 서도록 도울 것인가는 실천현장에서 수없이 한계에 부딪히고 깨지는 화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그 날 빈소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처럼, 이렇게 민우회에 글을 올려 함께 나누는 것처럼 내게는 나의 고민을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그 하나하나의 소통들이 작은 조약돌처럼 쌓여 결국엔 희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지난한 소통의 과정들이 바로 실천적 지식으로서의 여성주의가 아닐까 싶다.

* 수풀 l 시민의 힘을 이끌어내는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신입회원, 수풀입니다. 민우회를 소개시켜 준 제 친구 꼬깜에게 너무 고맙네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