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활동가 다이어리_하이 안녕, 안녕
활동가 다이어리
하이 안녕, 안녕
제이(김진선) | 여는 민우회 여성건강팀
추위를 많이 타는데도 겨울을 좋아합니다. 올해엔 겨울잠을 잘 거예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예견할 시간이 더 주어졌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세상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지식은 막상 닥친 현실 앞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일이 그렇듯, 특히 많은 여성들이 익히 알고 있듯 커다란 상실에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할 일들이 뒤따른다. 장례식과 추모식을 치르는 건 빈소를 지키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음식을 나르고 치우고 신발을 정리하는 일이다. 현수막을 제작하고 PPT 파일을 만들고 음악을 고르고 사진을 출력하고 추모사를 쓸 사람을 섭외하는 등의 일이기도 하다. 통증 같은 슬픔 속에서 식을 치르는 건 꼭 붙잡을 난간 같기도 했다. 하이라면 자신을 추모하는 자리가 어떠하기를 바랄까. 자꾸 생각하면서 일을 고쳐 했다. 여자들이 영정사진과 관을 드는 걸 낯설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하이에겐 이 모습이 무척 당연하게 느껴지리란 걸 알았다.
추모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고, 고인을 함께 떠올리며 작별 인사를 했다. 발인 날 들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그곳 직원들의 진심어린 조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즈음 여성단체들이 매주 돌아가며 주관하던 페미시국광장 현장에서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다. 고인에 대한 저열한 비방에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하이의 활동을 꼼꼼히 정리해 애도를 담아 보도한 기자들도 있었다. 그가 얼마나 우리에게, 이 세상에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누차 되짚었다.
그러나 과로든 스트레스든 유전이든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이 보태어지는 걸 볼 때면 저항감이 일었다. 때론 그의 삶을 숭고하게 회고하는 말을 들을 때도 그랬다. 사실 좀 화가 나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함부로 설명하고 의미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어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느꼈다. 하이를 영영 떠나보낸 건 그렇게 설명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만큼이나 위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참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위로를 애써 건네준 사람들에게 마음 깊이 고마웠다. 빈소와 장지에서 한참을 같이 머물러 있었던 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장례 이후에 다른 단체 활동가들이 남은 활동가들의 안녕을 바라며 사무실에 편지와 작은 선물을 전해주기도 했다. 다정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 상처 난 부위를 어루만지기보단 따뜻한 기운을 보내어 온 몸을 감싸 안는 것 같았다. 메울 수 없는 텅 빈 상실감을 그저 헤아려 준 사람들에게, 어떤 말로도 이 일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조금 위로받았던 거 같다. 그리고 민우회 동료들…. 울음과 침묵 속에서 나는 우리가 서로를 붙들고 있다고 느꼈다. 이따금 하이 얘기를 하다가 주고받은 실없는 농담이 차라리 어떤 진실에 가까이 데려가 준다고 느꼈다. 이 상실의 감정을 섣불리 언어화하지 않는 이 사려 깊은 사람들과 이 시간을 함께 지나가고 있다.
요즘도 문득 문득 하이가 떠오른다. 일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친구를 만나는 중에, 전혀 뜬금없는 순간에 떠오르기도 한다. 아직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활동가들과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이 얘기를 하기도 한다. 매년 여름이 더욱 깊어질 무렵이면 하이가 생각나겠지. 그리고 활동하면서 한창 바쁘게 달려가고 있다가도 문득, 하이가 지금 우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멈춰 서 보게 될 거 같다.
Ⓒ혜영/ 민우회 사무실에 앉아 있는 하이. 오른쪽 창에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 성평등한 사회를 향해 미디어 속의 세상을 바꾸어갑니다. -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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