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있는 비폭력 시위 고고씽!

삼서(민우회 생활협동조합 활동가)

분노가 우리를 거리로 내몰았다.

처음에는 무척 걱정스러웠다. 조직도 아닌, 개개인이 모인 무리가 아무 대책(?)없이 광화문 거리를 막고 밤을 새우며, 정부와 경찰 병력에 저항한다는 것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이제 더 이상 촛불집회만으로는 안되겠다고, 분노를 폭발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디 어디를 치자는 계획도 없고, 어떻게 하자는 지시도 없고, 가이드라인도 없다. 그저 서로 서로의 자유발언과 촛불집회 최대 히트곡 '헌법제1조'를 포함한 몇 가지 노래, 인터넷 생중계를 보다 집에 있을 수 없어 할증 택시요금을 내고 달려오는 사람들, 누군가가 자꾸 사오는 물과 과자, 김밥 등 먹거리가 있다.

너무나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비폭력 촛불집회

처음엔 그저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어서, 함께 있어줘야 할 것 같아서 밤을 새웠고, 날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함께 했다. 그런데 이 촛불집회 갈수록 매력 있다. 갈 때마다 상황이 바뀌고, 새롭고 재미있다. 생활의 냄새가 팍팍 풍기는, 가슴 찡한 자유발언이 날마다 끊이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개인 피켓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돌아와 "1만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하는지 보고하라"고 한 다음날 촛불집회에는, '내 돈으로 촛불 샀다. 배후는 양초공장', 이런 피켓이 나타나는 식이다. 참 부지런도 하고, 저마다 꾸미는 모양도 예쁘고 정성스럽다.

우리는 날카롭고 아프게 쏘아대는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추우니까 '온수! 온수!', 세탁비를 달라며 '세탁비! 세탁비!'를 외쳤고, 수돗물도 아까운데 머리라도 감겠다며 '샴푸, 샴푸'를 외쳤다. 청계광장에서 도로를 나오며 점점 더 거세지는 경찰의 강한 탄압에도 언제나 '비폭력'을 외쳤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습니다'라고 경찰서장이 방송하면 '노래하면 집에 간다'며 경찰에게 노래를 청하기도 한다. 의경과 집회 시민들이 강하게 대처할 때는 '감정을 자제하고, 싸우지 말자'고 서로를 달래고, 광우병 쇠고기가 수입되면 가장 먼저 먹게 될 '의경들만 불쌍하다'고 함께 외쳤다. 연행되는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고, '스스로 연행되기를 결정'했다.

조직되지 않은 폭발력, 매너 있는 비폭력 시위 고고씽!

이곳에서는 한 명 한 명 모두가 주체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고 해도 균형을 잃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어, 서로 촛불을 붙여주고, 지켜주며 암묵적인 소통을 한다. 그곳은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고, 이끌리지 않으며, 신기한 힘이 넘치는 살아있는 의사결정체이다. 정보의 흐름도 무척 빨라서 광화문 거리에서 함께 9시 뉴스를 보며, 방송을 비판하고, '조중동은 찌라시'를 외치고, 전날 밤 아고라에 올라온 새로운 행동제안들은 다음날 거리에서 행해진다. 의경들, 그리고 경찰특공대의 저지방식이 아무리 힘세다고 해도, 그 때 그 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발력과 스피드! 있는 이 촛불대오를 어찌 따라오리오! 장맛비처럼 거센 빗줄기에도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피켓엔 비닐을 씌워 서울광장으로 속속들이 모여드는 사람들. 이 에너지를 그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모두 함께 만드는 자율의 힘

놀라운 힘을 매일 만난다. 촛불하나가 다 타도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을 때도 있다. 오늘밤부터는 72시간 집회가 시작된다. 재미있는 촛불집회이지만, 다양한 사람이 모인만큼 그  안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건 또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이야기는 또 너무 길다. 지금 나는 모두 함께 만드는 자율의 힘을 믿고 함께 가고 싶다. 그래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넘고, 한미 FTA를 넘고, 민영화를 넘고, 대운하를 넘어 이명박 정부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르쳐 주고 싶다. 분명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니까,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책갈피에서 한 구절

끌려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미안해서,
정말 미안해서 테니스채를 사놓고 한 번도 치지 못했던 친구들,

고시공부 하다가 도서관 밖의 집회 바라보고는
머리를 싸매고 그 날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

길거리에 누워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로서로 사슬을 얽어매고 울었던
그 친구들...

- 공지영, '고등어' 中에서

촛불소녀들에게 미안해하며 30-40대가 나오기 시작했고, 폭력 진압하는 경찰들에게 당하는 게 안타까워서 사진과, 실시간 방송을 보고 많은 네티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나왔다. 그 옛날 테니스채를 사놓고, 못 쳤던 사람들,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 함께 울었던 사람들, 모두 나왔으면 좋겠다. 미안해하지 말고, 모두 나와서 즐겁게 촛불을 들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재미있는 집회이자 축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이 즐겁고 재밌게 자꾸 자꾸 꾸역꾸역 몰려들면 저들은 분명 겁을 먹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