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차별, '운동의 운동', 급진의 급진

신기루 (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

아직, 학교를 거닐 때 나는 '변태소녀'였다. 한 1년 동안은 머리를 등 중간까지 기른 기억이 있다. 그 다음 경제적이고 짧은 파마 머리였다. 고령에 농활 갔을 때는 머리가 아주 짧았다. 그리고 다시 머리가 길어졌다. 그러고 보니 머리길이에 따라 내가 나를 정체화 하는 것, 재현하는 방식도 달랐다. 남들 보기엔 어딘지 거시기한 여자애였을 것이다.

그토록 불안정했다.
매일, 바쿠스, 만남의 광장 등에 모여 5명 쯤 되는 친구들이 하릴없이 얼굴을 바라보고 술을 먹었다. 술 먹고 선전전하고 세미나하고 집회 나가고 수업은 빠지거나 들어가서 자고.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3학년 때 쯤 몸이 비쩍 마르더니(믿을 수 없겠지만) 온 몸이, 마음이, 가슴이, 영혼이 나무처럼 메말랐다. 그 시절에 나는 매우 냉정한 인간이었다. 

하루는, 문화관 로비에서 세미나 같이 하던 언니를 만났다. 내가 미학모임, 서대문**크럽을 만들었다고 하니 "운동이 취미생활이냐?"고 했다. 어떤 운동은 자본주의사회를 전복할 혁명에 복무하지 않으므로 운동이 아니라고 했다. 그 어떤 운동의 예로 언급된 것이 레즈비언 운동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운동이냐, 운동은 자신에 대한 고통의 부여, 수행이다. 아이고.

지난 11월에 법무부가 발의한 차별금지법에서 일곱 가지 차별 사유와 정의조항이 빠졌다. '포괄적 인권기본법'으로서 차별금지법은 헌법에 그냥 좋은 말로 존재하던 '차별하지 말라'를 현실화 할 도구였다. 11월 2일, 성적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성별정체성이 누락되자, 6일 만에 86개 단체, 1258명이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수백 명이 모여 번개회의를 하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너무 하고 싶어 하는 열의 때문에 1인 시위는 추가로 기획되고 회의 시간에는 너도 나도 발언을 요청했다.

이 때, 다시 나의 운동의 역사를 반추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성소수자입니다"를 외치는 10대 레즈비언, 청소년 운동가, 에이즈 운동가, 인권운동가를 만났고 '여성'운동에 대해서 가장 많이 질문 받고 설명했다. 내부에서 외부에서 서로의 운동에 대해 묻고 답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정성스러운 '알고자 함', '느끼고자 함'이 있었다. 인식의 틀 안에 들어오지 않던 다른 운동과의 감수성의 교환,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겨 머리에, 몸에 서로의 운동을 새기려고 애썼다. 밤이 깊도록 몇 년 전에 무엇에 집중했는지,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 지금 무엇이 이슈인지, 무엇이 힘든지, 내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했다. 잠 안 자도 안 졸리고 밥 안 먹어도 배 안 고프고, 흡사 '사랑'의 형상이다.

자신의 존재성 휘발시키는 물리적 운동, 관성의 회로에서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는 느낌. 그 청명한 기분으로 다시 '차별'이다.
법보다는 차별금지법 국면이 파생시킨 '차별'을 키워드로 한 운동의 재조명, 차별과 차별이 만나고 위치 짓고 맥락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법이 부여한 차별의 금지를 넘어서는, 입의 말로 정의되고 응용되는 차별 담론, 차별 감수성을 만들어 낼 때다. 나의 존재와 경험을 차별로 해석하고 말하고 주장하고 소통하는 것이 새로운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급진화 시키는 전략은 다른 운동에 성찰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이물감이 아닌 것 같다. 서로 운동의 영역을 나누어 각자 열심히 하는 운동보다는 서로 침투하고 포획하여 성장하는 '사랑'의 행위가 좋다. 굵고 거대한 말 '차별'보다는 비남성, 비이성애, 비정규직, 적거나 많은 나이, 짧은 가방끈, 아팠던 경험, 태어난 곳이 나를 억압할 때 언제든지 통용되는 언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기의를 가진 '여성주의'는 그래서 사랑스럽다.

드라마 '엘워드'에서 레즈비언 동생을 둔 킷(생물학적 여성)은 앵거스(생물학적 남성)에게서 청혼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한다. "내 동생이 차별 없이 결혼할 수 있을 때 그 청혼을 받아들이겠다." 늠름한 태도다. 취미로 운동하던 다른 언니가 남긴 말은 '니가 가진 걸 알아라'였다. 여성주의가 가진 경험, 매력적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관되고도 품위 있는 어떤 태도가 자연스럽게 퍼졌으면 좋겠다. "남자친구 누구냐?", "화장실은 여자용, 남자용 두 개다" 에 대해 생각하는 거다. 태도가 자극해야 할 것들 찾아내는 것도 급진의 급진이다. 정교하게 짜일 반차별 운동. 변태소녀의 기대도 만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