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콘텐츠 어디까지 봤어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좋은' 여자들, <Good Girls>
페미니즘 콘텐츠 어디까지 봤어요? ①
: 자기만의 방식으로 '좋은' 여자들, <Good Girls> 글 / 루스 |
누구보다 착한 딸. 이었다고 자부한다. 지금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생각하건만, 엄마 생각은 다르리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어떻든 과거엔 언제나 고분고분. 밤늦게 다니지 않고 학교-집-학교-집을 완벽히 수행하는, 연애 따위 생각도 할 줄 모르는 고등학생 딸이었다. 이것 먹어, 이것 입어, 이것 발라! 성인이 돼서도 엄마의 퀘스트를 완벽히 수행해냈다. 그런데 어느 날, 싹둑. ‘(엄마에 의하면) 안 예쁜 얼굴, 그나마 커버해주던’ 긴 생머리를 잘라냈다. "못된 딸!" 그때부터 엄마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이쯤 되니 헷갈린다. 나는 ‘못된 딸’인가, ‘못된 여성’인가? 매일 통화, 매달 용돈. 딸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하는 것 같은데. "시집가야 하니까 예쁘게 좀 해다녀." 아, 아무래도 엄마가 지적하는 건 여성으로서의 역할인 듯했다. 언젠가부터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감 없이 표출해내는 딸이 못내 불안했던 엄마는 요즘 말끝마다 시집 타령이다.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을 사랑하고, 화장대 앞에 있는 대신 다른 일을 하겠다는 게 '별쪽스럽다'면서, 착한 딸 어디갔냐고 묻는다.
엄마뿐만이 아니다. 엄마를 필두로 온 세상이 여성에게 여성다운 것을 강요한다(언젠가 보아가 남자 댄서 등에 올라타서 노래했듯이..). 적당히 웃어넘기고, 적당히 친절한 척 응대하고, 목소리 볼륨을 줄여서 겨우 그 소리를 듣는다. "Good girl~!" 더 이상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무엇보다는 그냥 나다운 나로 살고 싶다.
[편집자주] 드라마 <Good Girls> 중
그런 분들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드라마 <Good girls>다. 주인공 3명이 우연한 계기로 동네 마트를 터는 이야기인데, 그 우연한 계기가 마냥 우연해 보이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부인으로서의 무엇 때문인데 자세한 건 직접 확인해보시라. 이유야 어찌됐든 세 여성은 합심하고, 연대한다. 어설프지만 훌륭한 파트너로서 존재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그들의 나쁜(?) 짓은 마트털이에 그치지 않는데, 갈수록 제목과 멀어지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은 것도 그 점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는 무수히 많은 여성 캐릭터(비중에 관계없이)가 등장하는데, 누구 하나 'Good girl'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통상적으로 말이다. 정말이지 단 한 명도 없다. 주인공 딸들 중 하나는 내내 아프다가 겨우 나을 만하니까 나쁜 짓을 하고, 다른 딸 하나는 퀴어다. 퀴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통념을 말하는 거다. 착한 딸, 착한 소녀로 사회가 규정한 모습을 충실히 이행하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머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생생하고 입체적이다.
[편집자주] 드라마 <Good Girls> 중
남성 캐릭터를 다루는 법도 놀랍다. 이 드라마에서 남성은 원래 있던 골칫거리(=쓰레기), 새로 생긴 골칫거리(=쓰레기), 아무 것도 모르는 골칫거리(=쓰레기까진 아니고..) 정도로 기능한다. 정말이지 보고 있자면 혀를 끌끌 차게 된다. 말이 골칫거리지, 정말이지 굉장한 쓰레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할머니는 또 좋은 사람.. 한국 드라마의 민폐 캐릭터(주로 여자)에 신물 난 당신이라면 이 새로운 경험에 묘한(?) 현실성을 느끼고 감탄하게 될 터다.
처음엔 내용과 모순된 제목이라 생각했지만, 볼수록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 나오는 모든 여성들이 사실은 다 좋은 여자들이라고. 다만 사회가 규정한 ‘말 잘 듣는’ 여성들이 아닐뿐. 자기만의 방식으로 좋은 사람들이다. 시청자는 그들이 말도 안 되는 범죄를 꾸밈에도 남몰래 응원하게 된다. 자기 자신들이 규정한 'good(선)'을 이행하느라 사회가 규정한 good(선)을 깨부수는 드라마. Good girls.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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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루스 (민우회 회원)
2018년 민우회에 가입한 새내기 회원. 본다큐 소모임으로 민우회를 알게 됐고, 가입까지 하게 됐다. 여성주의 콘텐츠에 대한 목마름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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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페미니즘 콘텐츠 어디까지 봤어요?>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연애각본으로 포장하거나 여성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관념을 재생산하고, 다양성을 보장하지 않는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에 질린 페미니스트 시청자들이 기존의 방송이 아닌 새로운 매체를 통해 페미니즘 콘텐츠를 발굴하는 기획연재입니다. 민우회 다큐소모임 <본다큐>의 회원들이 각 1회씩 맡아 올해 총 3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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