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하반기*함께가는여성] 민우ing_2017 다시, 차별을 말하다
★민우ing
2017 다시, 차별을 말하다
눈사람(최원진) | 여는 민우회 성평등복지팀
민우회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나여기(나의 여성차별 드러내기) 캠페인 시즌 2 : 2017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진행했다. 6월부터 9월까지 1,257명의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와 10명(10대 5명, 50대 이상 5명)의 심층 면접 인터뷰를 통해 총 4,788건의 차별 사례를 수집하였다.
*1999년도와 달리 오프라인 설문지와 함께 온라인 페이지minwoo-poll.parti.do를 열어 사례를 수집하였다.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해 기본적인 인적사항 외에는 대부분의 문항들을 주관식으로 구성하였다.
연령별로는 20대가 34%로 가장 높았고 10대 19%, 40대 16% 순으로 나타났다. 거주지로는 서울 41%, 경기도 31%, 경상도 7%, 전라도 6% 순이었다. 설문에 응한 이들 중 93%가 ‘한국이 성평등한 국가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아니오’ 라고 답했다. 성차별이 발생한 영역으로는 1위 가족(1,092건, 23%), 2위 운전시‧대중교통(699건, 15%), 3위 학교(659건, 14%)순으로 나타났다. 성차별 내용을 살펴보면, 세대 구분 없이 전 영역에 걸친 성별에 따른 차별과 외모지적, 다이어트 강요, 반말, 무시, 직접적 위협을 포함한 여성성 비하를 경험하고 있었다.
대학 때부터 오빠와 둘이 자취를 하는데 친척들이 만나면 꼭 "오빠 밥은 잘 챙겨주니?"라고 물었다. 내가 왜? (20대, 설문지)
“선생님들도 말로는 “너네 화장하지 마, 고치지 마, 예뻐.” 이러는데 선생님들이 막상 무대에 세우는 애들 보면 다 예쁜 애들. 성형 한 애들을 선택해요.” (10대, 인터뷰)
화장을 안 하면 관리를 너무 안하는 것 아니냐 소리를 꼭 듣는다. (30대, 설문지)
“성폭력 교육에서 집단강간 사례가 나왔는데 강사의 결론이 ‘남학생이 으슥한 곳으로 부르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예방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아니 예방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야, 강간을?’ 하고 울분을 토했어요. 정확히 답도 제대로 못주고, 토론을 유도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조심하라’ 밖에 없어요. (10대, 인터뷰)
택시 기사가 대뜸 "아가씨는 몇 살이야?" 하고 묻는다. 반말인 것도 마음에 안 들고 호칭도 기분 나쁘다. (20대, 설문지)
썬팅이 되어 운전자 성별을 알 수 없어도 운전을 못하는 경우 "아 아줌마 왜저래" 이렇게 말한다. (40대, 설문지)
- 익숙한 질문과 새로운 답
87년 민주항쟁 이후 30년, 적어도 대학진학률에 있어 여성과 남성은 동등해졌다. 성별 상관없이 ‘능력’만 된다면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여성이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있어도 직장을 다니는 것이 가능한, 제도적 평등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체감하는 ‘차별’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성차별이란 무엇인가?)과 새로운 고민을 요구한다.
성차별이 가장 많이 발생한 영역인 ‘가족’의 경우, 여성들은 ‘딸이라서’, ‘딸이니까’로 시작되는 성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진다. 특히 역차별의 대표적 예로 꼽히는 ‘딸바보’가 실은 여성의 지위상승이 아니라, 여성에게 부과되는 새로운 종류의 감정노동 미션이라는 것을 여성들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딸로서 요구되는 행동이 있다. 사근사근할 것, 애교, 부모님 마음 헤아리기, 날씬할 것, 예쁠 것… (30대, 설문지)
오빠는 친구들과 외박을 해도 되지만 같은 나이가 되어도 나는 안 된다. (20대, 설문지)
1999년과 2017년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차별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1999년에는 노골적이고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차별로 인식했다면(“미스김 커피 한잔”, “아침부터 재수 없게 여자 손님이네”) 2017년의 여성들은 성별화 자체(‘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 ‘여자라서 친절하다?’, ‘여자는 국어 좋아하고 남자는 수학 잘한다?’)를 차별로 인식한다.*
*<2017 성차별의 얼굴을 그리다 : 변화를 위한 열가지 과제>, 김희영, 2017
- 성평등의 얼굴을 그리다
모아진 4,788건의 성차별 사례는 한국사회가 풀어야할 과제이자 향후 민우회의 활동 의제이기도 하다.
성평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여성들이 ‘유토피아’(먼 이야기, 유럽, 나와는 상관없는, 이뤄지지 않는 꿈, 판타지 등)라고 답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들에게 성평등은 “내가 노브라로 편하게 티셔츠 한 장 걸치고 다닐 수 있는 사회”, “제사상 같이 차리는 부부” “여배우, 여사원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기사” “내가 여성인 것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세상, 성별을 궁금해 하지 않는 사회” “택시 안에서 지인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안전한 느낌” “안경 쓰고 화장 안 한 여성뉴스앵커”와 같이 매우 구체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2018년, 민우회는 열 가지 선언을 통해 구체적인 얼굴을 ‘현실화’하기 위한 활동들을 기획할 예정이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떠오르는 실천이 있다면, 주저 말고 함께 하자.
