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누군가와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 회원님께서 얼마 전 이사를 해서 소식지 받아보실 주소를 변경하고 싶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주소변경 안내와 먼저 연락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로 전화를 끊고,
회원정보를 변경해 드리기 위해 등록되어 있는 프로그램에 들어가 보았는데요.
연락주신 그 회원님은 1998년에 회원가입하셨고 그 동안 민우회와 직접적인 만남은 많이 없었지만
지난 15년간 꾸준히 후원해주신 분이었어요.
15년 동안 묵묵히 후원해주시다니, 진작 알고 있었더라면 통화할 때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직접 드렸을 텐데 싶었습니다.
그 분께 소식지를 보내드리며 감사의 말을 편지로 적으려 하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민우회가 달려온 2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민우회에 힘을 모아주셨고,
그 중에는 10년이 넘도록 회원으로 함께해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긴 세월 함께해온 분들을 생각할때면 깊은 감사의 마음이 마구 차오르는데,
여지껏 한 번도 그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펜을 들었습니다.
어떤 말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하며 뒤늦은 감사 편지를 썼습니다.
10년 이상 민우회에 회원으로 함께해주신 분들께 보내드린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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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입니다. 민우회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하시나요? 민우회는 새봄을 맞이하며 특별히 고마운 분을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혹은 그보다 더 먼 과거에 처음으로 민우회와 연을 맺으신 분 그리고 지난 10여 년간 민우회의 활동을 믿고 지지해주신 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민우회가 만드는 더 나은 세상을 지켜봐주신 분 바로 이 편지를 받으신 당신입니다 누군가와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간다는 건 참 드물고 소중한 일입니다. 긴 시간 ‘변하면서 변치 않는’ 모습을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지난날의 무수한 노력과 성취를 돌아보며 그 가슴 벅참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한 해 한 해 겹겹이 시간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단단한 신뢰를 딛고 활동한다는 것이 시민운동단체로서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동안 민우회가 해온 수많은 일은 당신의 변함없는 지지와 후원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그 지지와 후원을 생각하며 민우회 활동연혁 중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3년의 활동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호주제 폐지운동 / 양육비확보를 위한 가이드북 제작 / 평등한 일․출산․양육을 위한 캠페인 / 남녀고용평등법 실효성제고 및 개정안 연구 / 성폭력가해자교육 프로그램 개발/ 성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심포지움 개최 / 내 몸의 주인은 나 NO다이어트 NO성형 캠페인 / 반외모지상주의 모니터단 운영 / 양성평등한 방송문화형성을 위한 시청자 캠페인 등 10년 동안 세상의 어떤 부분이 변화했고 어떤 부분이 여전히 그대로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지난한 운동의 결실로 호주제가 폐지되었고, 얼마 전엔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규정도 폐지되었습니다. 제도적 진전 속에서, 성폭력이 그저 사적인 트러블이 아니라 범죄라는 인식은 일반화되었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적인 성차별 문화의 부분으로서보다는 특정 개인의 부도덕으로 문제시되곤 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직장과 가정에 참여하는 것은 이제 마땅한 일로 인정되긴 하지만, 현실에서 아직 여성은 이중의 압박으로 괴롭고 남성은 생계전담자로서의 부담에 시달립니다. 획일화된 외모 기준 탓에 다이어트와 성형을 강요받는 현실은 10년 전과 다름없고, 오히려 수많은 상품의 홍수 속에 부추겨지고 있지요. 민우회가 복잡다단한 현실 속에서 몇 가지 바람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가족 내 평등과 다양한 가족구성권, 여성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일할 권리, 성폭력 없는 세상, 다양함이 아름다움으로 존중되는 사회- 모두 지금도 민우회가 뜨겁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슈들입니다. 10년 전 그때, 함께해 주셨지요. 민우회가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운동을 이어올 수 있는 것 역시 당신이 계속해서 곁에 있어주신 덕분입니다. 민우회는 강물처럼, 가야할 길을 꾸준히 가면서 고여 있지 않고 변화하려 합니다. 