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4년차에 접어들며

쑥부쟁이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육아에 뛰어든 지 만 3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들은 그럭저럭 잘 자라주고 있다. 문제는 지금도 방황(?)을 멈추지 않는 '나'에게 있는 듯하다.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이 질문을 수도 없이 하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답이 머릿속을 맴돈다. '아이의 미래는 엄마에게 달렸다', '아이의 문제행동은 거의 엄마 탓이다' 등 육아 책에서 접한 강렬한 메시지 때문일까? 빈 소리라도 자신감 있게 "넌 잘 하고 있어" 칭찬 한 마디 할 수가 없다.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큰 아이에게 짜증을 부리고 큰 소리도 좀 냈다. 순간순간 감정의 변화에 휘둘려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나를 보며 자책도 많이 했다. 그러다 문득 이게 육아 우울증인가 싶었다.
     육아 우울증의 경우 우선은 가까운 사람과 진지하게 상의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들 한다. 정답이긴 한데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항상 일이 많아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않는 남편에게 많은 걸 기대하면 오히려 화만 늘 뿐이다. 주변에 친척도 없으니 잠깐 아이를 맡기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란 불가능하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그래서 나는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 오전반에 맡겼다. 그나마 여유가 조금 생겼다. 그래도 온전히 깨어서 아이를 봐야 하는 건 여전하다. 가끔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들 비슷하구나 맞장구를 치면서 위안을 얻는데 육아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에 많이 공감한다.  
     "가끔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데 마땅히 갈 데가 없더라. 결국은 애들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슈퍼 가서 두부랑 빵이랑 사 가지고 왔어." 
     "난 아이 낳고 1년 동안 옷을 엄청 많이 샀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우울증이었나 봐."
     "그래? 난 책을 많이 샀는데. 아이들 재우고 인터넷하며 이것저것 사버리는 거야"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특히 아기 엄마들이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크건 작건 무언가 계속 소비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기 엄마들의 우울한 심리를 이용하는 상술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경우 한참 육아가 버거울 때 전집 영업사원을 만났는데 어찌나 울적하고 힘든 마음을 잘 알아주던지 그 사람 붙들고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론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거나 교구를 가지고 놀면 엄마가 훨씬 덜 힘들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점도 있겠지만 왠지 씁쓸했다. TV 홈쇼핑의 경우 주로 주부들이 짬이 날 시간대에 집중해서 아이들 전집, 화장품, 다이어트 식품, 의류 들을 광고하는 듯하다. 책을 읽으며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 주름 하나 없는 탱탱한 얼굴, 뱃살이 잡히지 않는 날씬한 몸매, 화려한 모델들의 자태. 홈쇼핑 방송들은 이런 이미지들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현실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고픈 주부들이 쉽게 지갑을 꺼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홈쇼핑 채널을 자주 봤다간 나도 어느 순간 전화기를 들고 쇼핑 대열에 합류하진 않을까 싶을 정도다. 과잉 소비를 조장하는 온갖 광고들에 점점 내 자신이 약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왜 난 소비만 하는 인간이 되었을까?' 요즘 들어 이런 회의가 부쩍 늘었다. 그나마 시간이 나는 주말에도 대형마트에나 가는 나를 보며 창의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생긴다. 엄마들이 아기를 키우는 일상에서 우울, 불안을 덜 느끼며 소비 말고 창의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을 나눌 시간, 공간도 필요하고 도움도 필요하다.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

** 육아 자체가 물론 행복입니다. 그렇지만 "너는 지금 행복하니?" 하는 물음에 바로 "그래." 하고 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겐 따끔한 충고보다는 따뜻한 조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