❚눈사람(최원진)
고민은 복잡하게 일상은 단순하게
2017 변화를 여는 열 가지 선언
조사과정에서 성평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여성들이 ‘유토피아’라고 답했습니다. 현실엔 도저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무력감에 대한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4,563건의 성차별 사례는 한국사회가 일상적 문화‧인식 개선과 제도 변화를 통해 이뤄내야 하는 과제이자 향후 민우회의 활동 의제이기도 합니다. 성평등을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한 우리의 10대 과제이자 선언입니다.
1. 딸이라는 역할은 없다.
“오빠(남동생) 밥 좀 챙겨줘” “넌 딸인데 왜 이렇게 무뚝뚝해?”
학교를 보내지 않거나, 남동생과 오빠의 지원을 종용하는 노골적 차별보다 가사노동을 은근히 강요하는 등의 사례가 다수였다. 조건의 변화는 있었으나 가사노동 배분에 있어, 성별이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왜 여자교복은 치마 밖에 없죠?” “여자들은 정치에 관심 없잖아”
각 학교별 복장 규정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와 그에 따른 시정‧권고조치와 같은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 가장 노골적이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차별은 수업시간 내 특정 교사들에 의한 여성에 대한 비하, 무시, 차별적 발언이었다.
3. 우리는 얼굴로 일하지 않는다.
“돈 더 줄 테니 화장 하고 오래요” “왜 여자만 안경도 안 되고, 바지도 안 되고, 쌩얼도 안되죠?”
성별화에 따른 역할 구분은 학교를 거쳐 일터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여성은 000해야 해.’라는 고정관념은 실제 규정들을 만들어낸다. 여성노동자에게 집중되어 있는 화장, 옷차림에 대한 세세한 규정들은 노동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4. 통금? 치안은 국가에게 맡기세요.
“여자애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위험하니까 일찍 일찍 다녀라”
통금시간 규제는 걱정이나 간섭이 아닌, 명백한 성차별이다. 폭력, 강도, 강간, 살해와 같은 치안의 문제는 여성 개인에게 원인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성폭력 범죄 예방이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이유로 동원되고 있음을 다수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5. 2017 택시, “반말 없는 곳으로 가 주세요.”
“택시기사가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해요” “사고 났을 때 내가 여잔걸 확인하면 바로 욕부터 나와요”
일상적 반말, 무시, 사생활 간섭과 같은 젠더 불평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례들이 다수였다. 또한 ‘김여사’와 같은 여성운전자를 비하하는 단어는 실제 운전 시 무리한 추월, 욕설, 위협과 같은 실제로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6. 외모플레인*은 이제 그만
*‘외모플레인’이란? 맨스플레인(mansplain : man(남자)과 explain(설명하다)을 결합한 단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함. 본 글에서는 전사회적으로 개개인들이 행하는 외모에 대한 지적, 칭찬과 걱정을 가장한 개입, 자기 비하 등을 총칭하는 의미로 활용함.
“살만 빼면 예쁠 것 같은데” “살 빠졌네?” “살 좀 찐 거 같아. 건강을 위해서 빼면 어때?”
외모평가, 다이어트 강요 사례의 경우 전 영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왔다. 특히 사적 관계에서 타인에 대한 외모 코멘트는 직접적 차별이나 규제보다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7. 제가 저의 보호자입니다만?
“집 계약 할 때 ‘남편분은 언제오세요?’라고 질문을 자주 들었다.”
“은행대출 시 ‘혼자 사느냐’ ‘남편이 없느냐’와 같은 반복적이고 의도적인 질문을 들었다”
돈이 오고가는 중요한 거래 시,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을 독립적 개인‧시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관례가 여전히 많았다.
8. 다양한 한계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여성캐릭터를 보고 싶다.
“며느리는 싸가지 없고, 시어머니는 표독스럽게”
<내 이름은 김삼순>(2005, MBC) 이후 10년, 우리는 여전히 목마르다. 주말, 일일 연속극을 통해 무한 반복되는 여성 캐릭터들의 문제는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만큼 구태의연하다.
9. 여자니까 말고 동료니까 리스펙(respect)
“결혼은 언제쯤? 우리는 오래 일할 사람 구하는데?”
“기혼 여성은 남편이 돈을 버니까 적게 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노골적 차별보다 은근한 배제, 눈치주기 혹은 ‘여자니까 ○○○을 더 잘할 것이다’와 같은 교묘한 이중 메시지까지. 일터에서의 차별은 훨씬 더 정교하고 촘촘해졌다. 승진 배제, 특정 역할(접대, 감정노동) 강요와 성별임금격차에 대해 여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결혼 임신 출산의 과정을 통해 더욱 공고해진다.
10. 벽 밀치기, 손목끌기, 기습키스 그만하자♪ 그만하자♪
“억지로 끌거나 밀어붙여서 하는 키스를 설레는 행동으로 묘사함”
“짝사랑 상대에게 기습적으로 키스하는 게 용기 있는 행동으로 그려진다”
더 이상 폭력적 행동이 로맨스로 둔갑하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은 여성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이트 폭력 장면에 대한 시정‧권고 조치가 강력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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