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와 앨리스'를 좋아하는 이유
내가 ‘하나와 앨리스’를 좋아하는 이유
하나와 앨리스는 중 3에서 고1.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열 여섯에서 열 일곱이 된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열 여섯, 열 일곱. 참 예쁜 나이.
대학을 가고, 스물 셋, 넷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동네 마을 버스안에 북적거리는 교복입은 여학생들을 볼 때면, 그 사이 어딘가에 내 친구 하나가 서 있을 것 같아 괜히 이 얼굴 저 얼굴 살피다 혼자 웃곤 했었다. 그만큼 그 때의 기억은 길고, 많고, 선명하다.
하나와 앨리스를 보면서 나는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련해지곤 했다. 그 많은 기억들 가운데서도 내 단짝 친구들과, 나와 그 아이들의 외로움에 대한 기억들에.
하나와 앨리스는 같은 중학교를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단짝 친구이다. 서로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알 것 같고 다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둘 도 없는 친구이다. 그러나 하나가 열 일곱 순정의 괴상한(?) 연애에 빠져 열심인 동안, 앨리스는 철없는 엄마한테 치이고, 바쁜 아빠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아프다.
이들의 감정은 다시 한 남자아이를 사이에 두고 얽히지만, 서로의 아픔은 전달되지도, 교감되지도 않고, 각자의 것으로, 그렇게 각자의 봄과 여름을 지낸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함께 하는 것이 당연했던 친구들. 전학을 가버린 뒤에도 먼 길에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만나왔던 친구들.
그것은 그 어떤 연인과 했던 것보다도 성실했고, 열정적이었던 연애였다. 자잘한 일상에 대한 보고에서부터 마음 속 깊은 비밀까지 숨기지 않았고, 평생 한 남자만 마음에 품은 여인처럼 너희는 내게 가장 특별하다 하고 마음의 정절을 주었더랬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도, 한 친구는 전학 간 서울의 아이들의 쌀쌀한 공기에 짓눌려 폰팅 서비스와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외로움을 풀고 있었고, 또 한 친구는 가정의 경제적 문제와 내적인 고민에 괴로워하면서 날라리 친구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엄마의 입원과 수술, 긴 회복기간과 IMF, 그에 따른 경제적인 타격으로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한여름 오후 땡볕 아래 흙길을,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한양대 병원에 가기 위해 멍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염색한 노란 머리에 오천원 짜리 쫄티, 질질 끌리는 통바지를 입고서.
내가 하나와 앨리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예쁜 우정의 이야기 이면서도, 참으로 진실되게, 그네들이 앞으로 한 평생 가지고 가야할 고독의 싹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짝이 있어도, 함께 죽을 연인이 있어도, 그래도 사람은 혼자다. 성장의 과정에서 맞는 아픔은, 서로 참견할 수 없는, 각자가 오롯이 가지고 가는 자기의 몫이다. 하지만 결코 우울해 지지 않는 영화의 분위기처럼,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그냥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일 뿐인거다.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변하는 것처럼.
그 봄과 여름을 지나, 아이들은 달라진 햇살과 나무 아래를 다시 웃고 떠들며 지나간다.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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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님 저도 그걸 봣는데 찾지 못햇습니다. 아무나 느낄수 잇는건 아닌듯^^;;
열 여섯이라,...그런 때가 있었던가 싶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그냥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일 뿐->너무 와닿아..너무 와닿아..너무 와닿아..요
그렇죠! 열여섯살은,
편지와 교환일기 없이는 설명하기 힘든...
아우... 크리스마스 카드를 일일이 손으로 만드느라 일주일 밤을 새고도 모자라서 한 명이라도 빠뜨리면 삐질까봐 전전긍긍...ㅋ
나도 최근에 '하나와 앨리스'를 보고 고딩시절 날마다 편지를 주고 받던 친구를 생각했죠. 아침에 책상 위에 편지를 올려놓기 위해 밤마다 일기처럼 편지를 썼던 그 친구는 어찌 지낼까? 어찌나 공부를 하기 싫었던지...
'고독의 싹'이라...비디오 가게에서 찾아 한번 보겠슴다.
나의 열여섯은 어땠던가.. 잠깐 생각해보게 되었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아오이유우 봤어... 넘 이뻤어
너무 옛날영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