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10월호 [생생한 시각] 네 가지 이야기로 풀어보는 건강보험
[생생한 시각] 네 가지 이야기로 풀어보는 건강보험
-‘건강보험 대개혁’을 이해하는 네 가지 이야기
김창보 ●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실장
첫 번째 이야기 :
‘100만원의 개혁’과 ‘11,000원의 기적’
최근에도 건강보험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정이 적자가 난다고 하지, 국민이 부담하는 보험료는 올라가는데 오히려 보장수준은 떨어졌다고 하지, MB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한다고 하지…
그런데 얼마 전부터 뭔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건강보험 재정 적자 위기’와 같은 부정적인 뉴스가 사회적인 관심의 단골메뉴였는데 이것마저 변해가고 있다.
바로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담은 논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의료비 부담을 1년에 100만원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보험 체계를 만들자”는 주장과 함께 “국민 1인당 매월 11,000원만 더 내면 건강보험 보장수준 90%를 만들 수 있다”는 운동도 시작되었다. 이런 주장들은 지금까지 건강보험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이 뭔가 국민을 위해 더 많은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는 긍정적인 방향에서의 요구가 담긴 운동으로 변한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은 지난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며 현실 정책으로 추진되는 성과를 낳은 분위기와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한 진보의 정체성 논의가 배경을 이루며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에 대한 이런 전망과 기대는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여러 가지 난관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제기되는 ‘100만원의 개혁’과 ‘11,000원의 기적’이 현실성이 떨어진 다소 낭만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건강보험에 대하여 기대하고 있으며, 이런 의사를 표현하면서 현실적인 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 건강보험 대개혁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 2020년 건강보험 100조원 육박
그렇지만 건강보험이 처한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못하다. 건강보험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이 위태롭기까지 하다.
작년 우리 국민들이 의료이용을 통해 병원과 약국에 지출된 건강보험 재정은 모두 약 30조원이었다. 이렇게 건강보험이 부담한 정도는 전체 의료비의 62%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나머지 38% 정도는 국민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을 제외한 여러 선진국가에서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80% 이상 되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국민 부담이 두배가량 큰 셈이다. 이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민간의료보험을 하나 더 가져야 하거나 아니면 이런 의료비 부담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 재정은 매년 11~13%씩 늘어나고 있다. 만일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2015년에는 건강보험 지출이 50조원이 될 것이며, 지금부터 10년 뒤인 2020년에는 1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지금보다 세 배가량 더 많아진다는 말이다. 노인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보건의료서비스의 상업화 경향도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국민이 부담해야 할 의료비가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되더라도 건강보험 보장수준은 60% 대여서 의료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사례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100조원에 육박하는데도 불구하고 의료비 부담 때문에 가계가 망하고, 치료를 포기하고, 심지어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지속될 것이다.
결국 현실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우리는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비 폭탄’을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의료비 부담에 짓눌린 서민의 어두운 선택은 강요되고 말 것이다.
이런 전망은 물론 ‘현실의 상황이 계속된다면’이란 전제를 달고 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 싶은 이런 전망을 우리가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실의 상황이 계속되지 않게’ 전제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건강보험 대개혁’이다.
세 번째 이야기 : 1995 프랑스 건강보험 개혁
지난 1990년대 후반, 프랑스에 알랭 쥐페 총리가 있었다. 그는 우파 정치인으로 프랑스의 연금 및 건강보험과 관련한 사회보장의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당시 4500억 프랑에 이르는 적자를 해소하기 위하여 국민에게 모든 소득의 0.5%씩 부담하게 하는 등 부담을 떠넘겼고, 철도·지하철·버스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연금을 개악하는 바람에 한 달에 걸친 전국적 총파업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었다.
당시 그가 추진했던 프랑스 건강보험의 개혁은 수입구조를 대폭 바꾸는 데 목적을 두었다. ‘임금’에 부과하던 것을 ‘임금을 비롯한 모든 수입’으로, ‘보험료’ 중심에서 ‘목적세’로 바꾸었다. 또한 대기업이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양산하며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점에 착목하여 이들의 사회보장을 위한 세금을 부과하여 건강보험 재정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 프랑스의 건강보험은 총수입 중에서 건강보험료 40%, 목적세 58%인 구조로 대폭 바뀌었다.
당시 공공부문과 사회복지제도에서 신자유주의적 개악을 추진했던 쥐페였지만, 그가 건강보험 분야에서 추진한 건강보험 수입 분야의 개혁은 현재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실업자가 늘어났고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큰 이윤을 남기고 있는 시점에서 대기업에 세금을 부과하였고, 임금이 아닌 전체 소득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부담을 나누어 부담의 형평성을 개선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프랑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대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단지 ‘건강보험료 인상’이라는 수단만으로는 부족함을 말해준다. 사회구조의 변화와 노동구조의 변화를 고려하여 사회연대를 실현하고 부담의 형평성을 개선하면서 건강보험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네 번째 이야기 :
스웨덴 ‘7크로운의 개혁’과 한국 건강보험 대개혁
대표적인 복지국가 스웨덴은 1970년 이른바 ‘7크로운의 개혁’으로부터 의료복지를 위한 개혁이 본격화되었다. 국민 누구나 7크로운만 있으면 필요한 만큼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을 목표로 하는 의료개혁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목표에 먼저 사회적인 합의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병원을 비롯한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필요한 재원 확보를 위한 방안에 대하여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스웨덴은 모든 국민에 대한 의료보장을 이루어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대개혁을 추진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건강보험 대개혁의 목표를 국민 누구나 1년에 100만원까지만 의료비 부담을 하는 이른바 ‘100만원의 개혁’으로 두자는 주장이 주목된다.
또한 이와 같은 ‘100만원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정책적 목표에 합의를 이루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건강보험의 수입과 지출 구조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건강보험의 수입을 개혁하여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러한 건강보험 재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예산제’를 도입하고 주치의제를 도입한다면 ‘100만원의 개혁’은 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최근 스웨덴은 GDP의 9% 정도를 의료비로 사용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약 7.5%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료비 부담을 조금만 더 높인다면 우리 국민들도 충분히 스웨덴과 같은 의료복지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점에서 ‘100만원의 개혁’이 현실성이 없다는 말은 오히려 맞지 않다. 그 사회의 구성원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시장화된 의료제도의 미국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스웨덴과 같은 의료복지국가를 선택할 것인지, 이제 우리의 선택만이 남았다.
김창보 ●
보건정책, 특히 건강보험을 전공,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2003년 이후 전업적인 시민운동가로 변신하여 건강세상네트워크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답니다.
또한 현재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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