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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2월호[함께하는 이야기 l- 내 안의 보물 I]l 소중한 인연 그리고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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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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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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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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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132
함께하는이야기 / 내 안의 보물 I
소중한 인연 그리고 홍콩
김경숙
ꡒ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며 꽃파는 아가씨~
이 꽃만 사가시면 그리운 영란꽃 아~ꡓ
내가 시작을 ꡐ홍콩아가씨ꡑ 노래로 하는 이유는 분명 있다.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살면서 만든 그리고 자연스레 이루어진 참 좋은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 7년전 쯤이던가 우리 큰아이 대욱이가 초등 4학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 반에 새로 전학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운동 잘하고, 의리있고, 다른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멋진 아이란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 아이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 되시는 분도 자상하시고 남을 배려하실 줄 아는 분이었다. 알고 봤더니 그 분은 나의 대학 선배님이셨다. 또 나의 고3 담임선생님과 그 선배의 남편은 초임 교사 시절 같은 학교에서 수학 근무하신 적도 있었다.(여기서 학연을 얘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렇듯 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부비고 살면서 아이로 인해 인연이 만들어졌고, 중요한 점은 늘 곁에서 염려해 주시고, 기운을 북돋아 주셔서 나에게는 든든한 삶의 후원자이셨다.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우정을 쌓아서 지금은 광명시로 이사갔으면서도 메일과 전화로 친함을 과시한다. 선배랑 나도 물론이다. 얼마전 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선배랑 저녁 먹으면서 한 3~4일 정도 여행을 가자고 했고 짧은 일정에 맞추다보니(선배는 직장다님) 장소는 홍콩으로 정해졌다. 여행은 ꡐ어딘가ꡑ도 중요하지만 ꡐ누구랑ꡑ인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여행 동반자로서 선배는 ꡐ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사람ꡑ이었다.
느긋한 중국인들의 도시, 홍콩 속에 빠져들다
홍콩은 670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한 국제 중심지이다. 홍콩은 홍콩섬, 빅토리아하버에서 떨어져 있는 구룡반도와 구룡의 북쪽에서 중국 본토의 경계까지 펼쳐지는 신계지로 구성되어 있다. 약 150년 이상의 식민지 기간과 5천년의 중국 전통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홍콩은 내게 묘한 매력을 가져다주었다.
사람들은 홍콩을 쇼핑의 천국이라하고, 음식(맛)의 천국이라고도 한다. 내가 본 홍콩도 그랬다. 그러나 쇼핑과 음식을 떠나서 이 사람들은 150년 동안 타 민족의 지배하에 있었는데도 그들의 문화 언어를 그대로 간직했고, 심지어 국민성마저도 그들 나름으로 온전히 지켜낸 듯해서 부러웠다. 오랫동안 경제특구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이는 영국이 그걸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홍콩사람들이 애써 영어를 쓰지 않아도 불편을 못 느꼈기 때문이리라) 보여지는 건물들은 세계 제일을 자랑하지만 국민성은 상당히 느긋하고 신중했다. 만만디였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여행 3일중 첫 날 우리 일행은 리펄스베이 해안을 구경했다. 거기 해수욕장에는 수영하는 사람도 제법있었다. 11월인데도 말이다.(홍콩은 초가을 무렵쯤 된다. 기온은 연평균 20도쯤 되고 아열대성 기후로 습하고 끈적거렸다. 모든 건물과 차량마다 에어컨을 24시간 내내 가동한다) 밖에 있으면 덥고 실내에 있으면 추워서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리펄스베이 해안에 있는 사원에는 쓰다듬으면 제물이 들어온다는 석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욕심(?)을 내서 쓰다듬었는지 닳고 닳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정없이 쓰다듬고 쓰다듬으면서 그저 제물이 많아지기를 소망했으니까 말이다. 자리를 옮겨 다음 행선지는 해양공원이었는데 말과 달리 해양공원은 해양에 있지 않고 산꼭대기에 만들어 놨다.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산정을 오르는데 그야말로 홍콩섬과 구룡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곳이였다. 꼭대기에 수족관과 놀이기구 전망대가 있어 구경거리로는 그저 그만이었다.
홍콩에서 ꡐ모녀ꡑ가 만나다
이 곳을 관람하고 내려오는데 선배 딸 성아가 이 곳에 도착했다는 가이드의 연락이 있었다.(참고로 성아는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해로 유학간 지금 1학년 대학생이다. 홍콩을 선택한 것은 구경도 하고 딸도 만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의 모녀 상봉이란 또 얼마나 똥폼나는 일인가?) 상해에서 비행기타고 심천에 내려 거기서 기차타고 홍콩으로 혼자 엄마를 찾아온 딸이 너무 반갑고 대견하기도 해서 선배랑 나는 신통해했다.(여행 끝무렵에 이 딸이 독특한 사고를 친다. 기대하셔도 좋을 듯) 저녁을 광동식으로 먹고 픽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산정에서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야경을 감상했다. 진짜 백만불짜리였다. 각 기업이 국가에 대한 서비스 차원으로 자사의 경비로 그 많은 전기를 켠다니 놀라웠다. 낮과 밤이 확연히 다른 홍콩의 모습이었다. 그 야경 속에서 혼자만 여행하겠다고 나선 엄마를 원망(?)하고 있을 가족들이 생각났다. 이렇게 멀리 떠나서도 현실은 가끔 나를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면서도 내게 다짐을 하는 건 이 여행으로 인해 내가 클 수 있고 나이 마흔 넘어 내 얼굴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가끔은 혼자의 여행도 바람직하다는 발칙한 생각을 한다.
