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의식회복으로 떠들이 생활을 면한다.

    김인숙(한국여성민우회 대표)

  나의 친정마을은 지금은 도시개발로 말끔히 사라졌지만, 산과 들과 시골의 느긋한 정취가 있고 이웃과의 친밀한  관계가 살아있는 농촌풍경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이 피곤할 때면 그 마을을 생각하며 위안과 안정을 얻는다.  

  결혼과 함께 새로운 거처로 옮기면서 여기저기 서울을 떠돌게 되었다.  결혼 20년에 10번 정도 이사경험이라면 힘겨운 한숨이 나오나 한국 40,50대 주부들의 평균 이사건수려나?  어느 순간 ‘나는 떠돌고 있고 떠돌이의식까지 가지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이 더러워지면 대청소를 하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이사를 가고 싶어진다.  새 건축물이 신축되려하니 조망권을 지키려는 노력보다 이사를 가고 싶어진다. 이래도 저래도 이사 가고 싶어진다. 동네의 싫은 모습들은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대상이다.  어디론가 방향 없이 떠돌고 있는 뿌리 잃은 식물, 빨리 뿌리 내릴 곳을 찾지 못하면 말라버릴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 나는 쓸쓸했다. 

  이후 집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는데, 한국 신혼부부들이 바라 듯 나도 예외 없이 집마련의 희망을 가졌었겠지만 떠돌이 느낌이 들면서 부터는 아주 간절하게 집이 필요해졌다고 할까?  하지만 어렵게 집을 가지게 된 이후도 이런 떠돌이 기분은 가시지를 않는다.  이상하다.

  평동사무실로 올라가는 골목에 푸른 색 플라스틱 화분들 몇 개가 정겹게 놓여있다.  그 속에 정성스레 심어진 둥굴레, 파, 풋고추 등이 심어져 있고 그것이 커나가는 모습을 출근길에 즐기게 된다.  삭막한 시멘트바닥에서 비록 플라스틱 화분에라도 채소를 심고 뿌리를 내리고 싶어하는 도시인의 안간힘을 보게 된다. 화분 속 식물이 왕성하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 주인의 정성과 사랑이 극진한가보다. ‘아! 저 화분을 가꾸는 분도 나와 같은 뿌리없는  기분인가보다’, ‘그래서 저 화분으로 이 삭막한 도시에 뿌리를 내리거 싶은가보다’라고  묻지도 않고 나와 동일시한다.  나는 이도시에서 어떻게 자리잡기, 뿌리내리기를 해야할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국적으로 여러 훌륭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보았던 생각이 난다. 마을의 담을 허물고 마당을 동네사람과 공유하는 마을, 아파트 지하를 마을도서관으로 꾸미는 동네며, 어린이놀이터를 동네 아이들이 공동으로 장식하는 마을이며 재미나는 이런 사례들을 회원들과 보던 생각이 안다. 모두 주민들이 직접 안을 내고 알뜰살뜰 동네를 주민들 손으로 변화시켜나가는 모습들이다. 작년엔 시민활동가대회를 통해 주민들의 손으로 만든 마을도서관 사례도 보게 되었다. 

  도서관건축을 위해 아이와 아빠들이 모금에 나서고 동네 가게들은 이익의 일부를 내어놓고 , 노인은 자신의 연금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 만들어진 도서관!  ‘벽돌한장 기금’이지만 몇만채에 해당하는 애정이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떠돌이 느낌을 , 떠돌이 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을 언제라도 떠나갈 수 있는 잠시의 거주지라 여겼다면 그것이 가능했을까?  내 동네이고 내가 내 후손까지 이어 살 곳이고 내가 만들 곳이란 생각에서 움직이며 애정을 쌓아올렸으니 가능한 움직임들이 아닐까?  도시에서라도 뿌리내리기가 가능한 방법이 바로 이것 아닐까?      

  정주의식을 가진 동네의 경우 동네의 변화가 훨씬 활기차다는 글을 보았다.  한때는 광산개발로 사람들이 북적이던 곳이 폐광이 되고, 돈을 목적으로 와 있던 사람들이 떠나게 되었단다. 남은 사람들이 떠날 것을 포기하고 안착하려는 노력 중에 생긴 정주의식이 그 지역을 살맛나게 개선해 가더라는 논문을 보았다.  나도 정주민이 되는 노력을 해야하는가보다. 내 주소지가 있는 이곳이 바로 나의 제2의 고향이고 안착할 곳이란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의 주민등록이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일까를 따져보아야 하는 것이리라. 

 골목은 노는 아이들에게 안전할까? 장애인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은 잘 만들어져 있을까? 우리가 뽑은 구의원은 역할을 잘하고 있을까? 골목 안쪽 집집에 가정폭력 성폭력은 없을까? 등 관심을 가져보아야 하는 것이리라.  혹시 옆집이 실업으로  쌀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애정과 염려를 보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결심한다.  나는 이곳에 사는 동안
 첫째는 어디론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란 나그네 의식을 버린다.
 둘째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평생얼굴을 보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셋째 이곳은 나의 관심으로 변화될 것이란 주인의식을 가진다.
 넷째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열심히 인사부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