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예방할 수 있습니다?

따우 (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미시' 탤런트로 유명한 어떤 여성이 등장하는 대형 선전물이 눈에 띈다. "자궁경부암,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 옆에는 그녀가 포스터 속에서 아이를 껴안고 속삭인다. "엄마 외에 누가 있습니까? 자궁경부암에서 우리 아이를 지켜줄 사람." 며칠 뒤 찾은 다른 병원에서도 "원장님과 상의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자궁경부암 백신을 광고하고 있다.

그래, 2~3년 전에 자궁경부암 백신이 발명됐다는 기사를 언뜻 본 기억이 난다. 벌써 상용화 됐구나. 바야흐로 암도 백신으로 예방하는 시대가 왔는가. 그런데 뭔가 이상타. 내 얄팍한 생물학적 지식에 따르자면, 자고로 '백신'은 '바이러스'에 대응해 맞히는 거 아닌가? 봐봐,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리면 '백신'으로 치료하잖아요. 호기심 급상승, 광고판 한쪽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기사를 열독하기 시작한다.

그럼 그렇지. '암' 백신이 아니라 HPV라는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다. HPV(human papilloma virus,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자궁경부암 발생 원인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주로 성관계(이성간 관계만 뜻하는지, 동성간 관계도 포함하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로 인해 감염되지만 성관계가 HPV의 유일한 감염 통로는 아니다. 10명 중 8명의 여성들이 평생 한 번은 감염되는 HPV 바이러스는 성관계가 있어도 감염되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같은 HPV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HPV 백신은 100종이 넘는 HPV 중에서 6, 11, 16, 18, 이 네 가지를 예방한다. 고작 네 가지라고 우습게보지는 말자. 이 중 16, 18이 자궁경부암 원인의 70%를 차지한다고 하니까(6, 11은 성사마귀의 원인. 그러니까 이 백신은 성사마귀 예방 노릇도 하는 것이다). 9~26세 여성에게 접종 가능. 현재 두 종류의 백신이 개발되어 있는데 한 종류만 시판 허가가 나 있고 나머지 한 종은 허가대기 중이다.

여기까지 개요. 대충 보면 정말 획기적인 제품이다. 뭐, 꼼꼼히 봐도 획기적이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문제는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혹은 전세계적으로) 어떻게 홍보되고 소비되는가 하는 것이다. 일단 "자궁경부암 예방할 수 있습니다"는 자신만만한 문구를 보자. 바로 위에서 말했듯이 HPV 백신은 단지 네 종류의 HPV를 예방한다. 이들로 인해 발생하는 자궁경부암의 퍼센트는? 또 위에 나오듯이 70%다. 즉, 백신의 약효가 완벽하다(평생 간다)고 해도 그것은 2/3의 완벽인 것이다. 나머지 30%까지 포괄하지 않는 한 '자궁경부암'을 예방한다고 말하거나 믿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70%라도 평생 가기는 하나? 누가 알리오. 개발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약효가 평생 가는지 어쩐지는 산타 할아버지나 알고 계실 거다. 단순히 수학적으로는 30여 년이라고 하지만, 그거야 30년 지나봐야 아는 거지.

그런데 이 같은 내용이 백신을 맞거나 맞히려는 이들에게 얼마나 알려지고 있을까? 최근 내가 병원에 갔을 때 이 백신을 상담하는 광경을 실제로 목격한 적이 있다. 청소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이가 백신에 대해 물었다. 간호사는 6개월에 세 번 맞힌다, 세 번에 나누어 맞히므로 목돈 부담이 없다.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맞히는 게 좋다...고만 할 뿐 정확한 제품정보를 알려주는 데는 인색해 보였다. 그뿐인가. 최근의 신문기사 제목이라니. "백신 한방이면 자궁경부암 '걱정 끝'" 오마이갓.

백신의 효능과는 별개로 광고방식도 문제다. HPV가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기 쉬운 바이러스이다 보니, 아직 '경험'이 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청소녀들이 접종대상이 된다. 그러나 오호라, 이 아이들은 구매력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그 돈으로 백신주사 맞기보다는 다른 데 쓰려고 할 게다. 그러니 타겟은 '엄마'들. 그런데 엄마들은 이미 백신 맞혀 봐야 별 소용이 없으니(뭐, 45세까지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고 하니 HPV 검사가 음성으로 나오거든 맞아 보시든가요), 돈은 엄마가 내고 딸이 맞으면 맞춤한 그림이 된다. 이것이 '미시' 탤런트 포스터의 '자식사랑'에 숨어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인 게지. 몇 십 만 원이 없어 백신을 맞히지 못하는 '엄마'들의 가슴을 무너져 내리게 하면서. 역시 사랑도 '돈'이랑게.

유럽 몇몇 국가에서는 이미 HPV 백신을 국가 보건 프로그램에 도입했다고 한다. 한국도 검토 중이라는데, 암 예방효과가 백신의 가격을 상회한다면 면밀히 판단해서 보험항목에 포함시키든가 하면 될 것이다. 괜히 돈 없다는 죄로 모성애도 없는 엄마 취급 받느니 소비자들로서도 그게 나을 테고(계속 돈돈 거리는데 실제로 얼마나 하냐고? 구미에서는 세 대에 3~40만 원. '백신' 주제에 너무 비싸다고 외국도 말이 많단다. 그런데 한국은 이를 비웃듯 한 대에 25~50만 원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백신의 효과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며, 접종을 하려는 쪽 또한 충분한 정보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말부터 HPV 백신, 또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좀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자궁경부암을 완전 예방한다는 오해는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백신 맞았다고 자궁경부암 검진/관리에 소홀해서 향후 큰 일 벌어지는 불상사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