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강 생각

                                                                          먼지(생태지평연구소)

 출근 길. 비가 많이 온다. 해마다 찾아오는 장맛비. 불어 난 한강물에 잠수교가 잠기고 청계천도 넘쳐 출입이 통제됐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도로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이 아스팔트에 맞아 튀는 것을 본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비가 아스팔트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아스팔트가 비를 쳐내는 것 같다. 내쳐진 빗물이 하수구 쪽으로 몰려간다.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너 곧 사무실에 도착. 가방을 내려놓고 사무실 뒷마당으로 나가본다. 초록색 잎사귀들이, 풀죽은 나리꽃들이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다. 마당에 깔린 자갈이 중간 중간 파헤쳐져 있다. 그 사이로 배수구가 보인다. 자갈 아래가 콘크리트 바닥이라 빗물을 빼기 위한 배수구는 필수다.

38억년 전의 비는 달랐을 것이다. 그때, 지구는 지옥처럼 뜨거웠다고 한다. 끝없는 화산폭발과 용암의 분출. 용암과 함께 나온 수증기가 지구 최초의 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비로 최초의 바다가, 그 최초의 바다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끝없이 쏟아지던 38억 년 전의 비. 그때 비는 아스팔트에 거부당하지도, 배수구로 고이지도 않고, 그저 온 땅을 적셨을 것이다. 

물과 땅이 자연스럽게 만나면 그곳은 습지가 된다. 바닷가에는 갯벌이 있고 자연하천에는 천변저류지가 있다. 천변저류지는 갈수기에 수위가 낮아지면 땅으로 드러나 식물이 자라고, 삵, 자라,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이 사는 집이 되지만 비가 쏟아져 강이 범람하면 물에 잠긴다. 이 때 물에 잠긴 습지가 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여서 범람의 규모가 줄어든다. 또 물살이 쓸고 간 저류지는 죽은 동식물의 몸이 섞인 양분 많은 땅이다. 다시 그곳에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찾아온다. 38억년 전 그랬던 것처럼, 홍수졌던 자리에서 뭔가가 시작된다. 잠수교가 잠기고 청계천이 넘치면 재해지만, 천번저류지의 범람은 담담한 자연의 시간이다.

4대강 사업은 천변저류지를 공원화하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천변저류지에 체육관, 유원지, 생태공원 등 무엇이라도 건설하겠다며 시끌벅적하다. 공사가 진행되는 부동산과 건설 경기도 부흥하고 몇 년짜리 비정규직이지만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기대효과를 한마디로 ‘생태하천 복원을 통한 녹색성장, 4대강 살리기’라고 부르고 있다. 모델은 한강공원이다. 물론 한강공원은 좋다. 잔디밭과 자전거 도로가 좋고 무엇보다 목적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강이 있어 좋다. 하지만 그곳은 공원, 즉 인간을 위한 유원지일 뿐, 서로 다른 종이 공존하는 자연은 아니다. 자연습지에는 인간 아닌 것들이 인간이 가꾸지 않은 덕분에 풍성하게 살아있다. 한강에도 접경지역인 하구 쪽에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사업이 침투하지 못한 자연습지가 남아있다. 고양시 일산서구의 장항습지에는 울창한 버드나무 군락, 버드나무와 공생하는 말똥게들과 연한 풀잎과 수영을 좋아하는 고라니가 살고 있다.

천변저류지 공원화는, 비유하자면 장항습지의 버드나무를 베고, 말똥게와 고라니를 쫓아내고 사람들이 다니기 편하게 잔디를 깔고, 홍수기에도 인간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강변에는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공원을 만드는 일이다. 인간 주변에 다른 종이라고는 애완용, 관상용, 식용 동식물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니, 별로 유별날 것 없는 일일까?.

천변저류지에서 다른 종을 몰아내고 굳이 공원을 만들어서 인간의 놀이터로 삼아야겠다면, 천변저류지가 담당하고 있던 홍수조절 기능을 대체할 대책은 있는 것일까? 4대강 사업 중 가장 큰 부분이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한 보를 건설하는 것이다. 보는 쉽게 말해 강 속에 만드는 댐이다. 수문이 달린 보로 강을 막아서 갈수기에는 수문을 닫고, 홍수기에는 수문을 열어 강의 수위를 늘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만든다. 공사가 잘되면 ‘연중 강수량 중 대부분이 여름철에 집중되는 땅’이라는 한계를 멋지게 극복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천변저류지가 사라지고 콘크리트 제방으로 강이 직선화되면, 곡류로 흐르는 자연하천보다 유속이 빨라진다. 집중호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강은 순식간에 불어난다. 그러면 전국 각지의 댐과 보 관리소에서 불어나는 강수량을 예측, 수문을 착착 열어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 4대강 사업이 지향하는 물 관리 방법이다. 이 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참고할 역사는 있다. 한국은 70년대 후반, 중동경기가 침체되면서 중동의 건설장비를 국내로 유입, 대규모 국토확장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 시흥과 화성사이를 방조제로 막아 시화호가 만들어졌다. 방조제로 막힌 바닷물을 민물로 바꿔 농업용수로 사용하겠다는 것이 당시 계획이었다. 2008년의 관변과학이 4대보와 댐으로 수량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발표한 것처럼, 1986년의 관변과학은 방조제로 막은 해수호의 담수화가 가능하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의 수질오염사태. 결국 2000년에 정부는 시화호 담수화 공식 포기 발표를 하고 현재 해수호로 생태복원 중이다. 물~론 방조제 건설하는 동안 건설경기는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