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의 착한 돌잔치

곰 (여성주의영어자료읽기위원회 "바닥")

며칠 전 정말 따뜻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맑은 하늘을 닮은 파란 편지봉투 위에 손으로 쓴 내 주소와 이름. 손 글씨로 적힌 편지를 받은 것이 너무 오랜만인지라 다소 의아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마음으로 뜯어보니, 봉투 안에는 봉투 색깔보다 더 맑고 파랗게 웃고 있는 친구의 첫 아이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회원이기도 한 내 친구는 자신의 첫 아이 건우의 첫 돌을 맞아 브로슈어와 엽서 한 장을 지인들에게 모두 보낸 모양이다. 브로슈어에는 임신부터 출산, 아이의 백일과 첫 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과 함께 부모가 직접 작성한 문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건우의 너무나 귀여운 사진으로 만들어진 엽서에는 회신용 우표가 붙어 있고 첫 돌을 맞은 건우에게 덕담을 한 마디 적어 보내달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이 엽서는 아직 내 손에 있다. 건우의 건강하고 천진한 웃음이 나를 신중하게 만든다. 이 엽서는 건우가 글을 읽을 만큼 자랐을 때 처음 볼 것이고 아마도 오래 간직할 것이다. 나는 이 엽서에 축하와 함께 건우에 대한 내 소망을 모두 담고 싶다. 그래서 내 마음이 이기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날 쓸 예정이다.

내 친구의 이러한 아이 첫돌 우편물이 더욱 반갑고 따뜻했던 것은 브로슈어 맨 뒷장에 기재되어 있는 계좌번호 때문이었다. 내 친구 부부는 아이의 돌잔치를 여는 대신 지인들에게 1만 원 이하의 후원금을 기부 받아 전액을 건우와 후원자 공동명의로 어려움에 처한 세계 각국의 건우 친구들을 위해 기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들 부부가 신중하게 선택한 기부처는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단체로서, 브로슈어에 적혀 있던 기부처 소개글에 의하면 "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빈부, 인종, 국적,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아동권리가 보장되고 보호되며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국제 아동권리 전문기관"이라고 한다.

친구 부부는 "자신이 돋보이기보다는 옆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밝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도록 건우의 세상 첫 기부에 동참해 주세요"라고 말해 나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기부가 건우로부터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지호와 민채, 그리고 건우로 이어지는 돌맞이 첫 기부 시리즈 3탄이라는 점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탄스러웠다. 역시 한국여성민우회의 자랑스러운 회원인 지호 부모로부터 시작된 이 착한 돌잔치가 멈추지 않고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친구들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칼럼을 쓰게 된 이유이다. 아마 이런 기부를 기획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손주 녀석의 돌잔치를 번듯하게 차려 주길 바라셨을 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했을 것이고, 친지들에게 이런 방식의 필요성을 일일이 설명해야 했을 것이고, 돌잔치를 핑계로 그동안 요원했던 지인들을 한꺼번에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서운한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부가 더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은행에 자동이체를 걸어 두고 연말정산 때까지 기부나 후원 자체를 잊고 사는 나의 기부는 여전히 의미 있지만 그것 자체가 생동하는 운동이었던가. 기부는 운동을 지원하는 것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운동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호와 민채, 건우가 나에게 가르쳐 준다.

나는 내 친구들로부터 시작된 돌맞이 첫 기부 시리즈가 아주 많이 확산되어서 어느 날 나의 직장 동료가 자신의 지인으로부터 이런 우편물을 받았노라며 나에게 자랑스럽게 들고 왔으면 좋겠다. 지호와 민채, 건우의 기부 우편물을 받았던 많은 분들이, 그리고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런 돌잔치도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번 주말에 이 우편물을 들고 얼마 전 딸아이를 출산한 언니 부부를 만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