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브로드캐스트키드’가 경험한 뉴미디어의 세계
기획
‘브로드캐스트키드’가 경험한 뉴미디어의 세계
이문경 | 낮에는 편집자, 밤에는 생활체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꿈꾼다.
〈커뮤니티Communuty〉는 독특한 인물 군상이 모인 그린데일 커뮤니티 컬리지의 일상을 다룬 미드다. 주인공 중 하나인 아벳(Abed)은 공감 능력은 떨어지지만 기이한 기억력을 소유하며 대중매체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을 짧게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TV가 키운 셈이야(I was kinda raised by TV).’ 그의 어린 시절은 부모에게 받은 상처와 혼자라는 외로움으로 가득했지만, 드라마·영화·만화 같은 대중문화 덕분에 그 시간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도 아벳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텔레비전 앞에 붙어살았고, 바쁜 부모님의 퇴근을 기다리며 새벽까지 온갖 예능과 드라마, 영화 채널을 누볐다. 그때 접한 〈CSI〉, 〈프렌즈〉, 〈섹스 앤 더 시티〉등의 미드와 영화는 답답했던 일상의 새로운 창구를 열어주었다. 다양한 성격과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을 가져도 자기만족적으로 살 수 있음을 배웠다. 모두가 바쁜 날들이었지만, 내 옆엔 언제나 TV가 있었다. TV는 나라는 사람과 취향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헐리우드키드의 생애〉에서 소설가 안정효는 1950~1960년대 헐리우드 영화를 보며 성장한 세대를 헐리우드키드라고 부른다. 이처럼 1990년~2000년대 방송 부흥기를 향유한 세대를 ‘브로드캐스트키드’로 명명한다면, 그건 아마 나와 내 세대를 가리킬 것이다.
미드 〈커뮤니티Communuty〉의 한 장면 중
내가 선택한 세계
그런 내가 뉴미디어에 열광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새로운 주제와 형식의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든 시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과 PC(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ion)함이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 후부터는 영상 플랫폼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로 문화생활을 즐겼다. 성차별적 언행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몰이해로 이끌어나가는 지상파·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은 일부러라도 예민하게 거르다 보니 볼 만한 게 없기도 했다. 작년부터는 퍼블리와 핀치, 북저널리즘에 정기적으로 금액을 지출하고 있다.1) 편집자라는 직업상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는 꼭 필요한데, 시야까지 넓혀주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났다. 나의 얕고 넓은 관심사에 따라 구독 중인 뉴스레터도 적지 않다. 시사 이슈를 정리하는 뉴닉과 음악 이야기를 전하는 오디티 스테이션, 좋은 브런치 글을 알리는 xyzorba, 디자인 아티클을 정리·소개하는 디독 등이 있다. 일간 이슬아, 잇선의 모지리 다이어리,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와 같은 메일링 서비스는 애정을 무한 발휘해 열렬한 독자를 자처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의 하루는 뉴미디어로 시작해 뉴미디어로 끝난다. 아침에 눈뜨면 이메일함부터 열어 뉴스레터를 확인한다. 업무 중간중간 구독하는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에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동영상 스트리밍 앱에 들어가 영화나 드라마, 다큐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뉴미디어는 내게 방송·언론·예술을 넘어 일상이 됐다. 편리함과 다양성, 새로움을 제공할 뿐 아니라 ‘공영(公營)’이라는 목적 아래 올드미디어2)가 배제해왔던 소수의 목소리를 발견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대중문화의 유해함에서 멀어졌을 때 느끼는 안전함과 내가 선택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은, 기존의 미디어가 제공한 적 없는 경험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그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쌓여가는 콘텐츠에 속에 고립된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 있다. 개인적인 문제부터 짚자면, 일단 정보 초, 초과다다. 메일함에는 읽지 않은 메일이 잔뜩 쌓여 있고, 작고 큰 결제들이 모여 말일에는 꽤 부담스러운 재정적 압박을 느낀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절제하지 않은 내 탓도 있지만, 꼭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니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죽는 콘텐츠가 셀 수 없이 많은데, 대부분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사용해 이를 홍보한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그 질을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콘텐츠의 포장지는 근사하다. 게다가 뉴미디어가 다루는 주제·형식·소재 등은 이전에 소개된 적 없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는 제품의 사용 전과 후의 경험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앞으로의 소비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데, 뉴미디어에서는 이러한 개인의 기준이 무용지물이 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계로부터 고립되는 점도 피할 수 없다. 뉴미디어를 이용할 때 나는 취향을 더 깊이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대한다. 동시에 내가 모르는 세계와 사람을 경험하는 하나의 매체로 기능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추천 시스템은 전자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하다. 소비자가 시청·구독하는 패턴을 파악해 비슷한 결의 콘텐츠를 추천하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기회가 적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공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플랫폼들이 기존 미디어의 것을 구매해 제공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미 출판된 책의 내용을 발췌·요약해 짧은 글의 시리즈로 발행하거나 대중의 검증을 받은 드라마를 스트리밍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콘텐츠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재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의미 있다. 그러나 아쉬움도 든다. 뉴미디어의 가장 큰 강점은 기존 미디어가 제공한 적 없는 새롭고 실험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뉴미디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개인적 기준으로 뉴미디어의 장단점을 나열했지만, 나는 여전히 애독자다. 기존 미디어보다 콘텐츠의 질과 가치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소비자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를테면 뉴미디어를 이용할 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구독을 지속할 만한가, 아닌가?’ 다시 말해, 이 콘텐츠가 내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뉴미디어의 플랫폼이 사용자가 이용하기 적합하게 만들어졌는지를 궁리하는 것이다. 일례로 ‘퍼블리’는 이 질문을 멋지게 통과했다. ‘퍼블리’ 제작자들은 뉴스레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사용자와 긴밀하게 네트워킹한다.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콘텐츠가 있으니 자주 들어와서 읽어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일상에서부터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시대를 발 빠르게 반영한 콘텐츠는 물론이고, 플랫폼 또한 사용하기 편리하게 설계해두었다. 처음 이용하는 이도 콘텐츠의 주제와 내용, 사용 시간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곧 정식으로 앱을 출시할 예정이라는데, PC버전과 얼마나 다를지,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얼마나 최적화된 앱을 구축할지 기대가 크다.
나는 기존 미디어를 향유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됐다. 그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니, 결국 좋은 미디어란 이용자의 삶에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최근 미디어의 영향력이 가히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이 콘텐츠가 나에게,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해본다면 어떨까? 주도적으로 뉴미디어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태도가 필요한 요즘이다.
퍼블리 플랫폼은 사용자 이용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다. 개별 콘텐츠마다 간략한 설명, 이용 여부, 예상 독서 시간 등이 나와 있다.
1) 퍼블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플랫폼’, 핀치는 ‘여성생활미디어 플랫폼’, 북저널리즘은 ‘젊은 혁신가를 위한 콘텐츠 커뮤니티’이다.
2) TV, 방송, 언론매체 등 기존의 미디어를 뉴미디어와 상대하여 부르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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