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꿈을 가진 존재들이다. 

박 어진(한국여성민우회 이사)

내 친구 혜련씨는 피아노 만학도. 어릴 적 배웠던 피아노 공부를 몇 달 전 다시 시작했다.일 주일에 세 번 레슨을 받으러 교습소에 간다. 얼마 전 오전 레슨을 받으러 갔던 교습소 문 앞에서 키 크고 건장한 할머니 한 분과 마주쳤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분은 머뭇거리며 혜련씨를 따라 들어왔다. 원장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그 분은 혜련씨에게 지금 피아노를 시작하는 게 가능할까를 물으셨다. 

할머니가 듣고 싶어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를 직감한 혜련씨,  50이 넘어 피아노에 재도전하.는 자신의 사례를 발표하며 심리적 지지를 표명했단다. 이어서 원장님과의 상담을 무사히 마친 할머니가 평생의 꿈이던 피아니스트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용기있는 선택을 한 그 분의 피아노 진도를 혜련씨가 우리에게 때때로 브리핑해주기로 약속했다. 야호!  

누구에게나 살아 생전에 해보지 않으면 즐겁게 못 죽을 것 같은 숙원 사업이 한 두 개 쯤 있게 마련이다.  잘 살아야 잘 죽을 건 정해진 이치. 여든 둘이신 우리 친정엄마는 운전을 해보고 싶어하셨다. “일년만 젊었어도” 이건 친정엄마의 고정 레퍼토리다. 칠십 무렵부터 운전을 배우고 싶어 하셨는데 우리 오남매가 뜯어 말렸다. 위태로워 보여서다. 그런데 그 때 주저앉은 걸 못내 후회하신다.

내 주위엔 완경 기념 사업으로 암벽 등반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있다. 서울 집을 떠나 경기도 어느 시골집에  방 하나를 월세로 얻어 오랜 독립의 꿈을 이룬 여성도 만났다. 평생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다는 그녀. 완경이 그녀로 하여금 결단과 행동을 동시에 가능케 했다고 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한 후 다음 목표는 영화평론가 되기. 일 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보러 간다. 평론에 대해 독학하면서 영화를 보는 안목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려 노력한다. 5년 안에 영화평론가로 데뷔하는 게 이제 가장 가까운 미래의 꿈이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로 시작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피부 색깔의 경계를 넘어 화합과 조화의 세상을 꿈꾸었던 킹 목사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불씨는 그 꿈을 이루게 하지 않았던가.  

꿈은 위대한 인물들만 꾸는 게 아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처럼 인류 평화에 기여할 큰 꿈이 아니면 뭐 어때?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진 존재들이다.  살아있는 동안 절대로 잊지 않아야 될 것 한 가지가 바로 이 것이다.  먼저 꿈꾸기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  여기에  연령 제한 같은 건 없다. 

나의 가장 가까운 동료 여성인 엄마와 이모와 고모와 할머니들의 꿈을 물어 보았는가?  내 측근인 그녀들의 꿈이 실현되도록 나는 돕고 있는 걸까? 아니 그들이 꿈을 갖도록 그들을 부추긴 적은 있었던가?  불가능한 꿈을 꾸는 엄마나 이모를 속으로 비웃지는 않았던가? 나이나 남은 기대 수명을 근거로 그들의 꿈이 비현실적임을 지적하며 꿈을 버리라고 냉소하지 않았나 말이다.   그 꿈들이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가 되도록 재조정해 주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해보았는지. 당장 친정엄마와 시엄마께 물어 볼 참이다. 두 분 엄마들의 꿈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내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