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민우ing_여혐게임 관찰기
민우ing
여혐게임 관찰기
소연(황소연)
여는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 옛날 프로그램 보는 것이 재미있다.
최근 사무실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든 게임광고가 있었다. '0이 되는 자' 라는 근엄한 제목을 가진 이 게임의 광고에는 주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특히 왕으로 상정되는 게임의 유저가 게임 내 기능을 통해 여성 캐릭터를 탈의시키거나, 폭력을 가하는 장면들이 그대로 나타나 온라인 상에서 이슈가 되었다. ‘총애’를 누르면 옷을 벗고, ‘징벌’을 누르면 맞아서 피 흘리는 모습이 등장하는 방식이다. 이 게임의 SNS 광고에서 회심의 홍보문구는 바로 “독창적인 일부다처 시스템”. 해당 게임은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와 애플스토어의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왕이 되는 자> SNS 광고 화면 캡처
게임 속 인물들은 ‘본처(유저가 처음으로 ‘취하는’ 여성)’, ‘미녀(일부다처제의 개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저는 ‘하사’ 기능을 통해 미녀에게 선물을 주고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다. ‘총애’ 기능은 높은 확률로 아이를 출산하게 하고, 아이는 ‘바보’ 속성으로 태어난다. 과금을 통해 ‘미녀’를 다루거나 접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게임의 셀링 포인트인 듯 했다.
스파이 아닌 스파이로 게임의 ‘공카1)’에 가입했다. 적의 요새에 잠입하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이 게임에는 전투 설정이 있다. 많은 전투를 통해 병력을 늘리고, 늘린 병력으로 돈을 얻고, 정치를 하고, 그 과정에서 미녀도 ‘얻는다’. 카페의 공략 게시판에는 미녀와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 등이 게시되어 있고, 사전 예약 이벤트에서 ‘황진이’ 캐릭터를 얻지 못한 유저들을 위해 캐릭터를 보상으로 지급하는 공지, 미녀 캐릭터를 지급하는 이벤트 등이 진행되고 있었다. 광고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은 나의 반응과 달랐다. “내가 과금을 했는데 왜 이러이러한 장면2)이 나오지 않느냐”, “여성 캐릭터들 목소리가 비슷하다”, “미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는 등의 성토가 발견되었다. 유저가 적을 무찌르고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 내용이, 여성 캐릭터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게임 광고 하나가 보여주는, 게임계 내 뿌리깊은 여성혐오와 성차별
과금을 얼마나 해야 ‘미녀’가 등장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전투를 벌이고 정치를 하는 가운데 여성은 친밀도를 높여 자녀를 생산하는 용도, 또 총애를 받는 위치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유사한 타사 게임 의 경우, 광고에서 얼굴에 상처가 난 여성을 보여주며 전형적인 ‘여적여3)’ 구도를 강조한다. “여자가 권력이 생겼다”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할 만큼, 왕의 앞에서 자신을 ‘신첩’ 이라고 부르는 여성들, 왕의 사랑을 받기위해 권력 암투를 벌이며 오로지 황제의 신뢰와 사랑을 얻기 위한 존재로 등장하고, 그것만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한다. <운명 : 무신의후예(2018, 37games, 애플스토어 9+, 구글스토어 12+등급)> 게임 광고에 등장했던 ‘신체사이즈 조절 옵션’ 역시 <희비전> 광고에도 등장한다.
<희비전> 게임광고 화면
여성혐오적 게임 범람, 어떻게?
모두가 알고 있듯 게임광고의 선정성과 폭력성은 <왕이 되는 자>, <희비전>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신체사이즈 조절 옵션’ 광고는 타 게임에서도 발견되고 있고, 유저가 여성 캐릭터의 가슴이나 허리 등 신체를 클릭하는 게임 장면을 홍보 영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4월 10일, 미디어운동본부는 <왕이 되는 자> 게임 광고 및 등급에 대한 심의 및 등급분류를 요구하는 공문을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발송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물의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 하고 불법 게임물의 유통을 방지하는 기구다. 우리는 <왕이 되는 자>를 비롯한 여성혐오적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재미로 여기는 게임에 대하여 성평등 관점의 심의가 필요하다는 점과 함께 <왕이 되는 자>에 대한 심의 진행 및 그 결과를 요구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답변은 이러했다. 게임내용과 광고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등급이 부적정한 경우 직권등급재분류를 실시할 예정이라는 것. 게임사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연락을 취하고 있으나, 중국 회사여서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지난 4월 27일, 언론보도를 통해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왕이 되는 자>게임광고에 대해 차단조치를 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재 게임광고 규제 제도에는 ‘법정사후심의’ 및 ‘오픈마켓 자체 등급분류’등이 있다. 게임광고가 집행된 뒤 심의하거나, 앱스토어·안드로이드 스토어 등의 ‘오픈마켓’에서 자체적으로 게임에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따라서 미리 적정등급을 받을 확률이 낮으며, 특히 ‘오픈마켓’에 맡기는 형태만으로는 게임의 부적절성 등을 등급에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발간한 <2017게임물 사후관리 연감>을 보면, 2016년 한 해 동안 모바일 게임물의 신청등급과 결정등급이 일치한 게임물은 총 242건 중 195건(80.6%)으로, 전년(87.2%) 대비 약 6.6% 정도 하락했다. PC 및 콘솔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모바일 플랫폼의 ‘청소년이용불가’ 게임물도 신청등급과 결정등급이 일치하여 등급을 취득한 비율이 89.2%로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12세이용가’(63.6%→37.0%)의 일치 취득률이 현저히 낮아졌고 그 뒤를 ‘전체이용가’(81.4%→77.3%)와 ‘15세이용가’(41.7%→37.5%)가 이었다.4)
이는 대부분 오픈마켓에 제공될 목적으로 제작된 게임물에서 신청사(게임사)가 생각하는 자사의 게임 내 폭력성 및 선정성, 사행성 요소가 실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판단기준과 다소 차이가 존재해 발생한 것으로, 대부분 게임 내 여성 캐릭터의 노출 정도와 관련된 선정성 이슈로 인해 신청등급보다 다소 높은 이용등급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게임회사는 선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요소 중 게임물관리위원회의 판단으로는 등급 상향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다. 넘쳐나는 게임 광고 중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싶은 광고들이 그대로 미디어에 노출 되는 것을 보면, 과거의 상식을 바탕으로 게임을 만드는 게임회사와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상식은 조금 다른 듯하다.
나가며
게임계의 성차별과 여성혐오 요소에 대한 ‘선정적’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고 말하거나, 성 엄숙주의적 인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을 게임의 흥미요소로 소비하며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게임 속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문제제기하는 것은 성 엄숙주의가 될 수 없다. 이러한 게임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뜨겁게 문제제기되고 있는 이 시점에, 게임업계는 시대와 호흡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게임내용과 광고가 여성들이 게임 속에서 마주하는 여성혐오와 과연 무관한지 자문해야 한다.
1) ‘공식카페’의 준말
2) 여성 캐릭터 탈의, 속옷 색깔 맞추기, 폭력 가하기 등 광고에 등장한 장면들
3) ‘여자의 적은 여자’의 준말
4)<2017 게임물등급분류및사후관리연감>, 게임물관리위원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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