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걸 시대, 여자 아이에 대한 차별?

김진 (변호사, 법률사무소 이안)

지난 봄, 국회 웹 사이트에 생경한 연구 과제가 떴다.「여아에 대한 차별 및 폭력방지를 위한 입법과제 연구」. 호기심은 생기지만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 막막해서 섣불리 연구 신청을 하기는 어려웠다. 설왕설래 하다가 자연스레 그 입찰기일도 지났는데, 며칠 후 한 친구가 “그거 유찰되었나봐, 재공고 떴네”라며 연락을 해온다. 연구기관에 있는 분 말씀도 “하려다가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안했다”는 거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쑥 신청서를 넣었고, 금방 연락이 왔다.

“도대체 무엇”이냐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데만 꽤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올 초 UN 여성지위위원회(CSW)의 회의 주제가 그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작년에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작성해 놓은 보고서가 있어(아마 국회에서 이 과제를 잡은 것 그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듯 싶다) 첫 이정표로 삼을 수 있었다. 일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에 남아 있는 여아 살해․성기절단이나 지나친 조기 결혼 등을 문제 삼은 부분 정도는 건너뛰더라도,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문제점이나 대안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서 연구는 입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성감별과 여아 낙태, 가족법, 양성평등교육, 성폭력, 미성년 성매매로 관심을 좁혀 행해졌다.

이 자리에 연구 경과나 그 내용을 장황하게 읊으려는 것을 결코 아니다. 인상적인 것은 이 주제를 연구해 보겠다고 했을 때의 주위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그게 뭐냐 - 거나 그걸 어떻게 해 - 라는 게 대부분이다. 그 바닥에는 “여아에 대한 법․제도적 차별이 남아 있느냐”는 생각이 있었고, 폭력 문제야 여아든 남아든 둘 다 다 보호해야지 여아를 특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도 많았다. 출생성비도 높아 남자 아이에 비해 그 숫자도 작고, 남녀공학 학교에서 내신 성적 상위권은 대부분 여학생이라는데. 이른바 “알파 걸”의 시대라는데. 의대나 법대 등 인기학과 여학생 수도 많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무슨 말이냐는. 맞는 말이다. 정말 많이 나아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자 아이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말 없는가’ - 말할 자신이 없어졌다.

2005년을 기준으로 첫째 아이의 성비는 104.8인데 셋째 아이의 성비는 128.2에 이른다는 것(1994년만 해도 205.1에 달했다)은 성감별을 통한 여아 낙태가 여전히 많이 행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며, 진학률이나 학업포기율의 성차는 거의 차이가 없어졌지만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여학생은 74.9%가 상업계에, 남학생은 68.2%가 공업계에 속하며 대학에서도 공학계 여학생이 10%남짓(사범계는 61.2%가 여학생)이라는 수치에서는 교육에서의 성별격차 해소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폭력에 노출된 여아(유아․어린이․청소년)의 비율은 37.6%에 이르며, 아동에 대한 폭력 사건 10건 중 9건은 여아에 대한 것이고 많은 경우 ‘추행’이다. 성매매 제안을 받아 본 여학생의 비율은 21%가 넘는데, 학교부적응이나 가출 청소년만 조사하면 그 비율이 55.3%에 이른다. 이들이 집이나 학교를 나오게 된 이유 중 상당 부분이 (성) 폭력에서 비롯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아동에 대한 폭력이 얼마나 만연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는지 알 수 있다.

여자 아이는 차별과 폭력의 가해로부터 어른인 여성보다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생애주기 상 아동기에 받은 차별과 폭력의 피해는 평생을 가는 심각한 상처가 될 수밖에 없고, 이를 시정하지 못한 사회가 성인들의 사회에서 양성평등을 이룬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임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6개월 정도 고민하면서 구체적인 법․제도 개선안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과제로 다가왔던 것은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공유하고 드러내는 일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조사와 통계를 통해 그 실태를 명확히 하는 일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