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국회의원을 꿈꾼 최현숙의 총선출마를 보고

권미혁(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4월 9일 끝난 제 18대 국회의원 총선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결과를 놓고 많은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느 정도 희석된 줄 알았던 지역감정이 되살아나 여전한 위력을 과시했다. 개발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와 사회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던 사회분위기가 경제성장 제일주의와  지역개발논리에 묻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극복했다고 착각했던 과거의 유물들이 좀비처럼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다면  몇몇 후보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종로에서 성소수자로서 출마한 최현숙이다.
자신을 '최초의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정치인'이라고 소개하며 "대한민국이여 커밍아웃하라"고 일갈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과거 홍석천씨의 커밍아웃 때가 생각나기도 했다.
선거기간 동안 혹시 대중들로부터 민망한 질타나 폭력행위를 당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기도 했지만 "저사람 찍으면 안 돼..."라는 뒷말이 있는 정도였던 것 같아 과거와는 달리 우리 사회가 적어도 소수자를 못본 체 용인하는 분위기까지는 왔나보다 믿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과연 최현숙의 출마는 무엇을 남겼을까?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기존의 주류권력에 편승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곧잘 기존 권력의 용어와 맥락을 뒤집는 행위자가 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기성 질서의 가장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는 액션에 대한 정산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사람들이 가십처럼, 혹은 남의 동네 이야기처럼 해오던 성소수자의 존재를 백주대낮에(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으니까) 드러냄으로써 가지는 효과에 한표 주겠다.
변태 내지 도착으로 사회를 어지럽힐, 어디엔가 있는 불안한 군상처럼 영화속에나 표현되던 이들이 아예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기정사실화되어 버린 거다. 일명 '기정사실화 효과'라고나 할까?
많은 약자의 목소리가 이같은 기정사실화의 작업을 거쳐 주류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이 효과가 최현숙의 주장대로  성소수자관련 법안의 제정까지 나아가기를 염원한다.
다음으로 소위 '공식 문법으로 드러내기'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부작용에 마이너스 한표 준다. 최현숙이 원하는 바는 아니겠지만 남성 성소수자의 대명사로 홍석천이 거론되듯 자칫 여성성소수자의 상징으로 최현숙이 거론되며 성소수자가 갖고 있는 복잡다단한 권력의 문법이 사장되지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다. 세상에 나가는 순간 내가 외치는 이야기는 세상에서 듣고 싶은 대로 변질되어 온 예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생기는 노파심이다. 또한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의 일반적 정체성 사이의 소통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이 있음을 볼 때 자칫 하나의 고정된 상징은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성소수자가 오로지 '소수자'로 잠깐 출현하여  세상에 우리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사라지는 일종의 풍운의 검객 같은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기존 제도에 뛰어들어 짧은 기간이나마 자신을 불사를 생각을 한 최현숙의 용기는 치하되어 마땅할 것이다. 그에 대한 보완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