매년 고민 끝에 새로운 발을 내딛는 민우회의 활동 내용은 아마 알고 계실 거라 생각되어요. 특수고용노동자와 식당노동자의 노동권 확보, 획일적 외모 기준에 균열을 내는 <다르니까 아름답다> 캠페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규탄을 넘어 성폭력을 공동체의 문제로 함께 고민하고 피해자가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성평등한 보육 복지를 상상하고 실현시키는 일들 . . . 최근의 활동 내용은 민우회가 지켜온 한결같은 방향성과 지금 여기의 여성들이 지나고 있는 길의 굴곡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민우회는 이 굴곡을 정면으로 겪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 내용과 말들로 활동을 펼쳐나가려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역동적인 민우회의 ‘지금’을, ‘지금’이 있기까지 오래도록 민우회를 지켜주신 당신과도 생생히 나누고 싶습니다. 그동안 전해드린 민우회 소식, 잘 받아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민우회의 활동을 회원님들과 또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채널로 소식지 <함께가는 여성>을 비롯하여 이메일 뉴스레터, 홈페이지(www.womenlink.or.kr), 블로그(http://womenlink1987.tistory.com), 트위터(@womenlink), 페이스북(korean womenlink)을 운영하며 열심히 말을 걸고 있어요. 꼭꼭 자주 들러 주시고 확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민우회의 활동이 민우회에 힘 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 걸까 언제나 궁금하고, 의견을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든든하고 따뜻한 신뢰를 동력삼아 앞으로의 10년, 20년도 열심히 활동해 나가겠습니다. 당신과 더 자주 만나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한 분 한 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지만, 이렇게 편지로 대신합니다. 좋은 봄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3년 4월 3일 여는 한국여성민우회 드림 p.s. 이 편지를 받으신 분 중에서도 전화 연락처가 바뀌었거나 등록되어있지 않아서 필요한 연락을 못 드리고 있는 회원님이 계셔요. 직접 확인 전화 주신다면 엄청 고맙고 반가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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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 써있는 대로 정말 마음 같아선 한 분 한 분 만나서 혹은 전화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그동안의 민우회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함이 아쉽기도 했습니다.
또 해외에 나가 계시거나 우편물 주소가 없으신 회원님들도 더러 계셨는데,
그 분들께는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다른 방법으로 감사 연락을 드리려 합니다.
이 편지를 그냥 흰 종이에 쓰고 싶지 않고 예쁜 종이에 쓰고 싶어서 꽤나 긴 논의(?)가 이루어졌답니다. 예쁜 한지의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ㅜㅜ
하지만 그래도 편지인데, 10년 이상 된 회원님들께 처음으로 보내드리는 건데(!)
그냥 아무 종이에나 쓰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내용을 압축하고 빽빽히 채워,
양면으로 종이 한 장에 다 들어가게끔 애썼습니다.
이 정도면 종이값을 좀 더 쓰더라도 회원님들께서도 이해해주실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요.^^;
복사하려고 보니 또 프린터기 유리면에 작은 잉크가 조금씩 묻어있는데,
그게 또 정성스레 쓴 편지에 점점이 묻어나는 거예요.
평소에 다른 거 출력할 땐 보이지도 않던 점들인데 참 신경이 쓰이더라고요.ㅜ
결국 활동가 나우가 세제를 휴지에 묻혀 얼굴이 빨개지도록 있는힘을다해 빡빡 닦아 해결했답니다.
뭐 하나 선물이라도 넣어 보내드리고 싶어 2013 민우회 교육 수강권을 하나씩 넣어드렸습니다.
좋은 교육 들으러 오시는 것도 좋지만,
그 김에 오래간만에 민우회 사무실도 한 번 오셔서 직접 얼굴도 뵙고
인사나눴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활동가들이 회원님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직접 적으며 봉투에 편지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수요일에 발송하였어요.
편지가 잘 도착했을까, 받아보고 어떤 마음이셨을까 너무나 궁금합니다.
동봉한 수강권에 민우회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넣긴 했는데
너무 작게 써 넣었나, 받아보고 연락이라도 편하게 주시도록
편지에 전화번호라도 크게 적어둘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살짝 됩니다.^^;
편지 한 장으로 마음을 다 전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민우회가 품고 있는 고마움과 소중한 기억을
글로나마 함께 나누는 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편지에 쓰여 있듯,
앞으로 더 많은 회원님들과 자주 만나고 이야기할 나날들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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