둘째 날은 황대신(왕타이신) 사원을 구경했는데 이 사원은 도교, 불교, 유교가 모두 실천되는 특이한 곳이었다. 종교의 통일이라고 해야 하나? 각자 종교의 방식으로 소원을 빌고 있었는데 향이 어쩜 그리 무식(?)하게 굵고 크던지 자그마하고 가는 향만 본 나로서는 그들의 욕심 많은 소원의 양에 놀라웠다.
점심식사 후 선택관광과 자유관광이 주어졌는데 우리 일행은 중국땅인 심천을 선택했다. 등소평이 못사는 중국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겨 1984년 심천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는데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돈은 꼭 있어야 하나보다. 심천으로 가는 길은 어찌나 독특하던지 홍콩출입국사무소를 거쳐 중국출입국사무소를 지나야 하는데(즉 국경을 넘는다는 뜻, 그 국경은 50m도 안되게 붙어있다) 지하에서 전철 승차권 주고 나오듯이 이루어지는데 얼마 전부터 중국본토사람과 홍콩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면서 우찌 그리 사람이 많은지 사람 많은 곳에는 으례 질서가 없다. 일행 중 어떤이는 우리나라도 남과북의 국경을 자유롭게 통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도 얘기했다. 심천에 도착해서 본 중국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내 생각속의 중국은 늘 지저분하고 게으르고 못사는 나라라는게 지배적이었는데 심천의 도시모습은 딱 그 반대였다. 시원시원한 건물들과 아파트(보통 30층-60층이된다)가 계획된 도시에 맞게 깔끔했고 심천과 대련은 세계에서 아름다운 거리로 뽑혔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심천에서는 소인국 관광과 소수 민족의 쇼를 보았는데 그 쇼에 출연한 사람들은 중국답게 무지 많은 인원이 출연했고 섬뜩한(?) 인해전술 같은 분위기였다. 심천에서 나랑 선배는 조선족 가이드한테서 같은 민족임을 눈으로 마음으로 확인하게 됐고 소중한 인연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제 아쉬운 3일째의 여정이다. 아침 식사 후 면세점 쇼핑이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뭐 살게 있겠나 싶었는데 견물생심이라 여행 선물과 중국산 호랑이파스를 샀는데 그 파스를 붙였다 뗀 자리는 부치기 전의 아픔보다 더 따끔거리고 가려웠다. 무지 많이 샀는데 어쩌면 좋을꼬? 쇼핑이 끝나고 우리는 첵랍콕 공항으로 귀국하기 위해 이동했고, 비행기삯 아끼느라 직항을 이용하지 않고 홍콩에서 심천을 거쳐 상해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성아는 이쯤에서 엄마랑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이 때의 선배 마음이 얼마나 서운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아 공항으로 오는 버스에서 우리는 둘 다 말이 없었다. 비행기내에서 언니랑 나는 다음에는 돈 모아서 유럽여행을 해보자했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얘기했다.
끝나지 않은 성아의 여행길!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배한테서 걸려온 전화는 청천벽력 이었다. 성아가 상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심천공항 쪽으로 이동 중 3인조 사기단에 의해 사기를 당했단다. 그래서 저녁 7시 비행기도 놓치고, 돈도 다 잃고, 핸드폰과 카드까지 다 빼앗기고 찻집에 억류되어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앞이 깜깜했다. ꡐ성아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 이번 여행은 이렇게 막 내려야 하나?ꡑ 했다. 나랑 선배는 서둘러 홍콩가이드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홍콩가이드는 심천가이드에게 재빨리 연락을 취해 주었다. 한 두시간이 흘렀을까? 선배한테서 걸려온 전화의 내용은 심천가이드가 일이 끝나는 9시30분경에 찻집으로 성아를 찾아가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놀라서 울고 있는 성아를 데리고 자기집으로 갔고, 가이드라서 가능했을 비행기 티켓 구입을 다음날 아침 걸로 마련해주었고, 성아는 하루 늦게 상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꿈같은(?) 여행이었던 것과 동시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콩 영화 한 편을 찍는 기분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아는 사기를 밑천(?)삼아 인생을 더 살찌울 것이고, 나랑 선배는 어떤 곳에서든지 사람 사는 일은 비슷한지라 인연을 만드느냐 악연을 만드느냐는 그 사람의 인격에 따라 달라질 거라는걸 배웠다.
홍콩의 밤, 낭만거리에 꽃파는 아가씨는 없었고, 대신 나이 드신 할머니가 꽃을 팔고 계셨다. 세월은 우리의 일상을 똑같이 끌고 가는 듯 하지만 조금씩은 다 틀릴 것이다. 이번 여행에 기꺼이 동반자가 되주신 선배님께 고맙다는 말 전해드린다.
김경숙 | 민우회에서 가족과성상담소 3기 상담원으로
「함께가는여성」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파스의 부작용으로 아직도 하루에 몇 번씩 통증을 느끼는
단순무식하고 성질이 급한 사람.
그래도 상담소에서 7년째 잘 개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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